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위가 ‘금녀의 벽’에 도전한 최초의 스포츠 우먼은 아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스포츠 우먼들이 금기와 한계에 도전하며 스포츠맨들과 ‘맞장’을 떠왔다.
지난 99년 10월, 세계 권투팬들을 경악시킨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남녀 간의 권투경기가 열려 예상 밖으로 여성 복서가 완승을 거둔 것. 당시 37세의 노처녀였던 마가렛 머그레거는 역도 선수 출신인 남자 복서 로이 초우를 맞아 4라운드 경기를 펼쳤다. 전문가들은 “그래도 남자인 초우가 우세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마가렛의 3-0 완벽한 판정승. 물론 마가렛은 당시까지 복싱 전적 3전 전승을 달렸던 ‘프로’였고, 초우는 권투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참이었다. 신장도 마가렛이 8cm 커 리치 역시 마가렛이 유리했다. 그럼에도 마가렛이 경기 내내 초우를 흠씬 두들겨 패는 모습은 팬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종목에 여성이 뛰어든 것은 생각보다 오래전이다. 미국 프로야구 초창기인 지난 1922년, 리지 머피라는 여성은 보스턴 레드삭스와 올스타팀 간의 시범경기에서 올스타팀 1루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 리지 머피의 출전은 ‘관객몰이용 이벤트’라는 비판을 사기도 했지만 여하튼 여성으로선 정식 야구경기에 첫 출전하는 영광을 누린 셈. 한참 뒤인 1994년에는 미국 남가주대학 야구팀의 여성투수인 일라 보더스가 정식 선수로 등록돼 경기에 출전했고, 98년에는 미국 마이너리그팀과 입단계약을 맺기도 했다.
웬만한 남성들도 소화해내기 힘든 거친 종목에서도 여성들의 도전은 이어졌다. 아이스하키의 매니언 루메가 대표적인 경우. 매니언은 지난 92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탬파베이 선수로 나서 세인트루이스와의 시범경기에 선 정식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매니언이 남자 선수들에게 바디 체크를 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격렬하기로 따지면 아이스하키와 별반 차이 없는 미식축구에서도 여성의 도전은 이어졌다. 2002년, 케이티 네이더라는 금발의 여성 선수가 뉴 멕시코대학 풋볼팀의 일원으로 미국대학풋볼 1부리그격인 ‘디비전A’에 출전해 남자 동료들과 스크럼을 짜는 감격스런 모습을 연출했다. 180cm, 68kg의 당당한 체격을 자랑하는 네이더는 “동료들이 옷을 다 바꿔 입은 뒤 라커룸에 들어가야 하는 문제를 빼면 아무 문제가 없다”며 우먼파워를 과시했다.
테니스 역시 빈번하게 남녀대결이 이뤄졌다. 그중에서도 보비 릭스와 빌리 진킹의 대결은 아직도 여성 테니스 팬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준 전설로 남아있다. 보비 릭스는 테니스계의 대표적인 남성 우월주의자. 여성 선수들을 비하하는 발언은 물론, 신사들이 즐기는 테니스 코트에 여자들이 드나드는 것을 불쾌히 여기는 ‘마초맨’ 이었다. 1972년 이 같은 릭스의 안하무인격 태도에 화가 난 마가릿 코트가 도전장을 던졌다. 그러나 결과는 환갑을 앞둔 보비 릭스의 완승. “나이가 들어도 남성은 언제나 여자를 이길 수 있다”는 릭스의 주장이 힘을 얻는 순간이었다. 이듬해, 당시 세계 최강의 여성 테니스 선수였던 빌리 진킹이 다시 릭스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이번엔 빌리 진킹의 2 대 0 완승. 머쓱해진 릭스로서는 더 이상 남성 우월론을 펼치기 힘들게 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성들의 도전이 가장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종목은 역시 골프다. 미셸 위에 앞서 ‘골프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로라 데이비스(영국), 박세리 등이 남자 대회에 출전해 실력을 가늠한 바 있다. 물론 결과는 생각보다 좋지 못해 박세리를 제외하곤 모두 컷오프되는 불운을 맛봐야 했다.
재미난 것은 지난해 3월 골프계에서 ‘남성(?)의 여자종목 도전’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는 점. 9년 전 성전환 수술을 받아 여성으로 변신한 덴마크 골퍼 미안 배거(37)가 호주여자오픈대회에 참가하며 격렬한 찬반 논란이 일어났다. 호주여자골프협회가 “여자선수는 태어날 때부터 여자여야 한다”는 규정을 삭제한 덕분에 배거가 대회에 참가하며 논쟁이 일기 시작한 것. 그러나 골프계 일각에서는 “배거는 생체학적으로 볼 때 아직까지 남성이라고 볼 수 있다”며 출전을 강력히 반대했었다.
이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