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6천8명의 다른 타자들을 상대한 것은 아니고, 어떤 타자는 20~30번 이상 대결한 적도 있고, 또 어떤 타자는 2~3번 상대한 것이 전부인 경우도 있다. 어떤 투수든 그렇지만, 그 가운데 유난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자가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되니 흔히 징크스라고 하는데, 박찬호도 타석에만 들어서면 힘을 쓰지 못하고 당하는 ‘천적’ 타자들이 꽤 된다. 지난 17일의 시애틀 마리너스전만 해도 브래트 분과 댄 윌슨에게는 각각 3안타씩을 맞았고, 존 올루드는 세 번 연속 볼넷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박찬호의 ‘천적’에 대해 알아본다.
메이저리그(MLB)에서 10번 이상 박찬호와 상대한 타자 중에 피안타율 3할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는 총 20명이다. 그 중에 박찬호를 상대로 최고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는 공교롭게도 현재 동료가 된 브라이언 풀머다.
▲ 풀머, 차베스 | ||
두 번째로 고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바로 시애틀의 포수 윌슨이다. 주로 7~8번에 기용되는 약한 타자임에도 불구하고 윌슨은 박찬호에게 13타수 8안타로 6할1푼5리를 기록하고 있다. 박찬호만 만나면 공이 수박만 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시애틀 타자들 중에는 브레트 분(3할2푼1리)과 올루드(3할)가 박찬호의 공을 아주 잘 치는 반면 최고의 지명 타자로 대우받았던 에드가 마르티네스는 11타수 2안타로 1할8푼2리에 그치고 있고, 천재 타자라는 이치로 역시 15타수 3안타로 2할에 불과해 대조를 이룬다.
역시 같은 조 라이벌인 오클랜드 에이스에는 에릭 차베스와 저메인 다이가 박찬호의 천적으로 불릴 수 있다. 차베스는 홈런 1개 포함 18타수 7안타로 3할8푼9리를 자랑하며, 다이의 경우는 아주 특이하게 13타수 4안타로 3할8리인데, 4안타가 모두 홈런이다. 본인 스스로가 “나는 박찬호를 상대하면 홈런 아니면 삼진”이라고 말할 정도인데, 13번 중에 4홈런과 함께 5개의 삼진을 당했고 8타점을 기록했다.
올 시즌 2패나 안긴 애너하임의 경우는 개럿 앤더슨(27타수 9안타·3할3푼3리) 정도를 빼면 특별히 박찬호의 공을 잘 치는 선수가 없는 반면, 2할7~2할8푼대로 박찬호의 공을 꾸준히 쳐내는 타자들이 많다.
박찬호는 올 시즌 시애틀, 오클랜드, 애너하임 등 같은 조 라이벌들과 3~4차례 이상씩은 대결해야 하므로, 이들 천적 타자들을 틀어막는 것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지름길이다.
그렇다면 MLB에서 박찬호에게 가장 많은 홈런을 뽑은 타자는 누구일까?
이제는 리그가 달라 거의 만날 일이 없어진 배리 본즈가 박찬호로부터 7개를 쳐내 최다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박찬호는 본즈와 관련된 쓰라린 기억이 있는데, 바로 지난 2001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등판했던 경기에서 본즈에게 역대 최고 기록인 한 시즌 71, 72호 홈런을 연속으로 허용했었다.
▲ 베리 본즈, 이치로 | ||
박찬호에게 3개 이상의 홈런을 친 타자는 모두 8명이다. 본즈에 이어 저메인 다이와 뉴욕 메츠의 클리프 플로이드, 콜로라도의 토드 헬턴 등이 홈런 4개씩을 쳤고, 새미 소사(커브스) 레이 랭포드(세인트루이스) 제프 젠킨스(샌디에이고) 크렉 비지오(휴스턴) 등이 각각 3개씩을 쳐냈다.
그 중 소사는 36타수 7안타로 타율은 1할9푼4리에 그쳤지만 역시 거포답게 3홈런을 기록했다. 헬턴 역시 30타수에 8안타지만 그 중에 절반이 홈런이었고, 플로이드는 21타수 8안타로 3할8푼1리에 4홈런 10타점으로 플로리다 시절부터 박찬호의 유명한 천적이었다.
특이한 점은 10타수 이상으로 기준을 두지 않을 경우 보스턴에는 박찬호와 몇 번 안되는 대결에서 아주 강한 면모를 보인 타자들이 많다는 것. 매니 라미레스가 5타수 2안타, 미라벨리가 4타수 2안타, 그리고 가르시아파라가 5타수 3안타 등을 기록했고, 올 시즌 다시 보스턴으로 간 엘리스 버크는 17타수에 2홈런 포함, 7안타로 4할1푼2리를 기록했다.
이렇게 박찬호의 천적 타자들만 소개하니 마치 MLB 타자들은 모두 박찬호의 공을 아주 잘 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모두 6천8번 타자와 상대해 허용한 안타가 1천2백20개. 그러니까 박찬호에게 안타를 뽑은 확률은 20.3%에 불과하다. 그 중에 홈런이 1백53개였으니, 홈런을 칠 확률은 2.55%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박찬호에게 천적이 있듯이, 또한 박찬호를 천적으로 두려워하는 타자들도 아주 많다는 걸 반증한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미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