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해당 사건은 지난해 11월 14일 오전 3시께 신논현역 인근에서 벌어졌다. 당시 숙박시설을 찾던 A 씨는 편의점 앞에서 두 명의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편의점 내부로 이동해서까지 폭행을 당한 A 씨는 초진 8주, 재진 3주 진단을 받았다.
SNS, 인터넷커뮤니티카페, 블로그 등으로 경찰의 부실수사 논란이 확산되자 수사를 맡았던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댓글을 통해 피해자와 누리꾼들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형사과장’이라는 닉네임으로 댓글을 남긴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전담팀을 지정해 철저하게 수사토록 하겠다”면서 “누리꾼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고 밝혔다.
해당 글이 게재된 지 이틀 만인 지난 10일 강남경찰서는 형사3팀이 맡았던 사건을 강력5팀으로 재배정해 재수사에 착수했다. 이에 대해 강력5팀 관계자는 “인터넷 여론으로 중요 사건이 됐기 때문에 강력팀이 수사를 맡기로 했다”며 “가해자 신원 파악을 위해 인근 술집, 클럽, 편의점 등에 대해 탐문수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 묻지마 폭행 사건 피해자의 사건 발생 전후 모습. 아래는 피해자의 여동생이 강남경찰서의 수사 종결에 불만을 품고 네이트판에 경찰의 부실수사 내용을 공개했다.
인터넷과 SNS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강남경찰서가 팀까지 변경해 재수사를 착수하자 누리꾼들은 경찰의 부실수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A 씨의 여동생은 네이트판 게시글을 통해 ‘경찰이 열흘 동안 항의를 한 후에야 사건을 정식으로 접수했다’면서 ‘증거자료인 사건 현장 인근 편의점의 CCTV 영상도 편의점주에게 제공해달라는 요청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거짓말로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핑계를 댔다’고 경찰의 부실수사를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수차례 사건 진행에 대한 문의 전화를 했지만 담당 형사와 한 달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CCTV 영상의 캡처본도 제공해준다고 했다가 정보공개 청구를 하라고 했고, 정보공개 청구를 하자 수사 중이기 때문에 자료를 제공할 수 없다고 번복했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50여 일만에 가해자 신원 파악이 되지 않은 점과 문자 메시지로 수사 종결 통보를 한 점도 지적했다.
이 사건의 재수사를 담당하는 강력5팀도 10여 일이 지나도록 가해자 신변 확보를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일각에서는 부진한 초동수사로 재수사가 진척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한 명은 외국인이고, 다른 한 명은 모자를 쓰고 있어 용의자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가해자에게 길을 물은 뒤 대답을 듣고 간 피해자가 5분 후 다시 돌아와 실랑이를 벌이다 몸싸움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묻지마 폭행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7년 발생한 ‘울산 어린이집 성민이 사건’도 인터넷상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인터넷커뮤니티 다음 아고라에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3건의 재수사 요청 청원글이 게재됐는데, 5일 만에 3만 3500여 명의 누리꾼들이 재수사에 대한 청원에 서명한 것이다.
‘울산 어린이집 성민이 사건’ 재수사를 위한 누리꾼들의 다음 아고라 청원 서명.
지난 17일 ‘8년 전 울산 성민이 사건 재수사를 청원합니다(아동학대 관련)’는 제목의 청원글을 게재한 누리꾼 ‘스누피’는 “밤마다 어린이집 원장 부부에게 폭행을 당한 성민이는 결국 생일을 하루 앞두고 장이 파열돼 복막염으로 사망했다”면서 “성민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장 부부가 적법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재수사를 요청한다”고 주장했다.
누리꾼들은 게시판을 통해 “제2의 성민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수사해야 한다”, “작고 연약한 어린아이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자들이 치른 죗값이 이토록 가벼웠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울산 어린이집 성민이 사건’은 지난 2007년 5월 17일 24시간 보육시설인 현대어린이집에서 발생했다. 당시 이성민 군(23개월)은 우유를 먹다 토해 인근 병원의 응급실에 실려 왔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사체 부검 결과 이 군의 사인은 장파열에 의한 복막염으로 장 파열이 된 지 2~3일이 경과한 상태였으며, 왼쪽 손등에 있는 멍과 상처는 자기 방어를 위한 행동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조사에서 원장 부부는 “피아노에서 떨어졌다”고 진술했지만, 당시 보육시설의 교사들은 “피아노에 올라간 적이 없다”고 했다. 이 군의 아버지는 보육시설에 함께 맡겨진 이 군의 친형(당시 6세)이 “(원장 남편이) 때렸다”고 말한 점을 미뤄 이 군이 원장 부부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원장은 이 군의 아버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죽기 전 날 무국에 밥도 먹고, 초콜릿과 방울토마토 등도 먹었다”고 했으나 사체 부검 소견서에는 ‘적어도 3일 전부터는 전혀 음식을 섭취할 수 없었을 것. 물만 먹어도 토했을 것’이라고 적혀 있다. 이런 정황 등을 바탕으로 이 군의 아버지는 원장 부부의 경찰 진술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원장 부부는 이 군이 피아노에서 떨어져 복통을 호소하는데도 나흘간 방치한 혐의에 대해서만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다음 아고라에 게재된 청원글이 SNS에 공유돼 누리꾼들의 청원 서명이 하루에도 수천 건씩 늘어가고 있지만 경찰은 현실적으로 재수사가 어렵다는 견해다. 경찰 관계자는 “8년이나 지난 사건인 데다 폭행을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미 판결이 확정된 사건은 재수사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밝혔다.
한편 이 군을 사망에 이르게 한 원장은 집행유예를 마친 2013년부터 어린이집 재개원이 가능했다. 이에 2013년 7월부터 2014년 1월까지 누리꾼 3만 7435명이 원장에 대한 보육교사 자격 정지에 대한 청원 서약을 했다. 항간에는 해당 원장이 어린이집을 재개원했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어린이집을 재개원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009년에 발생한 ‘노원 여대생 사망 사건’도 인터넷 상에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인터넷 여론으로 재수사됐으나 44일 만에 종결 처리됐고, 피해자의 어머니가 또 다시 재수사를 요청하는 글을 게재했으나 2차 재수사는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월 7일 다음 아고라 청원 게시판에 피해자 신 아무개 양(당시 19세)의 어머니가 ‘성폭행범에 저항하다 죽은 어린 여대생의 사연과 현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인터넷을 통해 경찰의 부실수사에 대한 여론이 거세지자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가 1월 12일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재수사에 착수했으나 44일 만인 같은 해 2월 25일 내사종결 처리했다.
신 양의 어머니는 같은 해 3월 ‘성폭행범에 저항하다 죽은 어린 여대생을 두 번 죽인 경찰의 엉터리 재수사에 대해’, 5월 ‘이해할 수 없는 경찰 재수사 내용에 대해’라는 제목의 글을 총 세 차례에 걸쳐 게재하면서 경찰의 엉터리 수사를 지적했다.
신 씨 어머니의 주장에 경찰의 부실수사에 대한 인터넷 여론이 거세지자 서울지방경찰청은 재수사에 착수하는 대신 사이버경찰청 정책홍보실 게시판을 통해 “사건 발생 당시 유족의 입회하에 부검했고 사인은 추락에 따른 장기손상으로 판단됐다”며 “경찰에 피해자의 손자국, 발자국 등과 사체 상황, 목격자의 진술, 국과수의 부검 결과 등을 바탕으로 종합 수사해 관할 검사에 보고 및 지휘 받아 사건을 종결했다”고 해명했다.
이 사건은 한 신경외과 전공의가 “부검결과 사인은 추락이 아닌 구타에 의한 뇌 지주막하출혈로 밝혀졌다”는 신경외과적 소견을 아고라에 공개해 다시 한 번 주목받기도 했다.
한편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서 ‘신고전화는 112가 아닌 SNS’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인터넷 여론으로 재수사된 사건이 점차 늘어난 이유다. 한 누리꾼은 “일단 인터넷이나 SNS로 화제가 돼야 경찰이 주요 사건으로 간주해 적극 수사를 하는 것 같다”면서 “누리꾼들의 제보가 경찰의 수사력보다 우수할 때도 많다”고 설명했다.
유시혁 기자 evernuri@ilyo.co.kr
재수사에도 순서가 따로 있다 언론이 주목한 사건이 먼저? 미제 사건에 대한 경찰의 재수사가 언론에서 주목하는 사건 위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2001년 2월 나주 드들강에서 사망한 여고생 박 아무개 양(당시 17세)에 대한 미제사건인 ‘나주드들강 살인사건’은 지난 15년간 나주경찰서, 전남지방경찰청, 미제사건포럼 등에 의해 수차례 재수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나주드들강 살인사건’ 현장에서 불과 10여㎞ 떨어진 지점에서 6달 전에 발생한 미제사건 ‘나주간호사 살해사건’은 사건 발생 일주일 만인 2000년 9월 미제사건으로 분류된 이후 단 한 차례도 재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나주 드들강 살인사건’ 방송 화면 캡처. 지난해 6월 ‘나주간호사 살해사건’의 유족이 공소시효를 세 달 앞두고 ‘나주드들강 살인사건’과의 연계성을 주장하며 동일범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이를 기사화한 언론사는 몇 되지 않았다. 결국 ‘나주간호사 살해사건’의 재수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공소시효가 지나고 말았다. ‘나주간호사 살해사건’의 유족은 두 사건이 동일범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를 다섯 가지 근거를 들어 설명했다. 우선 두 사건이 6달 간격을 두고 10여㎞ 이내에서 발생했으며 두 피해자가 착용했던 옷과 신발, 금반지가 사라진 채 나체로 발견됐다. 또한 어린 아이가 뛰어놀 수 있을 만한 낮은 수심에서 사체가 발견된 점과 ‘나주드들강 살인사건’이 ‘나주간호사 살해사건’보다 사체 처리 방법이 완벽했다는 점도 연쇄 살인에 대한 증거라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유족은 나주경찰서도 두 사건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 까닭은 ‘나주드들강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때마다 나주경찰서 관계자가 서울에 거주하는 유족의 집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론이 크게 주목한 ‘나주드들강 살인사건’은 재수사가 이뤄지고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나주간호사 살해사건’은 결국 재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공소시효가 지나고 말았다. [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