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검찰청(왼쪽)과 서울중앙지검 청사 전경. | ||
K 씨는 유력 정치인들과의 친분을 이용한 ‘브로커’ 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져 김재록 씨의 행보와 비슷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일각에선 K 씨에 대한 내사가 ‘제2의 김재록 사태’로 비화될 가능성마저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현재 K 씨 관련 내사를 벌이는 곳은 대검 중수부가 아닌 다른 부서. 불법 정치자금이나 거액 비자금 사건은 주로 대검 중수부에서 다뤄온 전례로 볼 때 K 씨에 대한 내사가 김재록 게이트만큼의 파장을 일으키진 못할 것이란 관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K 씨의 그동안 행적을 더듬어 보면 김재록씨와 여러 가지 비슷한 면을 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김재록씨는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의 특보 활동을 시작으로 동교동계 인사들과 친분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진다. K 씨 역시 호남 출신 정치인들과의 교분을 오랫동안 다져왔다는 점에서 김 씨와 닮은꼴을 보인다.
K 씨는 호남 지역의 한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는 동시에 컨설팅 업무를 주로 하는 A사의 회장직을 갖고 있다. 주로 호남 지역에서 활동해온 K 씨는 이 지역 유력 향우회 조직의 부회장 직함도 갖고 있다. 이 향우회는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이었던 G 전 의원을 포함해 호남 출신 정치권 인사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K 씨는 G 전 의원의 후원을 받는 한 청소년문화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등 G 전 의원을 비롯한 동교동계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G 전 의원은 이 문화재단의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이 활동을 통해 K 씨는 지역단체로부터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K 씨에 대한 내사는 주로 부동산 개발과 관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K 씨의 A사는 부동산 개발을 주력으로 삼아 성장해왔다. 지난 2003년 전남 지역의 한 도시에서 관광개발에 대한 투자유치를 시작했는데 이 무렵 K 씨의 A사는 최근까지 이 사업에 1200억 원을 투자했을 정도로 자금동원력도 갖추고 있다. 이 관광단지 개발은 대규모 숙박시설 개발 등 거액의 이익 창출이 가능한 부동산 개발로 평가받고 있다. 이밖에 K 씨는 서울과 호남 지역에서 각종 부동산 개발에 참여해 막대한 이익을 챙겨온 것으로 알려진다.
K 씨 소유 A사의 활동은 수사당국이 눈여겨 보는 대목 중 하나인 것으로 전해진다. A사는 지역 관광단지 사업에 수천억 원을 투자할 정도로 ‘큰손’이지만 대외활동이 크게 알려진 바 없다. 재미있는 점은 김재록 게이트에 연루된 T사 역시 J프로젝트에 1000억 원대의 관광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었다는 점이다.
한편 A사는 A컨설팅 A종합개발 A프라자 등의 계열사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대표 계열사 격으로 알려진 A컨설팅은 자본금 5억 원, A종합개발은 자본금 15억 원 규모의 소규모 법인들이다. 관광단지 개발에 수천억 원 투자를 하는 회사의 규모라 보기엔 석연치 않다. 그 중 A컨설팅은 지난 연말에 ‘해산간주’된 것으로 등기부상 기재돼 있다. 이와 동시에 A사의 인터넷 홈페이지 역시 폐쇄된 상태다.
현재 검찰가 안팎에선 김재록 게이트로 불거진 현대차 수사에 이은 다음 타깃이 될 기업으로 P사가 거론되고 있다. P사는 K 씨의 A사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개발을 주력으로 삼아왔으며 최근 대형복합쇼핑몰 사업 등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김재록 씨와 P사의 연결고리 포착 가능성이 소문으로 돌고 있는 가운데 K 씨가 부동산업계 브로커 활동 관련 내사를 받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P사가 추진했던 프로젝트 중에는 분양금을 받고도 인허가 문제로 몇 년씩이나 허가를 받지 못해 골치를 썩였던 프로젝트도 있고, 최근에도 대형 인수합병 계약을 추진 중이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재록 씨는 DJ 정권 때 요직을 거쳐 현 정권에 와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일부 인사들과의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김재록 게이트가 현 여권에 부담을 줄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현 정권에서 게이트는 없다”고 못 박은 바 있다.
K 씨는 이번 정권과 관련해 이미 구설수에 오른 전력이 있다. 지난 2004년 총선 직전 야당 소속 한 의원이 ‘K 씨의 A사가 노무현 대선캠프에 영수증 없이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자료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당시 이 의원이 제기한 각종 의혹들은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 이 의원은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의원이 제기한 A사 관련 의혹은 다른 사안들에 묻혀 그 진위가 가려지지 않았다. 이후 K 씨는 평화통일기반 조성과 국민화합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K 씨는 지역 행사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유력 정치인들은 물론 기업인들과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G 전 의원을 비롯해 현 여권 실세로 분류되는 Y 의원, 그리고 G그룹 P 전 회장, B그룹 E 회장 등이 K 씨와 공식행사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 친분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주요 관청의 고위직 간부들도 여럿 어울린 것으로 전해진다.
K 씨에 대한 검찰의 내사는 올 초부터 이뤄졌다고 전해진다. K 씨에 대한 검찰의 내사 결과가 ‘무혐의’로 나오면 K 씨는 그저 DJ 정권과 현 정부하에서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하고 일부 유력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사업가일 뿐이다. 그러나 ‘브로커’가 범람하는 현 상황에서 검찰가 안팎의 인사들은 수개월간 수사당국이 내사해온 K 씨를 거론하며 ‘제2의 김재록’ 출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