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9월 아시아야구선수권서 일본을 꺾고 우승했다. | ||
대전고 선배이자 구대성을 가장 잘 아는 지인인 이효봉 LG스카우트 과장은 “아마도 구대성의 강인한 어깨와 손목 힘은 그때 길러진 것이 아니냐”고 회상하기도 한다. 언더핸드스로 김병현(보스턴)이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며 언더핸드스로 투수로 성장했다면 투수 구대성은 ‘왼손 딱지왕’으로 성장하며 야구와 자연스레 접한 셈이다. 전자오락, 포커 등 손으로 겨룬다면 구대성을 당해낼 사람이 없다.
인간 구대성은 항상 큰 경기에 강했다. 한국 프로야구사의 에이스는 숱하게 많다. 그러나 필요할 때 제몫을 해주는 에이스를 찾는 건 흔치 않다. 지금이라도 당장 현역 감독들에게 “한·일전 7회 동점 상황에서 누굴 내보내겠느냐”고 설문 조사를 해보면 의외로 몰표가 나올 가능성이 많다. 구대성이다. 선동열은 한국시리즈에 약했다. 임창용도 그랬다. 정민태도 마찬가지다. 구대성은 다르다. 굳이 계보를 찾자면 한국시리즈 4승의 배짱투 최동원 이후 ‘큰 경기서 제몫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투수가 아닐까 싶다.
▲ 1999년 10월엔 한국시리즈에서 MVP를 수상하며 한화의 우승을 이끌었다. | ||
에이스는 타고날까, 길러질까. 둘 다 고루 섞여있다는 게 정답일 듯하다. 에이스는 대개 고교시절부터 전국대회 결승전을 숱하게 치르는 야구 명문고에서 탄생한다. 모든 운명을 결정짓는 결승전에 나오는 투수는 그야말로 생존게임을 펼친다. 마운드에 선 자신이 모든 걸 책임져야 하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구대성은 타고나기도 했고, 길러지기도 한 에이스다.
구대성은 고등학교 1학년(대전고)때 이미 전국무대를 평정했다. 2학년, 3학년, 노련함이 넘쳐 건방지게 보일만한 나이에 전국을 주름잡은 게 아니다. 고교 1년부터 3년간 마운드의 주인이 된다는 건 남보다 이미 1,2년 앞서 승부의 절체절명 순간을 모두 몸으로 체화하는 계기가 된다.
타고난 어깨와 손목 힘의 구대성은 고교 1년때부터 맹수로 길러져 왔다. 한양대 시절부터 자리를 꿰찬 국가대표. 국제대회에 나가면 예선부터 준결승까지 정민태가 나선다. 그러나 결승전은 항상 구대성의 몫이었다. 감독으로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쉽게 결정을 내린다. 구대성은 결승전 투수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