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의 박명환 투수가 생생토크중에 특유의 ‘딱딱한’ 투구폼을 선보이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현재 탈삼진 부문 1위에 올라 있는 박명환과의 만남은 지난 2일 잠실야구장에서 진행됐다. ‘이병훈의 생생 인터뷰’가 이승호와의 대결에서 행운을 안겨주는 인터뷰가 되길 바란다며 너스레를 떤 박명환은 다음날 기대한 대로 선발승을 따냈다. 최근 진정한 ‘닥터 K’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박명환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담아본다.
이병훈(이): 머리 염색을 왜 그렇게 심하게 했냐?
박명환(박): 뭐, 팬 서비스 차원이죠. 특히 나이 어린 팬들은 사복 입은 선수들을 잘 못 알아보거든요.
이: 가장 욕심나는 타이틀이 있다면?
박: 제가 탈삼진 부문에서 2위만 두 번했어요. 그래서 당연히 욕심이 나죠. 팀을 위해선 다승왕을 해야 되는데 지금까지는 운이 따라주지 않더군요.
이: 그럼 타선 지원을 못 받았다는 얘기야?
박: (펄쩍 뛰며) 그게 아니고 다승왕을 하기에는 뭔가 부족했고 부상도 있었다는 얘기죠. 두산 타선이 뭐 어때서요? 요즘 펄펄 날고 있는데.
이: 프로 8년 동안 풀타임으로 뛴 적이 몇 번이나 되지?
박: 99년 어깨 부상 말고는 거의 풀타임으로 뛰었죠. 그런데 98년, 2002년, 14승만 두 번 했어요. 그게 아쉽다는 거죠. 그래서 올시즌 목표를 15승으로 잡은 거예요.
이: 네 투구폼이 딱딱하다는 거 알고 있니?
박: 선배님, 제 투구폼이 부드럽기까지 하면 타자들 다 죽었게요. 상상해 보세요. 딱딱한 폼으로 150km가 넘는데 부드러우면 160km죠.
이: 그래 타자들이 무지 고맙게 생각하겠네.
박: 하하, 농담이고요, 사실 힘으로만 던지다가 어깨 부상을 입고 10m도 못 던질 때 선수 생활 끝장난 줄 알았어요.
박: 그렇죠. 그때는 너무 괴로워서 술 퍼먹고 사우나에서 잔 적도 여러 번 있었어요. 딱 한 달 동안 방황하다가 오기가 발동했죠. 그때부터 남들보다 3~4시간 먼저 나와서 근력 강화 운동을 엄청나게 했어요. 죽기살기로 했던 게 보약이 된 거죠.
이: 어렸을 때 꿈이 뭐였니?
박: 저는 초등학교 2~3학년때부터 주머니에 5백원만 있으면 무조건 잠실야구장으로 달려갔어요. 그때부터 OB를 너무 좋아했어요.
이: 그래서 고교 졸업 후 곧바로 OB에 입단한 거야?
박: 사실 이건 처음 밝히는 얘기인데요, 제가 고3때 집에 빚이 많았어요. 그런데 OB에서 입단 제의가 들어온 거죠. 그때 아버님이 OB 구단에 3억원만 주고 데려가라 하셨는데 곧바로 다음날 OB에서 3억원을 가져왔어요. 저는 좋아하던 OB에 입단하게 돼 좋았고 부모님은 빚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게 돼서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이: 몇 살까지 현역으로 뛸 자신이 있어?
박: 나이와는 상관없어요. 실력이 없어 팀에 민폐다 싶으면 제가 알아서 은퇴할 겁니다. 싸나이가 자존심은 지켜야죠.
이: 결혼 소식이 들리던데.
박: 예. (갑자기 표정이 밝아지면서) 올시즌 끝나고 할 겁니다.
이: 예비신부 자랑 좀 해봐. 멍석 깔아 줄 테니.
박: 나이는 스물 여섯이고요, 한의학을 공부중이죠. 제일 좋은 점은요, 일단 야구를 전혀 몰라요. 결혼해도 야구 때문에 절 피곤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부모님한테 너무 잘하는 착한 여자예요. 4년동안 사귀었는데 변함이 없어요.
이: 부디 그 마음 변치 않기를 바란다. 요즘 (이)승엽이랑 연락은 자주 하니?
박: 그럼요. 승엽이 형이 너무 힘들어 해서 안타까워요. 한국에서는 제일 친한 사이였는데 떨어져 있으니까 힘이 돼주질 못하잖아요. 그냥 전화통화하며 이야기로만 스트레스를 푸는 수준이죠.
이: 팬들에게 인사 한 마디 해라.
박: 항상 마운드에서 최고의 모습만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응원 많이 해주시고 제 결혼식에 많이 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