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친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목사 이 아무개 씨와 부인 백 아무개 씨(왼쪽 사진. 연합뉴스)는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도 없는 정상인인 것으로 확인됐다. 오른쪽은 이 씨가 담임목사로 있는 경기도에 소재한 개척교회.
지난 10일 경찰은 이 씨와 부인 백 아무개 씨(40) 등을 상대로 성격 평가와 반사회적 인격 장애 검사, 프로파일러 면담 등을 거쳤고 이들에게서 사이코패스 성향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씨 부부의 진료내역을 확인한 결과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확인된 이들이 극악무도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을 자아내고 있다.
이 씨는 딸 이 아무개 양(14)의 시신이 경찰의 압수수색으로 밝혀지기 직전까지 정상적인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기자는 이 씨가 담임목사로 있는 경기도 소재의 한 교회를 찾았다. 교회는 한 상가건물의 2층에 위치해 있었고 이 씨가 담임목사로 이 교회를 찾은 것은 4년 전쯤이다. 교회는 사건 이후로 문이 닫혀 있어 교회에서 구독하던 종교지가 배달된 당시 그대로 문밖에 걸려 있기도 했다. 평소에는 20여 명의 신도들이 꾸준히 교회에 드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일예배가 있는 일요일에는 찬송가가 상가 1층에서도 울려 퍼졌는데 상가 주민들에 따르면 교인은 20여 명이었다고 한다. 20여 명의 신도 중에는 이 씨의 부인이자 피해자 이 양의 계모인 백 씨, 백 씨의 여동생(39)과 모친 등이 포함돼 있었다.
상가 같은 층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 씨는 이 씨와 가끔 인사를 하며 지냈던 사이라고 전했다. 김 씨는 “평일 예배가 저녁 8시에 시작해서 9시 즈음에 끝나 교회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항상 그 시간에 모아 둔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면서 인사를 했다”며 “4년 정도를 같은 층에서 지냈는데도 인사 정도만 할 정도로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1층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던 김 아무개 씨 역시 이 씨를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이 씨가 인사만 겨우 하고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본인이 배운 사람이라 상가의 다른 사람들과는 말을 섞기 싫어한 것이 아닌가 싶다”며 “항상 밥을 먹고 난 후 사용한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다녔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까지 이 양과 다른 가족들도 예배를 위해 교회를 찾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이 양이 계모의 아들을 업고 다니기도 했는데 전혀 나쁜 마음으로 가출할 애가 아니었다”며 “이 씨 부부는 말수가 극히 적었지만 이 씨 처제는 활발하게 말을 잘하던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 씨는 한 신학대학교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거쳤고 독일 유학 이후 학부 때의 학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언어 관련 저서를 낸 적도 있는데 이는 해당 학교에서 강의 교재로 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경의 구약과 신약 가운데 신약이 해당 언어로 쓰였기 때문에 그 언어를 가르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 관계자는 “그 책은 초급자들이 쓰는 교재로 쉬운 문법과 어휘를 다루고 있다. 시중 온라인사이트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이번 사건으로 출판사도 타격을 봤다고 할 수 있다”며 “신학대에서 사용하는 종교전문서적을 많이 출판하다보니 이 씨도 책을 낸 것 같은데 간접적으로 아는 사이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 씨는 신학 서적의 번역 일도 했다.
이 씨가 선임연구원으로 있던 신학대 내 연구소.
기자는 어렵게 이 대학교의 한 교수를 만나 이 씨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교수는 이 씨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겸임교수를 시작할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는 이 씨와 많이 친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몇 차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니 불행하게 지냈던 것 같다.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 밑에서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컸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들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재혼을 한다 해 주변에서 우스갯소리로 부럽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유학 시절 자신을 뒷바라지해주던 전처를 잃어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죄를 저지른 건 잘못이지만 인간적으로 그에게도 힘든 부분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 기독교 매체에 따르면 이 씨는 교내 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을 맡아 여러 세미나에도 참석했다. 기자가 직접 대학을 찾아 관련 연구소를 방문했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경기 부천소사경찰서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치사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한 이 씨 부부를 12일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최종 부검 결과를 이날까지 전달받지 못함에 따라 검찰 송치 이후 기소 단계에서 부검 결과를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신 훼손 상태가 심해 정밀부검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가출했다가 돌아온 딸을 때리고 ‘잠을 자라’고 한 뒤 다른 방으로 건너가 (나도) 잠이 들었다”며 “같은 날 오후 7시께 일어나보니 딸이 죽어 있었다. 딸을 폭행한 것은 맞지만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계모의 동생 백 씨도 이 양을 폭행한 정황이 확인돼 경찰은 아동학대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학대 혐의 입증 단서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계모 백 씨는 지난 2014년 4월부터 ‘거짓말을 한다’ ‘현관청소를 하지 않는다’ ‘도벽이 의심된다’ 등의 이유로 이 양을 폭행했다고 자백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