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빅게임 전에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오히려 김 감독은 기자의 조심스러움이 민망할 정도로 여유있고 편안한 표정이었다. 프로감독 데뷔 첫 해를 ‘아름답게’ 장식해 나간 ‘초보감독’과의 만남을 소개한다.
이영미(이): (모자를 벗은 김 감독을 보고) 아니, 흰머리가 있네요. 항상 모자를 쓰고 계셔서 감쪽같이 속았어요.
김경문(김): 코치 때만 해도 몇 차례 염색을 했었는데 감독 되고 나선 자연스러운 게 좋다 싶어 머리에 물을 들이지 않았어요. 그래도 신경은 좀 쓰이네. 감독 맡은 뒤 흰머리가 많이 생겼거든. 젊어 보이는 게 좋긴 좋은데 말이야.
이: 그동안 시즌 치르며 맘 고생 많으셨죠?
김: 그래도 시즌 전부터 야구전문가들이 두산을 꼴찌팀으로 꼽는 바람에 성적과 관련해선 부담이 덜 했죠. (달력을 쳐다보며) 조금 있으면 딱 1년 되네. 내가 작년 10월15일에 부임했거든요. 정말 세월 빨라.
이: 시즌 내내 ‘초보감독’이란 수식어를 달고 살아야 했는데 부담은 없으셨나요?
김: 오히려 ‘초보감독’이라는 선을 그어주니까 한결 편했어요. 원래 초보운전, 신입사원, 막내 등등 ‘초짜’들은 한수 접고 들어가잖아요.
이: 김응용 감독과의 프로필을 비교해보면 너무 극과 극을 달려 비교 자체가 애매해요.
김: 왜 비교하려고 해요? 그분은 그분이고 난 나인데. 그러나 난 올시즌 4강 진출을 이룬 걸로 목표 달성을 했어요. 시즌 초 4강 진출이 내 ‘출사표’였거든. 부담은 ‘그쪽’이 훨씬 많지. 난 여기서 져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할 거예요. 정규리그 때처럼 평범하게 플레이오프를 운영하려고 해요.
김: 정말 감동 그 자체였어요. 선수, 코치 생활하며 연장 12회에 그런 극적인 만루홈런으로 이긴 기억이 거의 없었거든. 당시 상황에서 내야플라이만 나와도 좋겠다 싶었는데 만루홈런이 나왔으니 얼마나 기뻤겠어요.
이: 그 순간만큼은 선수들이 예뻐 보였겠어요.
김: 이쁘다마다, 미스코리아보다 더 이뻐 보였죠.
이: 어느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SK 조범현 감독을 모델로 삼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가 뭔가요?
김: 지난해 SK가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시리즈까지 직행했잖아요. 당시 조 감독의 모습을 지켜보며 큰 용기를 받았어요. 초보감독인데다, 포수 출신이었으니 내 입장에선 예사롭지 않았겠지. 우연치 않게 두산 감독을 맡아 걱정이 많았는데 그때 조 감독의 모습을 상기하며 용기를 얻곤 했어요.
이: 솔직히 감독 부임 당시 사연들이 좀 많았잖아요. 선동열 코치 내정설로 인해 김인식 감독이 물러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그런 과정들이 힘들진 않으셨나요?
김: 당시 김인식 감독님도 물러나고 나도 다른 팀을 알아보는 중에 구단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사실 마음이 상당히 불편했어요. 김 감독님이 한화 감독으로 부임하신다니까 그제서야 짐을 던 것처럼 한결 가벼워지더라구요.
이: 야구 해설위원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김인식 감독과 흡사한 면이 많다고 평가해요.
김: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김 감독님 밑에서 한 5~6년 코치로 활동했으니까요. 그러나 추구하는 색깔은 엄연히 달라요. 미국에서 2년간 코치 연수를 받으며 나름대로 야구관을 확립했고 여러 감독님들의 장점들을 모아서 ‘김경문식 야구’를 만들어갈 생각이니까요.
이: 내년 시즌부턴 야구장에서 ‘적’으로 김인식 감독과 대면하게 될 텐데.
김: 승부의 세계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최대한 예의를 갖춰 대하겠지만 게임만큼은 냉철하게 할 겁니다.
이: 번트 작전을 안내시는 걸로 유명한데 뭔가 남다른 이유가 있나요?
김: 공격적인 야구, 재밌는 야구를 해야지만 팬들이 좋아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런데 말은 이렇게 해도 만약 선동열 코치처럼 국보 투수가 나온다면 아무리 공격적인 야구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죠. 그땐 사정없이 번트를 대야 하는 거지. 제 정신이라면 하하.
이: 올 시즌 ‘초보감독’ 중 유일하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는데 소감 한마디 해주시죠.
김: 감독이란 자리가 참 어렵다는 걸 시간이 지날수록 절감하고 있어요. 감독이 바뀔 때는 항상 성적이 나쁠 때 이뤄지잖아요. 그래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고 해서 마냥 행복할 수도, 성적이 안 좋다고 해서 마냥 불행해 할 수만도 없는 것 같아요. 언제든지 물러날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으로 올 시즌을 이끌어 왔습니다.
김경문 감독은 올시즌 중도하차한 ‘성한이(김성한 감독)’ ‘승안이형(유승안 감독)’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며 감독이란 자리가 주는 여러 가지 의미를 곱씹고 재해석해냈다. 그러면서 이런 멘트로 인터뷰의 마무리를 장식했다.
“지금 이 순간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사실 4강 진출에만 만족하겠습니까. 이 세계에선 2등은 필요 없잖아요. 당연히 우승하고 싶죠.”
지난 17일, 그러나 김 감독의 희망은 물거품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래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비록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지만 전 지금도 우리 선수들이 너무 이쁩니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