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패배로 경기가 끝난 후 허탈한 표정을 짓는 우리 선수들. | ||
당시 본프레레 감독은 별다른 전술의 변화를 주지 못하고 사우디에 완벽하게 읽힌 경기를 펼쳤다. 이동국은 넓지 않은 활동반경과 상대 수비의 집중마크에 힘을 쓰지 못했다. 이천수는 이전의 침투력과 날카로운 크로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던 사우디전에서의 패배를 통해 본프레레 감독이 풀어 나가야할 과제들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본다.
이천수를 아껴써라
이천수는 스페인에서 거의 경기를 뛰지 못하고 최근 울산현대로의 복귀가 결정됐다. 지난 2월 쿠웨이트전에서도 이천수의 플레이는 기대 이하였다. 국가대표팀 감독이 선수를 선발하는 기준은 경기를 꾸준히 뛰면서 준비가 된 선수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천수가 스페인에서 조기에 두바이 전지훈련지에 합류할 당시에는 스페인무대에서 탈락한 후유증에다 심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본프레레 감독이 이례적으로 특별 개인훈련까지 시키며 이천수에게 관심을 표명한 것도 사기가 꺾인 이천수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한 조치였다.
결과적으로 본프레레 감독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한국은 사우디전에서 설기현의 왼쪽공격만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공격은 좌우밸런스가 맞아야 효과적임에도 불구하고 이천수의 오른쪽 공격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이천수가 오른쪽 측면공격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 선수라는 사실은 그의 컨디션이 좋았을 때의 일이다. 이천수를 정말 아낀다면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엉덩이와 어깨로 골을 넣은 선수라는 얘기까지 들었던 차두리는 4경기 출장정지기간 동안 팀의 주전으로 부쩍 성장했다.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면서 컨디션이 좋아졌고 공격 포인트를 쌓으면서 자신감도 회복했다.
선수를 아끼고 선수에 대한 판단 능력을 제대로 갖춘 감독이라면 주전 선수도 과감히 대표발탁에서 제외시키고 리그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용단이 필요하다.
감독의 역활은 제로?
사우디는 한국의 전술적인 부분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경기에 임했다. 본프레레 감독이 KO패를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우디는 이동국 설기현 이천수 등 3명의 공격수에 맞서 포백수비를 가동했다. 또 축구협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사우디는 왼쪽수비가 약하다고 했지만 그런 점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정보력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냈고 전술부재도 심각하다. 본프레레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 사우디 전에서 이천수의 플레이는 기대 이하였다. | ||
쿠웨이트전이 끝나고 본프레레 감독에게 쏟아졌던 찬사는 감독이 용병술을 잘해 이룬 승리보다는 선수들이 잘해줬기 때문이란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전술 없이 선수의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형태의 반복은 선수들에게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히딩크 감독은 얄미울 만큼 선수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잘 휘둘렀다.
빨리 쇼크에서 벗어나라
사우디전 패배는 대표팀에게 상당한 정신적인 쇼크를 불러올 것이다. 2002월드컵이 끝나고 한국은 오만 쇼크, 몰디브 쇼크, 베트남 쇼크 등 여러 가지 쇼크에 빠졌다. 그럴 때마다 한국은 위기를 잘 이겨냈는데 이번에 그 쇼크를 다시 겪고 만 것이다. 더욱이 이번에는 해외파가 모두 합류한 상태에서 당한 패배라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전의 충격과 달리 사우디전 패배는 월드컵 본선무대를 위한 최종예선전에서 터진 쇼크인 만큼 하루빨리 치유해야 한다. 선수들에게 빨리 잊어버리라고만 얘기하기에는 현실의 충격이 만만치 않다. 본프레레 감독은 말이 통하지 않고 고집도 센 편이라 선수들을 안아줄 만한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대표팀 내부에 심리적인 치료를 담당하는 직책을 만들어서라도 선수들의 정신적인 공황을 빨리 털어내야 한다. 체력담당 트레이너가 있다면 이제는 심리담당 트레이너도 필요한 현실이다.
변현명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