▲ 오른쪽 이창호 9단과 최철한 6단의 국수전 도전 2국 모습. 최 6단이 이겨 1 대 1이 되었다. 사진제공=한국기원 | ||
이번 제47기 타이틀 매치의 주인공은 이창호 9단과 최철한 6단. 이창호 국수에게 최철한 6단이 도전해 5전3선승제로 자웅을 가린다. 최 6단은 바로 지난 주에 얘기했던 것처럼 2003년 시즌 최다승, 최고승률, 신예기사 3관왕에 빛나는 우량주다.
최 6단이 이 국수에 대한 도전자로 선발되자 바둑계 인사들은 “아주 흥미 있는 카드다. 멋진 승부가 될 것 같은 예감”이라면서 기대를 감추지 않았는데, 과연 최 6단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제1국은 놓쳤지만, 제2국에서 흑을 들고 145수 만에 불계승,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으며 2004년 벽두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
국수전의 창설 당시의 이름은 ‘국수 제1위전’이었다. 다소 구차한 명칭이었다. 한 나라에서 바둑(혹은 장기)을 제일 잘 두는 사람을 가리키는 ‘국수’라는 말 뒤에 ‘제1위’를 또 붙였으니 중복이었던 것인데,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는 기간 동안 우리나라에는 전국 각지에 여러 사람의, 나이 지긋한 ‘국수’가 있었다. 한 지방에서 뛰어나게 잘 두는 사람을 그냥 ‘국수’라고 불렀던 까닭이다. 그것에 굳이 시비를 걸 이유도,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었다.
그 국수들이 한 데 모여 정식으로 실력을 겨루는 대회이니 ‘국수전’이 아니라 ‘국수 제1위전’이었던 것.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서 ‘제1위’란 사족은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갔다. 노국수들은 일본에서 현대바둑을 익혀 정식 프로기사가 되어 돌아온 조남철과 조남철의 뒤를 잇고자 하는 젊은 기재들의 적수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조남철(왼쪽), 김인 | ||
지금은 국내 메이저 기전만 7개에 국제기전도 4개나 열리고 있어 국수전 프리미엄은 많이 퇴색해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역대 국수전 타이틀 우승자, 역대 국수의 면면은 명실공히 한국 현대바둑의 계보를 이루고 있다. 국수 타이틀은 당대 제1인자의 상징이었으며, 당대의 제1인자치고 국수를 역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2월7일, 제2국의 대국 장소가 경남 함양군청 특설대국실이었다는 사실이 관심을 끌었다. 함양은 말하자면 ‘국수의 고향’. 구한말 조선 바둑계를 풍미했던 노사초 국수가 이곳 태생이었다.
앞서 말했듯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기간, 조선에는 여러 사람의 내로라하는 국수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노사초 국수는, 실력과 궁량, 인품과 기행, 그리고 수많은 일화로써 ‘대표 국수’로 불릴 만한 인물이었다.
주최·주관측에서는 노사초 국수의 생가에서 대국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촉박한 일정에 현지 형편이 여의치 않아 대국자와 관계자들은 생가를 방문, 선생을 추모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2월18일의 제3국 혹은 23일의 제4국은 서울 일원동 조남철 9단의 자택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 자리에는 국수전 47년이 배출한 한국 현대바둑의 역대 국수 8명이 모두 초대된다. 조남철 김인 윤기현 하찬석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루이나이웨이 등이 그들이다. 중국에서 온 철녀, 루이나이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어쨌든 멋지고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조남철 9단의 생가라면 더욱 의의가 있겠지만, 전북 부안 줄포면의 조 9단 생가는 지금은 다른 건물로 바뀌어 있다. 아쉬운 일이다.
한편 김인 국수의 고향인 전남 강진군에서는 인근에 새 길을 만들면서 길마다 강진군 출신 유명인사의 이름을 붙인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강진이 배출한 한국 바둑계의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의 이름도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정말 즐겁고 축하할 일이다. ‘김인로’가 생긴다는 것은.
차제에 한국기원도 윤기현 하찬석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그리고 루이까지…. 국수의 고향과 생가를 찾고 보존해 알리는 일, 그런 쪽에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일본이나 중국의 예를 참조하더라도 그게 다 의미가 있는 일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