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월드컵 예선과 올림픽대회를 준비하는 대한축구협회는 성인, 올림픽, 청소년 대표팀 등의 줄을 잇는 평가전과 A매치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이다. 각 코칭스태프들이 발표하는 대표팀 선수 명단이 입수되는 대로 각 부서마다 차질 없는 훈련과 대회 참가 등을 위해 의·식·주는 물론 해외 출입국 관련 모든 업무 등을 지원하며 선수들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 중에서 국제국은 대표팀 관계자들의 해외 파트를 총괄한다. 여러 가지 세부 업무 중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신경을 많이 쓰이게 하는 부분이 바로 출국과 관련된 여권, 비자 발급 및 항공권 구입. 국제경기나 해외전지훈련을 위해 각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인천공항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탑승하기까지에는 협회 직원들의 수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기가 막힌’ 이야기들을 한번 뒤쫓아가봤다.
여권 발급과 관련해서 협회 담당자가 겪는 애로사항은 선수들의 병역 문제가 절대적이다. 병역을 필한 선수야 문제가 없는데 올림픽대표팀이나 청소년대표팀 등 병역미필자들로 구성된 대표팀을 해외로 내보낼 경우 여권 발급 이전에 병무청으로부터 출국허가서를 받아야 하는 과정이 여간 까다롭고 복잡한 게 아니기 때문.
일단 병무청에 제출할 서류로는 부모 중 한 명의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 그리고 최근 12개월간의 재산세과세증명서가 필요하다. 재산세는 1만5천원 이상을 낸 사람이면 합격 판정을 받는데 문제는 1만5천원의 재산세도 내지 못할 만큼 가정형편이 어려운 선수들.
그럴 경우엔 보증인 2명을 세워야 하지만 그런 처지에서 보증인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보증인은 찾을 수 없고 대표팀 출국 날짜는 다가오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서 생각해낸 방법이 협회 직원이 보증을 대신 서는 경우다.
협회의 한 담당자는 “내 책상 서랍엔 아버지 인감도장과 재산세과세증명서가 몇 통씩 들어 있다”면서 “정말 급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만약 보증 선 선수가 해외에서 사라지거나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히게 될 경우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대표팀이 전원 귀국하기 전까진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고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지금은 브라질 입국이 무비자로 풀려 왕래가 자유롭지만 3~4년 전만 해도 브라질로 전지훈련을 가거나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선 비자가 필수였다. 그 시기에 14세 청소년대표팀이 브라질로 한 달간 전지훈련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주민등록증도 없는 미성년자의 비자 발급은 의외로 까다롭고 복잡했다. 주민등록등본, 호적등본 외에 선수의 부모가 생존했을 경우 반드시 두 사람의 친필 사인과 인감도장을 찍어서 내야 한다는 것이 명시돼 있었던 것.
다른 선수들은 문제가 안 됐는데 주전선수로 꼽히는 A선수의 경우엔 부모의 이혼으로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탓에 어머니의 얼굴도 몰랐고 어디서 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사연을 알게 된 협회에선 브라질 대사관에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지만 대사관측은 막무가내였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선수의 어머니를 찾아내 친필사인과 인감도장을 받아오라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선수의 아버지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10년 넘게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전 부인을 찾아 동사무소들을 돌며 소재 파악에 나섰다. 갖은 고생 끝에 마침내 다른 남자와 재혼해 살고 있는 아내를 만나 비자서류를 완성할 수 있었는데 A선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삭이며 가슴 아파했고, 그 어머니는 아들이 축구국가대표 선수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훈련장에 몰래 찾아와 먼발치에서 아들이 뛰는 모습을 보고 울며 돌아갔다고 한다.
협회 담당자들이 여권 발급을 진행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선수들이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사생활을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권발급을 대행하는 여행사에서 여권 서류를 작성해서 종로구청에 제출하면 간혹 한두 명씩 여권발급 부적격자로 판명돼 서류가 반송돼 온다는 것.
선수가 범칙금 미납자이거나 신원조회에 걸렸거나 또는 수배자와 동명이인으로 뜨면 본인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지 않는 한 여권 발급은 꿈도 꿀 수 없다고. 결국 선수들은 부적격자의 신분을 적격자로 만들기 위해 조용히 일 처리를 해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선수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케이스도 있었다고 한다.
선수들의 서류를 준비해서 협회로 보내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들. 그러나 시골에 살거나 생계유지를 위해 바삐 사는 사람들이 협회에서 요구하는 온갖 서류를 빠뜨리지 않고 챙겨서 보내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빠른우편’을 부탁했는데 ‘보통우편’으로 보내놓고 빠른 걸로 보냈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서류를 완벽하게 만들어놓고 인감도장란에 목도장을 찍어 보내는 바람에 다시 돌려보내는 촌극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선수들의 신분 상승에 따라 덩달아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부모의 태도도 담당 직원 입장에선 놀랍고 씁쓸할 따름이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B선수의 경우엔 맨 처음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됐을 때만 해도 집으로 전화를 걸면 아버지가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전화를 받을 만큼 반색하며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었던 케이스.
그런데 그 선수가 올림픽을 거쳐 월드컵 대표팀에 뽑히는 등 상승 가도를 달리자 아버지의 태도도 아들의 인기만큼 거만해졌다. 서류를 구비해서 협회에 제출해달라고 부탁을 하면 이젠 귀찮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고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게 예사라는 것.
그래도 업무 담당자 입장에선 이렇게 어렵게 준비해서 보낸 선수가 골을 넣고 대표팀이 승리를 거둘 경우엔 모든 고생이 보람으로 바뀌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된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신기한 것은 서류 미비로 해외에 못 나간 경우가 단 한 건도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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