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 전국 프레임, ‘근혜를 죽여, 살려’, 전북, ‘동영이를 죽여, 살려
○민심: 돌아온 못난 아들, 뻣뻣하면 죽이고, 오체투지하면 살린다
○양상: 김대중의 돌아온 탕자 정동영 대 노무현식 백의종군 문재인
○본질: 전북 정동영 부활 못하면, 김대중 호남정치 부활은 없다
[일요신문]
지난해 12월 22일 정동영 고향 땅 전라북도, 전주, 그리고 순창. 12월 22일 오후 호남 제일문을 지나 전주 한옥마을 주변에 도착했다. 이틀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날 수 있는 이점이 있는지라, 찜질방에서 숙박하면서 시내 곳곳을 누볐다. 시장, 한옥마을, 부동산, 다방, 식당을 찬찬히 돌아 다녔다. 여론조사 자료는 넘친다. 힘은 들지만, 바닥 민심을 오롯이 체감할 수 있는 현장 취재보다 더 좋은 길은 없다. 전주 바닥에서 나름의 감을 잡고, 순창으로 차를 향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접 두눈으로 확인해야 만 한다.
어라, 쉬운 길이 아니다. 전주에서 정읍을 거쳐 간다. 보통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전주 덕진에서 거의 1시간 30분 거리를 달려야 했다. 겨울 잔비가 내리는 데다 안개 마져 자욱히 내려앉아 굽이 굽이 산모통이를 돌아가는 길눈이 더욱 어둡다. 가인 김병로 선생의 생가터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오면서 차는 멈춰 섰다.
마을 상점 아주머니가 저 위에 장관님이 계신다고 웃음을 지으며, 언덕배기 집을 가르킨다. 그 아래는 씨감자를 재배하는 농장이 있다. 그를 만나기보다는 씨감자 농장과 그의 고향집, 살고있는 형편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이 없고, 비에 젖은 땅이 질퍽하고 옹색하다. 누렁이 두 마리가 나와서 꼬리를 흔든다.
그가 집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별반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본 기자가 뒤늦게 대학원에 진입하면서 정치현장을 떠난 뒤, 그의 얼굴을 직접 본지도 8년이나 지났다. 두칸 본집 마당에 그의 후배들과 친구들이 지어줬다는 서너평 남짓한 가건물이 있었다. 창고도 아닌 것이 정자도 아니다. 그래도 조그만 창문은 나 있었다.
함께 일하는 후배가 곧 나가셔야 한다면서 누구냐고 물었다. 찰라, 손님을 배웅하려 나오던 그와 마주쳤다. 어! 요한기자.. 그리고 서로 입을 다물었다. 식탁용 테이블에 책 몇 권이 쌓여 있었다. 판자벽 모서리 한켠에 한자로 씌여진 복흥산방이라는 소박한 현판을 가르키며, 겸연쩍게 웃었다. 내게는 부흥산방으로 보였다. 이런 것인가. 정동영 선배, 이렇게 간당간당 숨을 쉬면서 살고 있는가?
전북 덕진 정동영
잠깐 어색한 침묵히 흘렀고, 기자가 말문을 열었다. “지난 8년간 북한 핵무력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북한과 한반도 이야기만 합시다. 현실정치 안 묻습니다.” 북한이라는 말에 입이 열린 그는 마치 통성기도 중에 방언이 터진 크리스찬 처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대륙개척론부터 통신, 통로, 통상의 3통론, 그리고 씨감자, 김정일과의 만남의 뒷얘기까지 봇물 터지듯 했다. 추임새만 넣고 듣기만 했다. 언 듯 태산과 같은 생각을 쌓아둘 수 있는 창고가 사람의 가슴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계복귀 언제 할 것인가? 어떤 형태로 누구와 시작 할 것인가?” 일체 묻지 않았다.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줄을 이은 손님들의 은근한 채근에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지리산에서 잠시 내려온 MBC 구영회 선배에게도 인사를 드렸다.
들판 건너 멀리 가인 김병로 선생 생가터를 일러주고, 전봉준 선생이 체포된 장소가 바로 뒤편이라면서 묘비를 두고 벌어진 정읍과 순창의 에피소드를 설명했다. 씨감자 교실을 거쳐 재배밭을 직접 찾아 함께 감자를 캐는 모습이 익숙하다. 나름 마음의 평안이 보인다.
질의 응답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정 선배, 이 씨감자를 북한 김정은이 한테 보내주고 싶다는 말이지?
이 씨감자를 보내면 북한의 식량난이 반드시 해결된다는 말이지,
이 흙에서 캐어낸 것이 정동영의 귀거래사 씨감자란 말이지”
배웅하는 그의 손을 놓지 않고 눈동자를 맞추면서 물었다.
“선배, 고향 땅이란 무엇입니까”
잠시 뜸을 들인 후에 그가 말을 답변했다.
“세상에서 실패하고 무너진 육신과 영혼, 고향 땅 만은 반겨줍디다.
어머니의 따스한 품안 이지요. 감사할 뿐입니다.”
“4-13 (총선) 슬로건 입니까?”
“신약 성경말씀, 돌아온 탕자편의 이야기가 정동영입니다.”
묻지도 않았거늘, 그의 죽마고우라고 소개한 농협일꾼이 살며시 짚어왔다. 현재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1월 중순이면 정치 재계하지 않겠습니까? 기자가 되물었다. ‘그렇습니까. 1월 중순입니까?’ 뒷 좌석에 앉아 카메라를 손질하던 송기평 기자가 파안대소를 했다.
송 기자가 말했다.
“선배,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실패한 스카일렛이 ‘돌아가자, 고향 타라로 돌아가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구절이 자꾸 생각이 떠오르네”
뭐라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2007년 대통령 후보 정동영. 그리고 2015년 12월 정동영. 시간과 인간의 상관성이 이렇게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운가. 난감하다.
정동영을 어떻게 정체하여 국민들에게 정확하고 진실되게 알려드려야 할까. 고뇌를 거듭한지 한 달이 지났다. 그런 다음, 모름지기 언론이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반드시 올바르고 진실된 말과 글을 펼쳐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시대정신이고 사명이다. 원론이다. 정치인 정동영도 언론출신이다. 그래서 내가 선배라는 용어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돌아온 탕자’ 정동영
정동영, 당신은 너무나도 정직하게 스스로를 규정했다. ‘돌아온 탕자’라고. 진솔한 고백이다. 성경 누가복음 15장 11-32절에는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뒤 쫄딱 망하여, 죽음의 기로에 선 탕자의 귀거래사가 나온다.
본 기자는 ‘돌아온 탕자’ 정동영의 죄상을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겠다. 당신 정동영은 호남이 낳고, 김대중의 뒤를 이은 정치적 아들이었다. 어찌됐든 2008년 호남과 민주세력은 당시 패배가능성이 매우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호남의 아들 당신 정동영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당신 정동영이 당한 500만 표차 속에 담긴, 세칭 ‘정동영 죽이기 음모’를 호남이 모를 줄 알고 있다면 착각이다, 호남은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대선 패배 이후부터 쌓은 당신의 정치 행적이다. 미국으로 건너가 너무 일찍, 당신 마음먹은 대로 귀국했다. 그럼에도 고향 땅은 당신 정동영을 아낌없이 성원했다. 전북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대선후보 출신이면서도 너무도 쉽게 야당 주도권을 잃고 말았다. 당신은 야권을 통합하지도, 주도하지도 못한 채, 친노의 덧에 걸려 부평초처럼 이리저리 떠밀려 다녔다. 덕망과 권력집중력, 정치력 모두 잃었다.
이후 떠밀리고 쫒겨나 낙선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서울 강남으로 출마했고, 급기야 2015년에는 탈당한 뒤 관악 재보선에 출마하여 3등 했다.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났다. 친노, 한명숙, 문재인 등 남의 탓을 할 것 없다. 대선후보였던 정동영에게 만은 별개의 잣대가 적용된다. 모든 판단과 선택은 당신 정동영 스스로의 몫이자, 책임이다. 목숨을 걸지 않았다는 것.
당신 정동영이 깨지고 짓밟히는 순간과 사건들 속에서, 호남, 전북, 전주의 마음이 함께 무너져 내린, 아픔과 상처를 당신 정동영은 알고 고향 땅 순창으로 돌아왔는가?. 복흥산방, 어머니의 품안. 돌아온 탕자라고... 반드시 그 말의 진정성은 검증되어야 한다.
2. 언론은 당신 정동영이 호남과 민주세력에게 지은 정치적 죄상을 정리해야 한다
① 전임 야당 대선후보의 ‘귀국과 고향출마’라는 조급스런 처신부터 문제였다. 그 경솔한 정계복귀가 50년 호남정치 구심력을 세칭 친노에게 넘겨주는 출발점이 되고 말았다.
②목숨을 걸고 야권통합의 밀알이 되어, 김대중을 계승하는 야권의 역사를 실현했어야 한다. 그러나 당 대표, 통일부장관, 대선후보라는 헛된 깃발을 너무 오래 붙들어, 김대중 정신이 약화되고, 오히려 그들과 권력의 한덩어리처럼 비춰졌다.
③ 설상가상으로, 노무현 죽음은 감성의 정치판으로 돌변하고, 야권역사가 왜곡되었다.
④ 친문은 부산에서 조경태를 정적화 하듯이 당신 정동영을 죽였다. 나아가 호남 대부분 지역에 한명숙과 문재인 등 친노세력이 장악하여 김대중 잔재를 청소하듯이 일소하여 자신들의 입맛대로 물갈이 공천했다.
⑤ 정동영은 그들에게 척결해야 할 제 1호 정적, 즉 호남에서는 절대로 구심력 있는 대선후보급 정치인이 출현해서는 안된다는 그들의 기본인식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⑥ 결국 안일한 당신의 의식과 처신 때문에 호남정치가 죽고, 야당사가 왜곡되었다.
3. 돌아온 탕자 정동영, 호남 땅에 진심을 다해 오체투지 하라
총선은 그 땅의 중앙 대리인을 뽑는 선거다. 호남의 권력은 호남이 결정한다. 영남의 것은 영남에게로, 충청의 권력은 충청 것이다. 따라서 언론은 고향땅에서 정치를 재개하려는 당신 정동영을 검증할 권리와 책무가 있다.
살아 깨어 있는 언론이 당신 정동영 에게 묻는다. 정치를 재개하겠다면, 반드시 국민과 호남민 앞에 오체 투지하는 자세로 밝혀야 한다. 지난 수십년 간 당신의 정치노선, 그리고 호남과 전주 바닥민심을 확인한 뒤 한 달, 이제 자기검증 목록을 제시한다. 부합되지 않는다면 당신 정동영은 호남 땅에서 정치를 재개해서는 안 된다.
① 당신 정동영은 진정한 크리스챤인가? 돌아온 탕자는 죽더라도 내 아버지에게로 가서 죽겠다고 회개한 양심인이다. 당신 정동영은 진정 하나님께 맹서한 그런 마음 자세로 고향 땅 호남으로 돌아왔는가. 진정 당신이 믿는 예수그리스도께 그렇게 맹서했는가.
②당신 정동영의 진정한 역사, 그리고 정치 정체성은 무엇인가? 진정 이순신의, 전봉준의, 김대중의, 호남의, 전북의, 전주의 역사를 잇는 밀알로 변모되었는가? 전남과 전북, 호남의 양대 정치 축을 다시 세울 실사구시와 실용의 철학과 비전을 구축했는가.
③ 어머니 가슴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객지에 나간 자식과 함께 있는 법, 당신 정동영이 부평초가 되어 강남으로, 관악으로 실패하고 절망하고 깨지며 떠도는 동안, 김대중과 호남, 고향땅 순창은 함께 울고 고통스러워 했음을 진정 알고 돌아왔는가? 그들의 상처를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④ 설령 호남이 ‘돌아온 못난 아들 정동영’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도, 후진들을 양성하고 고향 땅에 뼈를 묻을 것인가. 노무현의 소음과 구호의 정치는 국민들에게 피로감만을 줄 뿐이다. 김대중의 둔중한 종소리가 되어야 한다. 이순신, 전봉준, 정약용, 김대중을 잇는 호남 역사의 종소리가 되고, 호남정치를 재건하는 기둥으로 설 수 있는가.
‘통일 씨감자’ 정동영
5. 김대중의 돌아온 탕자 정동영 대 노무현식 백의종군 문재인의 단판승부
이제 본 기자는 4-13 총선 전북지형을 전망한다. 4·13 총선의 통괄 프레임은 ‘박근혜를 죽이느냐, 살리느냐’ 로 이미 구축되었다. 그렇다면 4·13 총선 전라북도 프레임은 ‘정동영이를 죽이느냐 살리느냐’로 구축된다.
그 프레임은 ‘정동영 대 문재인’의 생명을 건 최후의 한판승부이다. 전북에서 정동영이를 죽이면,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이 제1야당이 된다는 공동전선의 포위망을 구축한다. 백의종군 한다는 문재인은 2004년 노무현의 재현이다.
김대중을 덧입은 돌아온 탕자 정동영과 노무현식 백의종군을 선언한 문재인의 생명을 건 단판승부다. 정동영이 사느냐, 문재인이 사느냐로 결판나는 전북의 몰빵 게임(all or nothing game)이다. 두 사람 중 살아남는 자가 전북전체 선거판을 독식하는, 승자 독식게임이다.
따라서 정동영 4·13 총선은 도 아니면 모다. 전북에서 정동영이 죽으면 김대중의 호남 절반이 죽는다. 정동영이 스스로를 죽이면, 전주를 벗어나 전북 전체의 선거판을 승리로 주도한다. 정동영이 홀로 살아남고자 하면, 전북 전체는 죽은 목숨이다.
정동영 혼자 살아남는 전주 덕진의 국회의원 배지 한 개는 있으나 마나한, 정동영 한사람의 명예회복 정도에 불과하다. 정동영이 전북 전체를 주도하는 새로운 중심축으로 서지 못하면 승리는커녕, 호남정치의 미래는 없다.
정동영이 진정한 호남의 아들이라면, 아들은 어머니 땅에 진정 오체투지 했는가? 호남 땅 권력은 호남민에게서 나온다. 판단과 선택은 정동영 스스로의 몫이다. 시간은 모든 과정의 숨겨진 진실을 말해준다.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성경 누가복음 15장 17-19)
박요한 선임기자 / 정치학박사 yohanlet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