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잠시 귀국한 최경주는 “뒤로 가지 않고 앞으로만 달리는 ‘탱크’라는 별명이 점점 맘에 든다”고 말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난 19일 ‘SK텔레콤오픈 2004’에 참가하기 위해 귀국한 최경주를 프로암대회가 열리는 경기도 백암비스타 CC에서 만났다. PGA(미국프로골프) 5년차라는 프로필은 부와 명예, 그리고 여유도 함께 선사한 것 같다. 최경주는 6시간 정도 걸린 라운딩에서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고 라운딩이 끝난 후에도 퍼팅 연습장에서 선후배 프로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프로암대회 중에는 갤러리의 입장으로, 인터뷰 때는 기자로, 그리고 인터뷰가 끝난 뒤에는 팬이 될 수밖에 없었던 ‘오렌지 탱크’ 최경주와의 밀착 인터뷰를 소개한다.
얼굴로 먹고 들어가 먼저 ‘탱크’라는 별명에 대한 최경주의 만족도가 궁금했다. ‘탱크’라는 별명은 2년 전 LA에서 벌어진 닛산오픈에서 갤러리들이 최경주의 골프 치는 모습을 보고 저돌적인 ‘탱크’가 연상된다고 말한 것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그대로 굳어졌다. 최경주는 “자주 듣다 보니 점점 맘에 드는 것 같다”면서 “탱크라는 게 뒤로는 가지 않고 앞으로만 달리지 않느냐”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탱크라는 비유가 너무나 남성다운(?) 자신의 외모를 빗댄 표현 같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최경주는 자신을 ‘부드러운 남자’로 소개했다. 그는 “눈매가 부리부리하고 피부가 검다 보니 무뚝뚝하고 터프한 이미지로 보여지는 것이 다소 억울하다”면서 “하지만 대화를 나누고 나면 ‘저 사람 유머도 있네’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웃었다.
최경주는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차갑고 무서워 보이는 인상으로 인해 PGA 데뷔 초기 다른 선수들보다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며 힘든 시절을 떠올렸다.
PGA에서 동료 선수들로부터 ‘미스터 하우 아 유(Mr. How are you)’로 불리는 그는 인사성이 밝은 선수로 통한다. 처음엔 가는 골프장마다 생소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스트레스는 상당히 심리적인 위축을 가져왔다고 한다. 이때 최경주가 선택한 건 정면 돌파였다.
“동료 선수들과 먼저 편하게 지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조건 인사부터 했다. 무시하는 선수들도 제법 있었지만 인사를 건네도 받지 않을 때는 며칠이 걸리든 받을 때까지 계속 했다. 그 덕분에 지금은 KJ(최경주의 미국명)를 각인시켰고 이런 사실을 아는 지인들은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지금도 놀리곤 한다.”
팔 길어 역도 포기 이렇게 자신감으로 뭉친 최경주이지만 골프 선수로서 신체적인 조건에 대한 아쉬움도 숨기지 않았다. 최경주는 “세계 10위권에 드는 선수들은 공통적으로 키가 커 분명 이점이 있다”면서 “순발력만큼은 자신 있는데 이 키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최경주는 학창 시절 야구, 축구, 역도 선수로 활동할 만큼 운동신경이 상당히 좋았다고 한다. 지금도 야구와 축구는 골프만큼이나 좋아하는 스포츠 종목이라고.
‘오렌지족’ 탱크 눈썰미가 있는 팬이라면 최경주의 골프 패션에서 변하지 않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모자다. 스폰서인 ‘슈페리어’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들어가 있는 창이 상당히 큰 썬 캡은 여느 시합에 출전해도 변함이 없다. 최경주는 이 궁금증에 대해서 “수많은 모자를 써 보는 시행착오(?) 끝에 내가 써서 편하고 남이 봐서 괜찮아 보이는 모자가 썬 캡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최경주는 패션 코디에 대해서 LPGA에 출전하는 여자 프로들이 상당히 예민한 것과는 달리 까다로운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경주는 최근 ‘오렌지족’으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오렌지색=KJ 컬러’로 부각시키겠다는 포석이다.
“3년 전 드라이버와 우드를 오렌지색 샤프트가 장착된 것을 사용하면서 성적이 좋아지는 것 같아 올해 초 닛산오픈 때 아이언까지 모두 오렌지색 샤프트로 교체했다”고 밝힌 최경주는 “하나의 징크스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골프가 심리적인 안정이 필요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하고픈 욕심에 오렌지색을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우게 됐다”며 오렌지색에 얽힌 사연을 털어놨다.
벤 호건과 바비 존스 ‘학창 시절에는 조금 놀았을 것 같다’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최경주는 “아니, 도대체 어딜 봐서 그런 것 같냐”며 태연한 모습으로 근거를 제시하라고 압력(?)을 넣어 주위 사람들을 웃음바다로 몰아넣기도. 최경주는 “‘××친구’들과는 아직까지 격의 없이 지내며 놀 때면 제대로 놀지만 ‘범생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제될 정도로 논 것 같지는 않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끝으로 그는 지금은 작고한 전설적인 골프선수인 벤 호건과 바비 존스를 라운딩하고 싶은 유일한 파트너로 꼽았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