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질에서 전지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 선수들. 오른쪽부터 이민성, 김성근, 우성용. 사진제공=포항 스틸러스 | ||
해외에서 한 달 이상을 보내다 보니 국내에서 훈련할 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깜짝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캠프를 어느 나라에 차리느냐에 따라 각 구단들이 적응해가는 모습에서도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2004년 해외 전훈지에서 발생한 ‘요절복통’ 에피소드를 담았다.
포항 스틸러스가 해외 전지훈련을 위해 한국을 떠나 브라질로 향할 때만 해도 선수단 전체는 새로운 시즌을 준비한다는 들뜬 마음에 기분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상태였다. 그러나 브라질 전훈은 공항을 통과하는 데서부터 만만치 않은 신고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선수단에서 준비해간 음식이 입국 심사대에서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
해외 전훈지에서 매번 경험하는 ‘반찬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구단측이 마련한 건 쌀을 비롯해 김치, 멸치 등 영양가 만점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밑반찬들. 하지만 공항측에선 쌀과 김치를 ‘반입 금지 대상’으로 지정해 애를 먹였다.
더욱 황당한 것은 멸치가 ‘물고기’가 아니라 ‘동물’이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면서 아예 반입 금지 품목으로 제쳐놨다는 사실이다. 축구 열기가 높은 브라질이어서 한국대표팀의 축구 유니폼을 선물하면 ‘무사 통과’되곤 했는데 멸치만큼은 끝까지 허락하지 않더라는 것. 결국 포항 선수들은 멸치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입국할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포항 선수들은 매일 30분씩 손해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오전 7시30분에 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하면 8시가 돼서야 숟가락을 잡을 수 있었고 12시에 버스 출발을 부탁하면 12시30분이 되어야 오를 수 있었던 것. 결국 수차례 이런 일을 당하고 나서부터 프런트 직원들은 아예 30분 먼저 약속시간을 잡는 버릇이 생겼다.
한편 현지에서 2월 초 해제된 서머타임을 귀띔해준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서 매번 선수단과 현지인들의 약속시간에 차이가 있었는데, 그 이유를 김병지가 외출했다가 듣고 와서야 시계바늘을 1시간 돌려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활약했던 투수 이상훈을 영입한 SK 와이번스는 그 덕분에 전훈지인 일본 오키나와에서 현지 언론과 팬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보다 훨씬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고 있는 선수들이 쉬는 날 가장 즐겨 찾는 곳이 바로 ‘베스토 덴키’(BEST電氣) 매장.
이진영, 이승호 등 젊은 선수들이 이곳에서 고가의 안마기구를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들락거렸던 것이 지금은 선수단 전체로 확산돼서 급기야 용병 선수들까지 ‘베스토 덴키’ 매장을 이용하게 됐다. 뭉친 근육을 공짜로 풀고 고가의 안마기구를 사용해볼 수 있다는 입소문이 선수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된 것.
그러나 너무 많은 선수들이 찾는 바람에 매장 직원들은 눈치를 주며 보이지 않게 ‘퇴출 작전’을 벌이고 있지만 눈치 없는 선수들의 방문은 점점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해외 전훈지에서 선수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역시 음식이다. 특히 일반인에 비해 선수들은 입이 짧은 경우가 많아 구단에서는 아예 구단에 몸담고 있는 주방장을 함께 대동하고 떠나기도 한다.
사이프러스에 캠프를 차린 전남 드래곤즈에서 ‘인기 캡’은 김남일도, 이장수 감독도 아닌 바로 주명남 주방장이었다. 지중해 음식의 대부분이 느끼하고 기름진 터라 입이 짧은 선수들은 배를 곯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의 입맛에 맞게 척척 음식을 만들어 내는 주 주방장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수밖에.
하지만 이처럼 뛰어난 음식 솜씨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본 사람은 다름 아닌 선수들이었다. 주 주방장은 현지에서 구한 식재료에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기본 양념으로 맛을 냈는데 주변에 있던 현지 요리사들이 김치찌개, 된장찌개, 미역국, 갈비, 생선초밥, 회, 민물장어 요리 등의 현란한 맛에 푹 빠지고 말았던 것.
특히 ‘사스에 김치가 좋다’는 소문을 들은 현지 요리사들이 너도나도 김치를 찾는 바람에 주 주방장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주방의 냉장고를 지키느라 잠을 설칠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포항의 최순호 감독과 박항서 코치 등 코칭스태프와 프런트 직원들은 전훈 기간 동안 야간훈련이 무섭기만 했다. 연습구장에 몰려드는 브라질산 모기들 때문이었다.
그나마 선수들은 무릎까지 오는 양말이라도 신고 있어 노출 부위가 적었지만 무더운 날씨에 양말마저 신지 않고 있던 코칭 스태프와 프런트 직원들은 무차별적인 모기의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특히 하석주 코치는 허벅지에 물린 자국이 크게 부어오르며 통증까지 동반하는 바람에 상당히 심각한 병에 걸린 줄 알고 전전긍긍했을 정도. 하 코치는 귀국하자마자 포항에 있는 병원으로 달려가 ‘이상 무’ 판정을 받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고 한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