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터리가 바닥났는데도 달리려고만 했어요.” 박세리는 특강에서 올 한 해가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 ||
박세리와 그의 부모는 불심이 지극한 불자들이다. 그렇다 보니 박세리의 대회출전 일정이 잡히기라도 하면 아버지 박준철씨와 어머니 김정숙씨는 오히려 더 바빠진다. 시합 전부터 사찰과 암자를 찾아 불공을 드리기 때문이다. 박세리가 이번 불교경영자 최고위과정에서 특별 강사로 초청된 것도 이런 인연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특강에는 명호근 쌍용양회 부회장, 김동건 서울고등법원장, 박찬수 목아박물관장, 묘심화 자비정사 주지스님, 가수 문주란씨 등 제2기 최고위과정 멤버들을 중심으로 60여 명이 참석했다. 검은 모자와 청바지의 수수한 차림으로 모습을 나타낸 박세리는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서 너무 어색하다”며 다소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골프 입문 계기를 언급하면서부터 이내 여유를 찾는 분위기였다.
먼저 박세리는 초등학교 시절 육상과 첫 인연을 맺었지만 아버지 친구의 집요한 권유 때문에 골프채를 잡은 일화를 소개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 친구를 따라서 처음으로 필드에 구경을 갔다. 당시 중학생으로는 김미현 프로가 최고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고 초등학생에서는 한희원 프로가 1위였다. 어린 선수들에게 사람들이 대하는 모습이 다른 종목과는 너무 달라 보였고 인사 받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그리고 나서 그 해 겨울부터 골프채를 잡았는데 하루 12시간 이상 훈련을 소화해 냈고 결국 다음해 처음 나간 시합에서 우승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고 박세리는 당시를 회상했다. 박세리가 밝힌 성공 요인은 ‘훌륭한 사람이 되자’ ‘최고가 되자’는 마인드 컨트롤이었다는 것.
하지만 박세리는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 박준철씨와 함께 마음고생을 상당히 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대전에서 골프를 치는 여자 선수로는 박세리가 유일했는데 대회에 참가라도 하면 주변에서 은근히 텃세를 부리더라는 것.
“시합장에서 아버지가 주변 사람들과 커피라도 한 잔하며 인사를 나눌라치면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아버지가 많이 서러워하셨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클럽하우스에서 아버지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에게 크게 외친 적이 있었다. ‘세리야! 저 트로피는 네가 갖고 갈 거야. 주인이 너니깐 지금 찜해놔’라고. 결국 그 대회에서 우승을 했는데 이후부터 주변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왼쪽 드라이브가 밀렸는데 막상 공이 놓인 위치를 보니 정말 저런 곳에 있을 수 있나 싶은 곳에 공이 보였다. 그냥 칠 것인지 아니면 드롭을 할 것인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막상 양말을 벗고 들어가니 솔직히 앞이 깜깜했다. 그냥 나가고 싶은 맘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 실수해도 다음에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치기로 했다. 아마 치는 순간 눈을 감은 것 같은데 맞는 순간 정말 ‘감’이 좋았다.”
박세리는 이때 ‘감’을 말 그대로 100%라고 표현했다. 잘 맞았다고 느낀 적은 있지만 당시처럼 ‘퍼펙트’한 감은 지금도 못 느끼고 있을 정도라고.
라이벌이라고 여겨지는 소렌스탐과 관련된 이야기도 빠질 수 없는 화제였다. “그러면 안 되겠지만 TV중계를 보다 보면 소렌스탐이 자꾸 미워진다”는 한 참석자의 발언에 좌중은 잠시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박세리는 “소렌스탐의 성적이 좋기는 하지만 그 선수만 보고 운동하는 게 아니라 정상을 보고 달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나이차도 일곱 살이나 나고 노력도 많이 하는 소렌스탐을 개인적으로 미워할 수도 없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덧붙여 박세리는 올 한 해가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2000년에도 고비가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견딜 만했던 것 같다. 7년 투어 생활을 하면서 지난 3~4년 동안은 아무 기억도 없다. 배터리가 떨어지면 충전도 해야 하는데 에너지는 바닥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억지를 부려 달려가려고만 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 도와주는 관리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정작 나 스스로 관리를 제대로 못했었다. 2004년은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한해였던 것 같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박세리의 결혼과 사랑에 관한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박세리는 “어릴 때에는 27세가 되면 결혼하겠다고 계획까지 세웠는데 욕심이 끝이 없는 것인지 지금은 골프에 더 빠져있다”고 재치있게 답변했다. 또한 박세리는 “예전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에 지금도 20대 초반이라고 착각한다”면서 “그래서 친구들이 결혼한다고 하면 너무 일찍(?) 가는 것 같아 조금 서럽기도 하다”는 속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이 외에도 참석자들은 박세리에게 “최근에 하고 나오는 링 대신에 예전에 했던 합장주를 손목에 다시 했으면 좋겠다” “불명 받고 수계까지 받으면 앞으로 60승은 거뜬하지 않겠느냐” “결혼은 꼭 한국 남자랑 했으면 좋겠다”와 같은 말로 끝없는 애정을 표했다.
박세리는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는 말로 1시간 남짓한 초청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박세리는 “기도할 때에도 3가지 소원을 말한다. 부모님 건강, 가족 생각, 그리고 잘하는 선수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항상 지켜봐 달라고 기도하는데 그 이상을 요구하면 욕심일 것 같더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