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가까이 침묵을 지키던 FA시장이 원소속 구단과 협상 마감일인 20일 밤, 김한수(삼성)와 심재학(기아)의 FA 재계약을 시작으로 불과 이틀 사이에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했다.
FA시장은 초반 심정수, 박진만, 김재현 등 FA 빅3의 움직임에 관심이 모아지면서 장기전을 눈앞에 두는 듯했다. 구단들이 어느 시기에 누구를 점찍느냐에 따라서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구단들은 나름대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치열한 눈치싸움만 전개할 뿐이었다.
김한수, 신동주와 협상 테이블에 앉은 삼성 역시 “테이블 분위기는 좋다”는 원론적인 표현만 되풀이하다 20일 김한수와 극적으로 계약에 성공했다. 다른 구단 선수들과 어느 정도 교감이 오간 상태라 소속 선수들에게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하던 걸 입증한 셈이다.
같은 날 심재학(기아)도 자정을 얼마 안 남기고 계약서에 사인했다. 운영팀 오현표 팀장은 “애시당초 다른 구단 선수는 받아들일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가급적 심재학과 계약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의견차를 줄이지는 못했다”면서 “만약 (심재학과) 계약이 안되었다면 구단으로서도 상당히 곤혹스러울 뻔했다”며 급박했던 지난 주말 밤을 떠올렸다.
이런 와중에 협상에 불을 지핀 건 SK였다. 20일 자정이 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SK는 LG와 협상이 결렬된 김재현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SK가 내건 전략은 돈이 아니라 선수의 자존심을 살려준다는 것이었고 그 결과는 주효했다.
협상을 주도했던 민경삼 운영팀장은 “재현이는 7대 독자로 자존심이 센 편인데 형편이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 돈 몇 푼에 흔들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재현이의 핸디캡에 대해서는 일체 건드리지 않는 방식으로 풀어나갔다”고 협상 과정을 소개했다. 덧붙여 민 팀장은 “이호준, 채종범, 이진영 등 병역문제로 팀 전력상 FA 수급이 절실한 상황에서 만약 재현이가 LG와 계약했다면 무조건 (박)진만이를 잡으려고 했을 것”이라는 속사정도 털어 놓았다.
007작전을 방불케 한 SK의 기습적인 움직임은 삼성에게 반작용을 불러일으켰다. 19일만 해도 삼성은 관심을 보이는 선수가 있다면 언제든지 접촉할 수 있다며 다소 느긋한 반응을 보였다. 항상 돈 보따리를 풀 준비가 되어있다 보니 향후 주도권을 갖고 선수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하지만 LG, SK, 롯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삼성 프런트는 휴일이었던 21일 심정수, 박진만과 협상을 거의 마무리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협상을 주도했던 운영팀의 박덕주 과장은 끝까지 “지난해 롯데로 간 정수근을 예로 들어보자. 당시 신문에서 뭐라고 떠들었나. 대구행 확정, 삼성으로 이사준비 끝, 밀약설 등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거의 기정사실화 하지 않았느냐”며 언론이 앞서간다며 연막을 피우기도 했다.
심정수와 박진만 등 대어급 FA선수를 놓치게 된 현대는 원소속구단과 우선협상 기간 동안 선수들과 구체적인 액수를 주고받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다. 정재호 단장은 “구단에서 생각하고 있는 액수가 있었지만 FA계약은 원래 선수가 먼저 몸값을 제시하는 것이 ‘관습법’이었다”면서 선수들이 먼저 몸값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답답한 건 구단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편, FA계약과 관련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LG는 극도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지난 17일 유성민 단장이 김재현과 2차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결렬되었고 20일 이후 SK가 김재현을 낚아채듯 계약을 해버리자 프런트에서는 FA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아예 말문을 닫아버렸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