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호에겐 부상 없이 시즌을 시작하는 올해가 ‘먹튀’ 오명을 씻고 부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 ||
국내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올 시즌 가장 큰 관심거리는 박찬호(32·텍사스 레인저스)의 재기 여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난 9일(한국시간) 박찬호는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 시즌 첫 선발등판해 5와 2/3이닝을 4안타 3실점으로 막아 부활의 청신호를 켰다. 비록 불펜의 구원실패로 아깝게 첫 승은 놓쳤지만 올 스프링캠프에서 갈고 닦은 투심패스트볼의 위력은 대단했고, 낮게 깔리는 제구력도 통했다. 그동안의 ‘먹튀’ 오명을 씻고 10승 투수 대열에 재진입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올 시즌 박찬호의 재기 가능성에 대해 우선 지난 시범경기부터 살펴보자. 박찬호는 지난 3월3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첫 시범경기에서 2이닝 동안 5안타로 3실점하며 불안한 스타트를 끊었다. 3월10일 커브스전 역시 3이닝 4안타 3실점으로 지지부진하던 박찬호는 3월15일 AL 서부조 라이벌인 LA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4이닝 1안타 무실점의 역투로 비로소 감을 찾기 시작했다.
이 경기에서 최고 구속 151km를 과시한 박찬호는 경기가 끝난 뒤 “투심이 좋았다”고 자평하며 스프링 캠프 초반 초조하던 모습에서 한층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오렐 허샤이저 텍사스 투수 코치의 전성기 때 주무기인 투심패스트볼은 보통 말하는 직구, 즉 포심패스트볼에 비해 구속은 약간 떨어지지만 공의 움직임이 심하고 끝에서 싱커성으로 떨어지는 구질이다. 허샤이저 코치는 땅볼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텍사스 구장에서 투심이 훨씬 위력적이라는 이유로 투수진에게 모두 투심을 익히게 했는데, 박찬호가 뒤늦게 투심을 주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토록 비판적이던 현지의 언론들조차 부활의 가능성에 들뜨던 이 경기 이후 박찬호는 그러나 또다시 들쭉날쭉한 모습이었다. 3월20일 에인절스와 재대결에서 4와 2/3이닝 동안 3실점(1자책)하더니 3월25일 캔자스시티전에서는 5와 2/3이닝 동안 홈런 2개를 포함해 6안타를 맞고 4실점했다.
3월30일 샌디에이고전에서도 5이닝 동안 홈런 1개를 포함 8안타로 6점을 내주며 흔들렸던 박찬호는 지난 4일 마지막 시범경기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5이닝 5안타 2실점으로 막고 마지막 준비를 마쳤다. 이 경기가 끝난 뒤 박찬호는 “새로운 도전으로 생각하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며 “너무 조바심 갖지 않고 여유를 가지며 낮게 가져가겠다”고 정규 시즌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박찬호의 올 시범경기 성적은 29와 1/3이닝 동안 홈런 4개를 포함해 33안타를 맞고 21실점(19자책)에 4사구 5개와 삼진 18개를 기록했다. 방어율이 5.83이다. 작년 시범경기에서 박찬호는 25와 2/3이닝 동안 홈런 4개 포함해 29안타를 맞고 19자책점을 내줘 방어율 6.66을 기록했다.
2년 연속으로 이닝 수보다 안타수가 많았고, 방어율은 작년보다는 좋아졌지만 여전히 6점대에 가까운 저조한 기록이다. 전성기 시절 좀처럼 이닝 수보다 안타수가 많지 않았던 박찬호였다. 기록상으로는 구위가 떨어졌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작년에는 올해보다 적은 이닝 동안 10개의 4사구를 내준 반면에 올해는 이닝이 늘어났는데도 걸어 내보낸 숫자는 절반으로 줄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박찬호가 제구력에 신경을 쓰고 있으며, 많이 향상됐다는 아주 고무적인 대목이다. 볼넷이나 몸에 맞는 공을 몰아준 후에는 장타가 터지는 경우가 태반이고, 결국 대량 실점으로 경기를 잃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팬들이 신경을 쓰는 구속은 실전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박찬호의 경우 145~150km대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낮게 깔리는 제구력과 공의 움직임이 좋은 투심 등을 사용하는 새 패턴을 능숙하게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밝은 기대를 걸게 하는 점은 본인이 수차례 이야기했듯이 몸이 건강해졌다는 사실이다. 지난 3년간 부상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등판을 강행하다가 실패를 거듭했는데, 올 스프링 캠프에서는 모처럼 허리나 다른 부위의 통증 없이 훈련에 임했고, ‘보수 공사’할 부분 없이, 가뿐하게 마운드에 올랐다. 즉 예전처럼 시범경기에서 여러 가지를 테스트하면서 정규 시즌을 준비했다는 의미다.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한다면 한 시즌 30번 이상 선발로 나설 수 있고, 텍사스의 라인업을 감안하면 10승 이상을 충분히 거둘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할 수 있다.
물론 지구 라이벌팀들의 전력이 좋아지고 텍사스 불펜진이 허점을 드러내는 등 정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결국 박찬호 자신에게 올시즌 재기 여부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주 조심스럽지만 10승대에 진입하는 박찬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스포츠조선> 야구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