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 신선우 감독(왼쪽)과 TG삼보 전창진 감독은 경쟁이 격화되면서 껄끄러운 사이가 되었다. | ||
‘KBL이 챔프전을 방송중계상 29일부터 시작한다고 결정한 데 대해 TG삼보가 KCC 봐주기라며 불평한다’는 게 바로 그것. TG삼보는 전날 인천 전자랜드를 3승으로 따돌리고 챔프전 진출권을 따내 하루 먼저 휴식에 들어갔는데 경기일정을 늦추는 것이 KCC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왜 원주 TG삼보-전주 KCC의 챔피언결정전을 놓고 ‘농구전쟁’이라는 말이 나오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예전 농구붐을 이끌었던 연세-고려, 현대-삼성 라이벌을 능가하는 두 팀의 불꽃 튀는 맞대결, 그 배경과 전망을 살펴봤다.
TG삼보는 올 시즌 역대 한 시즌 최다승(40승15패)을 세우며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KCC는 39승15패로 2위를 차지했다. 그야말로 ‘양강구도’였다. 그러다보니 신경전이 대단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양측이 서로 미묘한 감정싸움을 벌였을 정도.
먼저 KCC가 지난 1월17일 울산 모비스로부터 바셋을 ‘임대 트레이드’한 게 신호탄이었다. 선두 독주를 하는 TG삼보를 잡기 위해 KCC가 강수를 둔 것이었다.
원주 TG삼보는 ‘정의’를 외쳐가며 비난했고, 전주 KCC는 “규정 내에서 한 일”이라며 일축했다. 결국 KBL이 오락가락한 끝에 KCC의 손을 들어줬고, TG삼보는 정규리그 막판까지 KCC의 추격에 시달린 끝에 우승컵을 차지했다.
‘기록 밀어주기 추태’에 대한 책임론도 양측이 각을 세우고 대립했다. 3월7일 정규리그 마지막날 TG삼보와 전자랜드는 각각 김주성의 블록슛 1위, 문경은의 3점슛 1위를 만들어주기 위한 ‘짜고 치는 고스톱식 농구’를 펼쳤다. “스포츠의 기본을 망각한 처사”라는 엄청난 비난을 샀고, 결국 KBL이 블록슛 및 3점슛에 대해 시상 유보를 결정했다.
TG삼보가 명백히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날 KCC가 모비스전에서 문경은과 경쟁관계였던 우지원에게 소나기 3점슛을 만들어줘 먼저 사태의 빌미를 마련한 측면도 있었다. “KCC가 먼저 한 대 때리면서 패싸움을 일으킨 후 자기는 조용히 빠져나갔다”는 게 TG삼보측의 호소. 이에 KCC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른다”고 힐난했다.
이밖에도 6강 플레이오프에서 오리온스가 판정시비 끝에 LG에 패하자 ‘정규리그에서 오리온스에게 1승5패로 약세를 보였던 KCC가 준결승에서 손쉬운 상대인 LG를 고르기 위해 작업을 폈다’는 음모론이 나돌기도 했고, ‘TG삼보가 리온 데릭스가 부상에서 복귀했는데도 임시용병이었던 얼 아이크를 불법으로 계속 데리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차기 KBL 총재 후보로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거론되면서 ‘KCC 밀어주기’설까지 나오고 있다.
전주 KCC 신선우 감독(49)과 전창진 원주 TG삼보 감독(41)은 가깝고도 먼 사이다. 용산고 선후배(각각 25, 33회)로 한때 둘도 없이 친했지만 현재는 둘 사이에 가까움과 멈 두 가지가 공존해 있다.
“선우형”, “창진아” 하며 원래 둘도 없이 친했던 두 사람은 몇 년 전 TG삼보 소속이던 한 선수의 트레이드 논의 과정에서 앙금이 쌓이게 됐다. 트레이드가 합의돼, TG삼보측이 해당선수의 환송파티까지 다 치렀는데 KCC가 이를 뒤집어 감정이 생긴 것이었다. 또 ‘화해’, 정확히 말하면 신선우 감독의 사과 과정에서 감정이 악화돼 둘은 1년이 넘도록 신경전을 펼쳐왔다.
결국 고고하기로 소문난 신선우 감독이 먼저 후배를 찾아 감정을 풀었고, 이후 서로 경기가 있을 때는 전날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눌 정도로 관계가 회복됐다. 하지만 올 시즌 들어 우승경쟁이 격화되고, 잇단 악연이 계속되면서 이제는 다시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
둘은 농구인생이나, 지도스타일도 대조적이다. 연세대-현대의 적자인 신선우 감독은 국가대표 센터 출신으로 화려한 선수생활에 이어 지도자로도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반면 고려대-삼성 라인의 기대주인 전창진 감독은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마감했고, 이후 선수단 주무-프런트-트레이너를 거쳐 최근 차세대 지도자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워낙 수가 많아 ‘신산’(神算)으로 불리는 신 감독이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에게 “시즌 중 면담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독재형’인 반면 ‘젊은 오빠’ 전 감독은 ‘명랑내무반’을 기치로 친형같이 선수단을 이끄는 ‘민주형’이다.
“창진이한테는 양보 못하겠다.” “선우형한테는 안 진다.” 농구전쟁이 ‘감독전쟁’으로 변한 까닭이다.
양 팀의 대립이 워낙에 팽팽하다 보니 언론도 둘로 나눠지고 있는 모습이다. 예컨대 A신문은 TG삼보, B·C신문은 KCC 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두 구단의 미묘한 감정싸움이 신문기사에도 반영되고 있는 현실이다.
예컨대 LG-오리온스의 6강플레이오프 3차전 편파판정을 놓고 LG측이 ‘승부조작’을 주장한 오리온스에 “우리가 했다는 얘기냐”고 강력히 항의하자 오리온스가 “다른 팀이 있다”고 답했다는 얘기가 기사에 나왔다. 당연히 이는 ‘KCC 음모설’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는데, TG삼보쪽에 가까운 A신문에 보도돼 눈길을 끌었다.
반면 B신문은 TG삼보측이 민감해할 ‘얼 아이크 문제’, ‘원주 계시원 의혹’ 등을 제기해 ‘배후에 KCC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상황이 이쯤 되자 농구기자들을 상대로 한 ‘로비전쟁’도 치열하다. 정규리그 막판 KCC가 전주에 취재차 내려온 기자들을 상대로 거한 술자리 등 극진히 대접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평소 기자들을 살갑게 대하지 않는 신선우 감독까지 술자리에 나와 분위기를 띄웠다는 것이었다.
이런 차에 KBL 시상식에서 KCC 표명일이 예상을 깨고 ‘우수후보선수상’과 ‘기량발전상’, 두 부문을 수상했다. 또 KCC 이상민이 TG삼보의 신기성을 제치고 ‘베스트5’의 가드상을 받는 등 전체적으로 우승팀 TG삼보보다 준우승팀 KCC에 수상자가 많았다.
‘괴소문’까지 나돌았던 터라 TG삼보측에서는 “돈 많은 KCC의 로비 탓”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상대적으로 모기업의 재정 지원이 약한 TG삼보이기에 더욱 그런 생각을 품음직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설까. 플레이오프 들어 TG삼보측도 대 언론 로비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는 후문이다. 사실이라면 농구전쟁이 ‘감독전쟁’을 거쳐 ‘로비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유병철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