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기현 선수 | ||
통역이 따로 있었던 벨기에와 달리 영국에서는 설기현이 모든 일을 해결한다. 홀로서기에 도전하고 있는 설기현과 지난 6일(한국시각) 밤 어렵게 전화통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 사랑스런 가족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설기현은 인터뷰 후인 지난 8일 밤 잉글랜드 FA컵 FC밀월과의 홈경기에서 선제 결승골을 뽑기도 했다.
변현명(변): 잉글랜드로 이적하고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듣네요. 왜 그렇게 언론과 접촉을 안했나요.
설기현(설): 왜 그렇게 전화를 안했어요?(웃음) 아무래도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족과 호텔생활부터 시작했거든요. 음식도 잘 안 맞고 너무 어려웠어요. 체중도 줄다가 최근에야 원래 체중으로 돌아왔어요. 지금은 구단에서 마련해준 단독주택에서 편안히 살고 있어요. 솔직히 한국에서 오는 전화는 잘 받지 않아요. 시차가 9시간이나 나기 때문에 전화 시간 맞추기가 힘들지 않겠어요?
변: 아내 윤미씨와 아들 인웅이는 잘 있나요.
설: 아내는 곧 미술학교를 다시 다닐 예정이고 한국 나이로 네 살이 된 인웅이는 유아원에 다니고 있어요. 인웅이는 유아원에선 영어를 쓰고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해요. 역시 아이들은 말을 빨리 배우는 것 같아요(전화 너머로 인웅이가 보채는 목소리가 들렸다). 또 셋째 동생이 공부하러 와 있어요. 아내 휴대폰도 동생에게 빌려줬어요(설기현의 아내 윤미씨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설기현과 결혼한 뒤 붓을 놓았다).
변: 벨기에 시절 잉글랜드 진출을 위해 영어공부를 많이 했는데 이젠 대화에 어려움은 없겠어요.
설: 아니에요. 아직도 어려워요. 영국식 발음의 차이가 느껴져요(하지만 겸손함과는 달리 설기현은 경기 뒤 인터뷰를 영어로 진행한다). 영어공부가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어요.
변: 최근 리그 경기에서 중거리 슈팅으로 데뷔 골을 넣었는데요, 원래 중거리 슈팅은 잘 안하잖아요.
설: 네. 중거리 슈팅을 자주 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최근 슈팅 연습을 많이 했는데, 좋은 결과를 얻어 기뻐요. 포지션이 사이드나 처진 스트라이커 자리이기 때문에 골을 만들어주는 데 주력해야 돼요. 하지만 찬스가 날 경우 과감하게 슈팅을 날릴 겁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골도 들어가겠죠. 동료들이나 감독들도 잘해주고, 이제는 이 팀을 내 집처럼 느끼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하셔도 좋을 듯해요.
변: 최근 국가대표팀이 독일을 3-1로 이겼는데요.
설: 이 곳에서도 난리였죠. 월드컵 4강을 이뤘지만 사실 좀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아무 말 못해요. 올리버 칸, 발라크 등이 출전한 베스트 멤버였으니까요. 선후배들에게 고맙다는 말 전해주세요. 2월9일 쿠웨이트전을 위해 한국에 가면 후배들에게 밥이라도 사줘야겠어요. 본프레레 감독이 원하는 축구를 믿고 따라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변: 국내 축구계 소식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나요.
▲ 지난 2일(한국시각) 첫 골을 넣고 동료와 포옹하는 설기현, 자신의 유니폼을 들고 있는 모습(울버햄프턴 홈페이지). 부인 윤미씨와 행사에 참석한 모습.(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 ||
변: 외국인 선수를 국내 구단에 입단시키는 과정에서 비리가 발견돼 구속됐어요. 에이전트들의 부정에 대해 축구계 내부에서 상당히 놀라는 분위기죠.
설: 에이전트는 선수를 위해 노력하고 또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변: 송종국 선수가 네덜란드에서 수원으로 이적했는데요.
설: 얘기 들었어요. 뭐라 말하기가 어렵네요. 함께 유럽에 있다가 국내로 복귀하니 좀 섭섭해요. 그렇다고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요. 벨기에에 있을 때는 네덜란드로 가끔씩 달려가 영표형이랑 만나기도 했죠(설기현과 이영표는 대표팀 내에서도 제일 친한 사이다).
변: 현역 선수 생활 중 국내복귀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설: 현역생활은 프리미어리거로 마치고 싶고 이곳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뒤 귀국하고 싶어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원하던 잉글랜드로 와서 아직은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하지 못했지만 기회가 올 거라 믿어요. 이전에 언론과 인터뷰할 때 항상 잉글랜드행을 외친 것처럼 내 발은 진정 잉글랜드 땅을 밟고 있는데 아직 진정한 프리미어리거의 목표는 이루지 못했잖아요.
변: 단란한 가족을 이뤘는데 CF가 안 들어오네요.
설: 선식 광고 한번 했어요.(웃음) 양복입고 엄지손가락을 들고 찍었는데 쑥스럽더라고요. 할인점에서 봤다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인웅이가 아직 어린데 어린이용품광고 괜찮지 않을까요? 윤미도 예쁜데 화장품 광고도 좋을 것 같지 않나요?(웃음) 다리 좀 놔주세요.
변: 식상한(?) 질문일 텐데 올해 목표가 뭐예요.
설: 역시나 식상한 대답이 될 것 같네요.(웃음) 팀에 잘 적응하고 골도 많이 넣고 인웅이도 잘 크고 가족이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전 멀리 보기보다는 바로 앞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다 보면 목표에 한 발짝 다가가 있겠죠.
변현명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