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보 대표팀과 함께. 가운데 콧수염 난 이가 보단 코치. | ||
강원도 횡계에서 훈련한 지 한 달째로 접어드는 경보 국가대표선수들을 만났다. 이번 올림픽에는 역대 최대 선수인 5명의 한국 대표선수들이 참가해 열띤 경쟁을 펼칠 전망이라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적극적이면서도 밝은 분위기 속에서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훈련 장소는 직선과 약간의 곡선이 있는 한적한 국도로 반환점인 1km의 길에는 100m마다 거리가 표시가 돼 있었다.
먼저 배해수 통역 겸 트레이너로부터 유니폼을 건네받고는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지도자 보단 브라코브스키 코치로부터 직접 경보의 기본 자세에 대해 배우는 행운의 기회를 가졌다. ‘경보계의 히딩크’라고 불리는 보단 코치에게 육상인들이 보내는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경보할 때 양 발바닥 중 한쪽이 꼭 붙어 있는 상태에서 빠르게 걸어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발의 보폭, 무릎 세우는 정도, 팔의 각도와 움직임 등 세세한 부분까지 들어가니 만만하게 봤던 오리걸음이 버겁게 다가왔다. 보단 코치는 “힐토(heel-toe)~ 힐토~”를 외치며 발꿈치부터 먼저 땅에 닿고 발바닥과 발가락 순서로 이어지는 걸음마 단계부터 친절히 지도해줬다.
▲ 김미정 선수(오른쪽) 앞에서 어설픈 자세로 체험을 하고 있는 기자. 이종현 기자 | ||
한 무리의 선수들이 기자 앞을 휙~ 하고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분명 걷는 거지만 마치 뛰는 것으로 착각이 들 만큼 빠른 발놀림이었다. 반환점을 돌아 500m 앞에서 보이는 선수들 역시 뛰어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눈앞에 지나가는 선수들은 분명 걷는 게 맞다. 육안으로도 스피드가 실감날 정도다.
2~3번 왕복한 선수들과 스타트를 함께 끊었다. 시작하자마자 스피드의 차이가 확연하게 나면서 거리가 확 벌어졌다. 가까이서 보니 걷는 게 아니라 거의 뛰는 수준이다. 100m를 나름대로 뒤뚱거리며 걸었는데 선수들은 이미 두세 배 앞서 있었다. 일단 후퇴(?)해 배해수 트레이너에게 “아무래도 선수들이 뛰는 것 같다”면서 항의 아닌 항의를 했다. 조깅하는 폼을 직접 연출해 보이며 선수들의 걸음걸이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자 배 트레이너는 기자의 뛰는 폼이 실격 사유에 해당된다면서 “선수들의 발을 잘 보면 한 발은 꼭 땅에 붙어 있다”는 중요한 차이점을 지적했다.
다시 재도전했다. 이미 10km 가까이 질주한 선수들이라 조금 다른 상황이 연출될 줄 알았지만 스피드와 체력에는 조금치의 변화가 없어 보였다. 앞서 나가는 선수들의 골반이 화려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살랑살랑’이라는 말보다 그들의 유연한 골반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단어가 있을까. 반면 기자의 골반은 그들에 비하면 ‘참을 수 없는 뻣뻣함’이나 다름없었다. 500m도 채 가지 못했는데 이미 선수들은 반환점을 돌아오고 있었다.
1km 반환점을 돌아오는 김미정 선수를 기다렸다 골인 지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숨소리도 안 날 만큼 차분하게 걷는 선수에 비해 ‘헉헉’거리는 소리가 점점 ‘볼륨 업’ 되다 보니 민망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골인 지점을 향해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들어오는 기자에게 보단 코치는 한국말로 “빨리빨리”를 외치며 “다리 보폭은 크게! 허리 세워!” 등의 주문도 잊지 않았다.
여자 20km 한국최고기록을 갖고 있는 김미정의 기록은 1시간33분03초. 5km를 23분 내외로 꾸준하게 달려야 나올 수 있는 기록이다. 평균 시속이 13km/h 정도라는 말인데 러닝머신에서 기자의 5km 평균 기록은 40분(최고 기록 33분)으로, 이걸 시속으로 환산하면 7.5km/h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평소보다 두 배 가까운 스피드로 쉬지 않고 ‘달려야’ ‘걷는’ 김미정 선수와 동일선상에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 그렇게 뛰면서도 역전을 못 시키고 숨만 가빴는지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20km 남자 한국최고기록은 신일용(삼성전자)이 갖고 있는 1시간21분29초다.
오버 페이스한 탓에 체험을 일찍 끝내려는 마음 굴뚝같았지만 “아직 그림을 못 잡았다”는 사진기자의 요구에 뛰고 또 뛰어야만 했다. 수차례 NG 끝에 OK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기자가 골인 지점에서 쓰러지며 애타게 찾은 건 바로 인공호흡기였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