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엘류 감독 | ||
쿠엘류 국가대표팀 감독의 운명이 판가름날 것으로 관심이 모아졌던 지난 8일, 대한축구협회 5층 회의실에서 장장 7시간이 넘는 기술위원회 회의를 마친 김진국 위원장이 쿠엘류 감독의 거취에 대한 결정을 19일 회의 때까지 유보하겠다고 발표하자 여기저기서 기자들의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김 위원장은 계속되는 기자들의 질문을 뒤로한 채 서둘러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남아 있던 기자들은 저마다 경질과 유임이란 상반된 해석을 내놓은 채 매체마다 엇갈리는 기사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쿠엘류 감독은 경질되는 것인가? 아니면 유임되는 것인가? 19일로 판단을 미루긴 했지만 이미 기술위원회는 물론 협회 고위층에서 쿠엘류 감독을 유임시키기로 했다는 ‘근거 있는’ 소문이 돌면서 쿠엘류 감독의 향후 3개월 임기 보장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안개처럼 퍼지고 있는 ‘쿠엘류 감독의 유임 시나리오’의 배경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달 31일 몰디브전이 충격적인 0-0 무승부로 끝날 때만 해도 축구 관계자들은 물론 축구팬들도 ‘쿠엘류 감독을 포르투갈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성토 분위기가 가득했다. 협회 관계자들도 쿠엘류 감독이 4월3일 K-리그 개막일 FC 서울의 개막 경기를 보기 위해 상암경기장을 찾는다고 했을 때 강하게 만류했을 정도로 여론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쿠엘류 감독의 경질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총선으로 인해 여론의 관심이 흐려지면서 쿠엘류 감독의 경질 문제가 점차 색깔을 달리하는 듯하더니 결국엔 8일 기술위원회에서 ‘신중한 결정을 위해 판단을 유보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축구협회의 한 관계자는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시간을 벌어 경질 분위기를 희석시키기 위한 제스처”라며 기술위원회의 입장 유보를 달리 해석했다.
몰디브전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경기 결과까지 가장 가까이서 현장을 목격한 김진국 기술위원장은 현지에서 대표팀 관계자들에게 쿠엘류 감독의 경질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장소·기후 등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훈련 프로그램과 경기 중 시스템과 작전 변화 등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부분 등 쿠엘류 감독의 문제점을 면밀히 체크한 김 위원장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대로 보고서를 작성해 기술위원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쿠엘류 감독과의 인연을 정리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 김진국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쿠엘류 감독이 물러나면 사표 내는 거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 ||
실제로 지난 8일, 김 위원장은 기자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 시간에 한 기자가 “쿠엘류가 경질되면 기술위원들도 사표 내는 거냐”고 묻자 즉답을 회피한 채 화제를 돌리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축구 관계자는 “한국 축구를 위해서 위원장이 살신성인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려 하면 ‘월드컵 예선 탈락’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올 수도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쿠엘류 감독은 기술위원회에 참석해서 몰디브전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자리에서 “임기가 보장된다면 현재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 난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면서 현 대표팀 선수들에 대해 정신력이 안이하고 선수들간의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선수들한테 그런 문제가 있다면 감독이 나서서 ‘수술’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게 축구전문가들의 중론. 특히 몰디브의 기후와 운동장 사정, 선수들의 비행 스케줄 등을 부진의 원인으로 꼽는 감독의 변명은 감독 스스로 ‘자격 없다’고 선전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비난이 가득하다.
대표팀의 한 관계자는 “축구는 40℃가 넘는 곳에서도, 폭설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열리는 경기다. 자신의 문제점을 시인하기보단 자꾸 원인을 주변으로 돌리는 감독을 어느 선수가 믿고 따르겠느냐”며 한탄했다.
그러나 쿠엘류 감독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약기간(2004년 8월·아시안컵대회 기간까지) 고수’를 주장하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퇴’는 있을 수 없다는 것. 설령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먼저 물러나지 않겠다는 게 쿠엘류 감독의 입장이자 ‘자존심’이라고 대표팀 관계자는 설명했다.
‘배짱을 부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쿠엘류 감독의 대표팀 감독 자리에 대한 ‘미련’을 놓고 이 관계자는 이렇게 탄식을 쏟아냈다.
“이젠 원정경기로 치러지는 레바논전(10월13일)도 안심할 수 없다. 레바논을 상대로 패할 경우 우린 예선 탈락의 길로 향한다. 아니, 베트남전(6월9일·한국, 9월8일·베트남)도 걱정이다. 워낙 쇼크를 많이 먹다보니 어느 팀도 만만히 볼 수 없는 게 대표팀의 현실이다. 하지만 8월 이후의 두 경기를 치를 때는 이미 쿠엘류 감독의 계약기간이 종료돼 한국을 떠난 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