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19일 쿠엘류 축구대표팀 감독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진사퇴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프로팀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냉엄한 프로세계에서 감독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다. 흔히 ‘야전 사령관’으로 비유되는 프로팀 감독은 선수는 물론 팬들조차 한번쯤 꿈꿔 보는 자리지만 동시에 엄청난 부담이 동반되는 직책. 팀 성적에 따라 울고 웃는 프로 감독들의 짧고 가느다란(?) ‘생명줄’ 이야기를 풀어본다.
3대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한 팀의 최장수 감독 기록을 가지고 있는 사령탑은 다름 아닌 김응용 감독(63·삼성)이다. 지난 83년 해태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부임한 이래 2001년 삼성의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무려 18년 동안 해태의 감독직을 맡았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시리즈 9회 우승, 정규리그 통산 1천93승 등 숱한 기록을 남겼으며 삼성으로 팀을 옮긴 지금도 최다승 기록을 이어가며 ‘우승 청부사’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한 팀에서 가장 오랫동안 수장직을 맡고 있는 감독은 누구일까.
의외로(?) 현대 유니콘스의 김재박 감독(50)이다. 김 감독은 96년 현대 유니콘스의 초대 감독으로 임명돼 올 시즌까지 9년째 현대의 감독직을 맡고 있다. 프로 농구의 경우는 KCC 신선우 감독(48)이 97시즌부터 현재까지 8년째, 프로 축구의 경우는 성남 일화 차경복 감독(67)이 98시즌부터 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반면 ‘감독 수명’이 짧은 사례로는 안타깝게도 작고한 감독들의 이름이 많이 올랐다.
프로스포츠 최단명 감독은 고(故) 신윤기 전 부산 대우 감독. 신 감독은 96년 6월10일 감독으로 승격했으나 그해 9월8일 급성백혈병으로 쓰러져 유명을 달리해 팬들과 선수들을 안타깝게 했다. ‘빨간 장갑의 마술사’로 불렸던 고 김동엽 전 해태 타이거즈 감독은 프로야구 최단기 감독 기록을 남겼다. 김 감독은 82년 1월5일 해태의 초대감독을 맡았으나 코치진 및 선수들과의 불화로 같은 해 4월28일 경질됐다. 그가 감독직을 수행한 기간은 고작 1백15일이다.
그렇다면 상당수 감독들이 한 팀에서 오래 있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성적 부진으로 인한 중도하차가 많기 때문이다. 좋은 성적이 곧 미덕인 프로세계에서 성적 부진은 곧 ‘감독 탄핵’의 결정적 이유가 되는 셈이다.
▲ 김응용 감독(왼쪽)은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최장수. 김재박 신선우 차경복 감독(오른쪽 위부터)도 7~9년간 지휘봉을 잡고 있다. | ||
팀 성적이 좋았음에도 구단과의 관계, 분위기 쇄신 등을 이유로 감독직에서 물어나야 하는 경우도 있다. 창원 LG의 김태환 전 감독은 계약 기간이 1년이나 남았음에도 얼마 전 돌연 경질됐다. 꾸준히 성적을 유지했던 터라 김 감독의 전격적인 경질 결정에 의문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LG 구단측에서는 “몇 년 동안 우승하지 못했다.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만을 되풀이 했다.
2002년 시즌 LG 트윈스를 한국시리즈까지 올려놓고도 ‘탄핵’당한 김성근 전 감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용병술과 인자한 성품으로 당시 약체라고 평가받던 LG 트윈스를 강팀으로 만들었지만 구단과 팀 컬러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팽’당했다.
위의 경우가 자신들의 명예나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며 구단에서 쫓겨나는 것이라면 좋은 팀을 찾아서, 또는 능력을 인정받아 스카우트돼 팀을 옮기는 감독들도 있다. 이때에는 선수들 못지않은 높은 몸값이 동반된다.
유재학 감독(48)은 전자랜드에서 모비스로 팀을 옮기면서 2억3천만원이라는 연봉을 받았다. 지난 시즌까지 전자랜드 감독을 맡으면서 1억4천5백만원을 받았으니 무려 50%가 넘는 연봉 인상률을 기록한 셈. 유 감독의 경우 지난 시즌 만년 하위 팀 전자랜드를 4강에 올리며 재계약이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시즌이 끝난 직후 모비스로 팀을 옮긴 것은 ‘돈’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
유 감독을 시작으로 농구판에는 줄줄이 새로운 감독들이 등장했고, 이들 대부분이 유 감독 선의 연봉을 보장받았다. 프로농구 출범 이후 8년 동안 같은 팀을 지도하면서 세 번이나 팀을 우승시킨 신선우 감독의 연봉이 1억 9천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새로운 감독들의 연봉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프로=돈’이라는 공식은 선수뿐 아니라 감독들에게도 적용되는 법. 언제 잘릴지 모르는 프로 감독들의 압박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최혁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