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일요신문 DB
A 씨는 지난 2012년 7월, 인터넷에서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를 전전하다 ‘고소득 밤알바’라는 광고를 봤다. ‘하루 최저 50만 원에서 최대 150만 원 수입 보장, 당일 지급’이란 문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느새 게시글 아래 적혀 있던 전화번호가 A 씨 휴대폰에 한 글자씩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는 테헤란로 이면도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팀장’을 만났다.
팀장은 친절했다. A 씨에게 자신이 속한 회사를 가리켜 ‘에이전시’ ‘캐스팅 업체’라고 표현했다. 그의 ‘회사’는 강남에서 유흥업소 종업원을 모집·관리하는 업체다. 에이전시로 불리는 이 업체는 강남에 서너 군데가 있다. 이곳에 속한 종업원 수만 200여 명, 팀장과 같은 관리 전담 직원만 15여 명에서 20여 명에 달한다.
팀장은 A 씨에게 “충분히 믿을 만한 ‘안전’한 회사”라며 “광고 내용에는 단 하나의 거짓도 없다”고 설명했다. 계약을 맺은 룸살롱은 15여 곳이며, 술값이 적어도 몇 백만 원은 나오는 ‘텐프로’부터 ‘쩜오’ ‘세미’ ‘카페’ ‘퍼블릭’ 등 종류도 다양하다고 했다. 그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는 A 씨가 직접 정하고 일만 하면 된다”며 “다른 것들은 팀에서 ‘케어’ 해준다”고 했다.
A 씨는 다음날 바로 팀장의 ‘케어’를 받았다. 당장 논현동에 위치한 보증금 700만 원에 월세 65만 원짜리 원룸 오피스텔을 소개 받았다. 700만 원은 팀장을 보증인으로 세워 사채업자로부터 빌렸다. 선이자 20%, 하루 7만 원씩 갚는 방식이었다. A 씨는 “최소 수입만 50만 원이라고 해서 몇 달만 버티면 금방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A 씨가 출근한 곳은 강남의 빅3, 한국에서 가장 큰 업소로 손가락에 꼽히는 곳이었다. 룸이 70여 개에 이르렀고, A 씨와 같은 업소 종업원만 하루에 150명, 대목에는 200명이 오갔다. 오후 7시, 출근에 앞서 A 씨가 들러야할 곳이 있었다. 운동복을 입고 나와 오피스텔 인근에 위치한 미용실에서 긴 머리카락을 올리거나 부풀렸고. 진한 화장을 했다. 근처 명품 대여점에선 옷과 액세서리를 빌렸다.
처음 일하던 날, A 씨는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고 했다. 팀장의 말과 달리 ‘매너 좋은’ 남성은 거의 없었다. 그들의 손은 A 씨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끊임없이 치마를 들췄다. ‘오늘만 참고 나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A 씨는 남성들의 손을 뿌리치며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A 씨가 다니던 업소의 ‘상무’라고 불리는 마담은 2차를 권유했다. 정확히 2차가 뭔지도 모르던 때였다. 상무는 A 씨에게 “연인에게 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고 했다. 망설일 틈도 없이 거절했다. 그러자 그는 팀장을 불렀고, 팀장은 A 씨에게 조용히 서류를 꺼냈다. 방 보증금 700만 원이 있었다. 여기에 오피스텔에 있는 가재도구와 가전제품, 미용실과 명품 옷 대여 비용, 택시비에 기타 생활비까지, 모두 빚이었다. 그 자리에서 따진 것만 1000만 원이 넘었다. 빚을 떠안고 업소를 떠나는 것과 2차를 가는 것을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A 씨는 2차를 나가지 않으면 절대 빚을 갚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날 알게 됐다.
룸에 들어가는 것은 하루 서너 번 정도였다. 다른 종업원들보다 많이 들어가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성매매를 해야 했다. 테이블비로 받는 팁이 10만 원, 성매매 비용이 20만 원이었지만 이 중 10% 정도는 업소가 가져갔다. 어림짐작으로 ‘일주일이면 평균 200만~300만 원, 한 달 1000만 원, 1년이면 1억 원은 벌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처음 빌린 1000만 원은 갚지 못했다. 오히려 빚은 1년 뒤 수천만 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빚이 불어난 이유는 다양했다. 진상 손님이 내지 않고 나간 술값, 실랑이 하느라 들어가지 못한 룸 비용, 단속으로 영업을 못하게 됐을 때도 부담해야 하는 이자, 미용실, 택시비, 명품 대여비 등이었다.
그 중 가슴 성형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1년 반이 지나, 빚이 거의 사라지기 시작할 때였다. 팀장의 권유로 가슴 성형을 했다. 원해서 한 것은 아니었다. “손님들이 원한다” “지명 늘려야 빚도 빨리 갚는 거 아니겠느냐”는 등, 권유는 집요했다. 하지만 수술비 1000만 원은 좀처럼 내기 힘들었다. 회복 기간 생활비도 떠올랐다. 결국 또 사채를 썼다. 필요한 건 1000만 원이었지만, 1500만 원을 빌렸다. 나머지는 팀장에게로 갔을 것이라고 생각만 할뿐이었다. 성형외과도 팀장이 추천한 곳이었다. 그리고 A 씨는 다시 1년 반을 일했다.
A 씨는 3년간 돈을 ‘갖고’ 싶어 웃음을 팔았고, 몸을 내줬다. 업소와 팀장의 횡포는 ‘불법 성매매 종사자’라는 타이틀에 가려졌다. A 씨가 겪은 일은 지금 이 순간도 다른 종업원들에게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A 씨는 “종사자 대부분은 자의로 시작했으니 타의로 불행을 겪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A 씨는 스스로 여성단체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건 내 욕심이겠죠?”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