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섭 개인에게 다저스 이적은 행운이라고 볼 수 있다. 플로리다 말린스도 지난해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신흥 명문팀이지만, 역사와 전통에서 다저스와 비교할 수는 없다. 또한 미국 내 가장 큰 한인사회가 자리잡고 있는 LA에서 선수생활을 한다는 것은 경기 외적으로도 최희섭에게 훨씬 편안하고 유리한 점들이 많다.
하지만 최희섭의 다저스행은 장밋빛 애드벌룬만 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다저스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굳히려면 넘어야할 벽들이 만만치 않은 것. 다저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최희섭이 풀어가야 할 ‘숙제’들에 대해 알아본다.
우선 이번 트레이드에서 다저스는 가장 인기가 높던 포수 폴 로두카와 최강의 구원 투수 기예모 모타를 내보내 현지 언론과 팬들로부터 심한 질책을 듣고 있다. 심지어는 1위를 달리던 팀을 조각내서 망쳐버릴 최악의 트레이드라는 말까지 나왔다.
만약 팀이나 개인성적이 부진하면 고개 숙인 비난의 화살이 새로 영입한 1루수 최희섭이나 선발 투수 브래드 페니에게 쏟아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희섭은 이적 초반부터 좋은 성적을 올려 팬들에게 어필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중압감을 안고 새로운 LA 생활을 시작해야할 입장이다.
최희섭은 ‘반쪽 타자’라는 불명예스런 꼬리표를 떼어내야 한다. 최희섭은 6일 현재 2할7푼1리에 15홈런 40타점을 기록해, 이제 갓 루키를 벗어난 선수치고는 아주 괜찮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약점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
최희섭은 득점권 타율이 2할3푼4리에 그치는 데다, 2아웃 상황에서의 득점권은 1할4푼3리로 아주 약하다. 또한 288타수에 삼진을 80개나 당한데다, 왼손 투수에 약하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 올시즌 최희섭은 왼손 타자를 상대로 31타수에 6안타로 1할9푼4리에 그치고 있고, 1홈런에 4타점이 있지만 볼넷은 3개에 삼진이 9개나 된다. 이런 약점들은 이제 MLB에서 1년을 갓 넘긴 선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충분히 향상될 수 있는 점들이다.
그러나 올시즌 최희섭이 왼손 투수들을 상대할 기회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저스의 짐 트레이시 감독은 최희섭이 이제 25세에 불과하고, 왼손 투수에 대한 적응력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남은 시즌은 철저히 오른손 투수가 나올 때만 기용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8년 만에 포스트 시즌 진출을 노리는 입장이기 때문에, 최희섭에게 왼손 투수들을 상대로 경험을 쌓게 할 만큼 여유가 없다는 것. 결국 왼손 투수에 대한 약점은 장기적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인데, 본인의 의지만으로도 안 되는 난제이기도 하다.
다저스 팀 내에 왼손 타자들이 유난히 많다는 것 역시 최희섭에게 그다지 달가운 소식은 아니다. 간판 타자인 그린을 비롯해 중견수 스티브 핀리, 2루수 알렉스 코라 등 주전들이 모두 왼손 타자이고, 외야수 밀턴 브래들리와 유격수 세자르 이스투리스는 스위치 타자로 역시 좌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
그렇다고 최희섭의 다저스행이 가시밭길의 연속만은 아니다. 다저스는 MLB 30개팀 중에 팀 득점이 19위에 그칠 정도지만, 전통적으로 강한 투수진을 앞세워 내셔널리그 서부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역설적으로 해석하면 타자가 어느 정도의 활약만 해도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 분위기이다.
최희섭은 트레이드 후 첫 번째로 기용된 샌디에고 원정 경기에서 2루타를 쳐냈고, 4일 홈구장 데뷔전에서도 첫 타석에서 2루타를 치고 홈까지 밟는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다. 심지어는 왼손 투수가 나오면 최희섭을 뺄 것이 아니라 슬럼프에 빠진 션 그린을 빼라고 요구하는 팬들이 나올 정도로 스타트는 아주 좋은 편이다.
한 가지 크게 고무적인 사실은 팀의 ‘실세’인 폴 디포데스타 단장이 최희섭의 열렬한 팬이라는 점. 디포데스타 단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트레이드에서 최희섭의 존재가 간과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며 “정말로 대단한 젊은 타자를 영입한 것이며 절대 모험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최희섭이 오클랜드 에이스의 단장인 ‘빌리 빈 사단’의 새로운 이상형에 딱 걸맞은 선수라는 점. 하버드대학 출신의 디포데스타는 야구에 미쳐 빈 단장 아래서 부단장으로 일하며 현재의 강팀 오클랜드를 창조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들이 가장 강조하는 ‘훌륭한 선수’가 될 자질은 선수의 타고난 파워나 스피드, 어깨 등이 아니라 바로 출루율과 장타율이다. 출루율과 장타율이 높은 선수들을 많이 보유한 팀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며, 그들의 주장은 오클랜드의 성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최희섭의 타율은 2할7푼인데, 그의 출루율은 3할8푼8리고, 장타율은 4할9푼5리다. 올시즌 다저스에서 2백타수 이상을 기록한 타자들 중에 각각 출루율 1위, 장타율 2위에 오르는 기록이다. 기록 야구를 신봉하는 디포데스타식 야구로 보면 최희섭은 그야말로 ‘거물’로 성장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선수다.
최희섭의 앞길에 난제들이 깔려있기는 하지만, 넘지 못할 벽들은 아닌데다 초반 분위기가 최희섭한테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되고 있는 중이다. 남은 시즌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특히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후에도 제 몫을 해준다면 최희섭이 오래도록 다저스의 중심 타자로 활약할 수 있는 배경은 갖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미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