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록 게이트’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청와대는 ‘코드수사’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음모론’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왼쪽부터 노무현 대통령, 대검 청사. 청와대사진기자단 | ||
현재로서는 전자의 경우에 해당될 것이라는 견해가 다소 우세한 편이다. 그런데 검찰 수사가 어디로 향하든 이번 사건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함의’는 또 다른 문제로 남는다. 검찰과 청와대가 의도적인 기획수사는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 칠수록 그 손 뒤에 어떤 비장의 카드가 숨어 있는지 정치권은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한나라당은 여권이 야당 독주가 예상되는 지방선거 구도를 흔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정정국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명박 서울시장 등 잘나가는 대권주자를 ‘죽이기’ 위한 청와대의 기획수사라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청와대는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펄쩍 뛴다. 과연 그런지 그 가능성들을 하나씩 되짚어봤다.
“도대체 김재록 사건은 무엇을 중점적으로 수사하는 것이냐.”
한나라당 한 의원의 볼멘 소리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사건은 검찰이 김 씨의 대출알선 및 금융계 로비 사건과 관련해 수사에 나섬으로써 수면 위로 불거졌다. 하지만 그뒤 현대자동차 그룹의 비자금 문제로 방향이 ‘꺾였고’, 뒤이어 김 씨가 관여한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 의혹 사건으로 확대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또 다시 어떤 돌출변수가 튀어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어쩌면 정치권에서 이번 사건이 제2의 대선자금 수사 정국으로 가는 길목일 것이라며 두려움에 떠는 것도 엄살만은 아닌 것 같다. 검찰에서는 기획수사가 아니라 지난해 10월부터 ‘인지’해온 수사라고 강변한다. 청와대 또한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수차례 기획수사 의혹을 부정하는 등 ‘음모론’ 진화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이번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는 걸까.
먼저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의혹을 들어보자. 한나라당 대변인실 관계자는 “모든 길은 청와대로 통하는 정부에서 정치권과 경제계에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 사건을 청와대가 사전에 보고 받지도 인지하지도 못했다고 한다는 그것 자체가 문제다. 김재록 게이트에 대한 청와대 ‘사전 조율’ 내지 ‘보고’ 의혹은 앞으로도 최고의 관심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야당의 이 같은 ‘청와대 사전 기획설’ 내지 ‘인지설’에 대해 청와대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은 적극 반박하고 있다. 양 비서관은 “검찰이 밝혔듯이 이번 수사는 검찰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코드수사’라는 표현에 대해 청와대는 대단히 불쾌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따져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다. 청와대 민정 파트의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가 청와대에서 수집한 각종 첩보나 비리 제보 건들을 일정한 주기마다 검찰 핵심 간부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거기에는 청와대 하명수사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그 자료들을 받은 검찰 핵심인사는 수뇌부와 상의한 뒤 수사 지휘를 받는 것으로 안다. 청와대의 주요한 의중이 검찰에 전달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들을 보면 광범위한 정보망을 가진 청와대가 김재록 씨 사건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청와대 민정 파트의 임무상 여러 경로로 유입되는 첩보들을 분석해서 검찰과 적절한 ‘공조’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과정에서 김재록 씨 사건도 ‘청-검’ 간 조율을 거쳤을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는 시각인 셈이다.
청와대가 김 씨 사건을 사전 인지했을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검찰 주변의 한 정보 관계자는 “김 씨 사건은 지난 2001년 말부터 시작된 공적자금비리특별수사본부에서 이미 포착된 것으로 안다. 이 수사본부는 올해 2월 그 활동을 종료한 바 있는데 그동안 쌓아두었던 김 씨와 관련된 광범위한 자료들을 대검 중수부에 넘긴 것 같다. 그때 활동했던 아무개 검사가 현재 중수부에서 김 씨 사건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한 한 검찰 출입 기자는 이에 대해 “검찰이 김 씨에 대한 내사 자료를 오래 전부터 확보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검찰이 김 씨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전에 청와대가 그것을 진짜 몰랐느냐다. 청와대-검찰의 정보 공유 시스템과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청와대가 김 씨 사건 수사를 사전에 몰랐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검찰은 수사 배경에 대한 일부의 ‘음모론’적인 시각에 대해 “이번 수사에 정치적 의도는 없다”는 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검찰이 지금까지 어느 수사보다도 유달리 입 단속 등 ‘수사보안’에 신경 쓰는 것도 정치적 해석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김 씨 사건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지방선거와 연동되는 시나리오. 이것은 검찰이 이번 사건을 언제 ‘인지’했는지의 시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검찰은 공식적으로 지난해 10월 김 씨가 은행 대출을 알선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범죄 혐의를 포착해 올해 1월 조사했다가 풀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적자금수사본부의 ‘첩보’나 청와대와 검찰의 ‘첩보 교환’ 때 김 씨 사건이 다루어졌다면 그 시기는 2005년 10월보다 훨씬 이전일 가능성도 있다. 이는 곧 검찰이 김 씨 사건을 ‘쥐고’ 있다가 특정한 시점에 터뜨린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부분이다.
한나라당의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상명 검찰총장은 검찰 내부에서도 ‘노무현 코드’와 가장 잘 맞는 사람으로 통한다. 그가 몇 개월 동안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불러올 김 씨 사건을 쥐고 있다가 5·31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둔 미묘한 시점에서 ‘뇌관’을 터뜨려 버렸다.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라고 주장했다. 사실 여권으로서는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 돌파구로 삼기 위해 여러 가지 수를 찾고 있던 게 사실이다. 만에 하나 김 씨 사건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면 과연 여권이 노렸던 것은 무엇일까.
먼저 이번 사건에 김대중 정권 때의 고위 인사들이 다수 포함된 것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열린우리당은 현재 호남에서 죽을 쑤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뾰족한 반전의 기미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통해 김 전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흠집내기를 할 수도 있다. 김 씨 사건 수사 과정에서 민주당인사들의 비도덕적인 부분이 드러날수록 호남의 전통적 지지세력이 열린우리당 쪽으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한 김 씨 사건은 여권의 다목적 카드로 쓰일 수 있다. 민주당 압박과 동시에 한나라당의 대권 주자 견제용으로도 유용하다. 앞서의 관계자는 “검찰이 현대차 양재동 사옥 용도변경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하고 있다. 주요 수사 대상으로 서울시가 떠오른다. 이명박 시장도 마찬가지다. 청계천 수사 때 이 시장이 피해갔지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여권은 시중에 떠도는 이명박 시장에 대한 첩보, 이른바 ‘이명박 X파일’을 수집하는 전담반을 편성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 시장 개인의 재산을 둘러싼 ‘약점’과 ‘황제 테니스 로비 의혹’, 여기에 검찰의 현대차 사옥 로비 의혹이 더해진다면 ‘맷집 좋은’ 이 시장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마지막으로 이번 김 씨 사건 수사가 지방선거 후 급격하게 진행될 수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레임덕을 차단하기 위한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는 수사라는 의견도 있다. 또한 여권이 이번에 조사된 정치인들의 ‘비리’를 무기 삼아 향후 전개될 정계개편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점도 들 수 있다.
김 씨 사건을 둘러싼 정치권의 다양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법조계 주변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지난 몇 개월 동안 대검 중수부는 이렇다 할 ‘정치적인’ 실적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통해 중수부의 위상을 과시함과 동시에 검찰 독립 의지도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럴 경우 이번 사건은 ‘일과성’ 수사에 그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김재록 사건이 어디까지 그 파장이 미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김 씨 사건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정치권이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쪽으로 튈 ‘럭비공’이 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 보인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