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신문>을 위해 포즈를 취한 김응용 사장. | ||
지난 10일 대구의 삼성라이온즈 훈련장인 경산 볼파크에서 기자와 만난 김응용 신임 사장은 여전히 정신없다는 표정이었다. 전날인 9일, <일요신문>에 자신의 은퇴 기사가 나간 뒤 그날 오후 4시에 은퇴 사실을 알리는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와 함께 구단 사장으로 취임한다는 엄청난 뉴스거리를 토해내며 보낸 바쁜 시간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분위기였다.
사실 <일요신문> 652호에 김 사장의 은퇴 사실을 알리는 기사를 작성하며 기자는 여간 고민을 많이 했던 게 아니다. 11월8일 오전, 김 사장과의 전화통화에서 ‘은퇴한다’는 얘기를 직접 듣기는 했지만 그는 공식적인 발표를 하기 전까지 비밀 유지를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김 사장의 지인들을 통해 간접취재를 다시 한 다음 ‘포장’해서 특종을 터트릴 수 있었는데 기사가 나간 이후 김 사장이 느꼈을 배신감을 상상하니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게 아니었다. 예상대로 김 사장은 기자에게 노발대발했고 ‘앞으로 상종하지 않겠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10일, 경산으로 직접 찾아간 기자에게 한동안 서운함을 토로하던 김 사장은 더 이상 과거를 묻지 말자고 한 뒤 대화를 이어나갔다.
“정말 사장을 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어. ‘뒷방’으로 물러날 생각만 했지 누가 사장을 꿈이라도 꿨겠어? 그래서 처음 그런 제의를 받았을 땐 사양했지. 전혀 생각을 못했으니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잘난 건 없지만 사장이란 자리가 매력이 있을 것 같더라고. 덜컥 수락은 했는데 두렵고 그러네. 내가 실패하면 야구쟁이가 다 그렇지 뭐 하고 타박할 거 아냐. 그런 얘긴 듣지 말아야 하잖아.”
김 사장은 구단에서 총감독을 하라고 했어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차피 총감독이란 자리는 잔여 임기를 채우는 자리고 구단에서 그렇게 시키면 마다할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퇴를 언제 결정했는지가 궁금했다.
“은퇴를 결심하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구단에 언제 어떤 방법으로 내 의사 표시를 하느냐가 고민되더라구. 만약 내 생각을 구단에서 안 받아주면 어쩔거야. 보는 사람에 따라 쇼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은퇴할 마음도 없으면서 사의 표명했다는 오해 받기 싫어서 혼자서만 결심한 채 구단과의 만남을 미뤄왔지.”
김 사장은 8일, 기자와 전화통화를 할 때만 해도 구단에 자신의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9일이나 10일쯤 사의를 표명한 뒤 11일쯤 기자회견을 열려던 계획이 <일요신문> 보도로 인해 틀어졌다며 또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 지난 9일 기자회견장에서 손을 맞잡은 선동열 신임 감독, 신필렬 전사장, 김 사장(왼쪽부터) 임준선·이종현 기자 | ||
“야구 감독만 30년을 넘게 했는데 물러날 시기를 잘 택해야 하는 거잖아.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올시즌 야구를 아주 재미있게 해서 아쉬움은 없었어. 그리고 내년에 반드시 우승하리란 보장도 없잖아. 올해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또 선동열 감독이 있으니까 든든하기도 했고.”
욕심 같아선 올해 우승한 뒤 멋지게 용퇴를 선언할 생각이었단다. 그러나 현실은 김 사장의 간절한 바람을 무위로 돌려놨다. 김 사장은 한국시리즈 9차전에서 7-8로 아쉽게 패한 뒤 호텔로 돌아와 오랜만에 경기장에 나와 응원을 펼쳤던 두 딸들과 함께 늦은 식사를 하며 쓰린 속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한국시리즈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은퇴는 안중에 없었어. 경황도 없었고. 시합에 대한 미련 때문에 거취 문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 그런데 기자들이 난리를 치는 거야. 그만 둘 거냐면서. 지리산에서 돌아와 보니 내가 은퇴를 하네 안하네 난리가 아니더라구. 그때 고민했지. 어떻게 내 의사를 기자들 모르게, 외부에 새나가지 않게 구단측에 전달할까 하면서.”
삼성의 신임 사장직을 제의 받은 건 기자회견을 위해 먹던 점심을 뒤로 하고 서둘러 KTX 고속철도를 타고 상경하는 과정에서였다고 한다. 그룹 고위층 인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처음엔 안하겠다고 하다가 나중에 한국 프로야구사에 좋은 선례(선수 출신의 최고 경영자)를 남기는 것도 괜찮다 싶어 수락하게 됐다는 것.
김 사장은 은퇴 후 총감독으로 물러나면 ‘제2의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 후배들을 육성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모교인 부산상고에 가서 소일거리로 지팡이나 짚고 운동장에 나가 선수들 과자나 사주면서 그렇게 살려고 했지. 허허.”
감독 시절의 자신을 합리적인 지도자라고 설명하는 김 사장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난 선 감독한테뿐만 아니라 어느 코치에게도 다 권한을 줬어. 밖에서 보기엔 내가 다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전혀 아니야. 코치들에게 기계적으로 시키기만 하면 열심히 안 해. 권한을 주고 책임도 물어야 사명감 갖고 달려들지.”
감독에서 사장으로 신분 변화를 이룬 김응용 사장, 여전히 이 ‘사장’이란 타이틀이 어색하긴 하지만 ‘김응용식 지도’로 명성을 날린 것처럼 이번에도 ‘김응용식 구단 운영’으로 다른 구단 사장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을 기대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