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호(왼쪽), 노모 | ||
반면에 박찬호는 FA로 대박을 터뜨려 올 연봉 1천4백만달러를 받고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부활을 노리고 있다. 그런데 이날 식사를 하면서 박찬호는 노모에게 적절한 조언을 받았던 모양이다. 불과 며칠 전에 노모가 양키스를 꺾었고, 곧이어 박찬호가 양키스를 상대로 통쾌한 2승째를 거뒀으니 말이다.
노모는 박찬호가 MLB에서 만난 많지 않은 친한 친구 중의 하나다. 다저스 시절 같은 동양인으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주변에서는 계속 두 선수를 비교했지만 오프 시즌이면 박찬호가 일본에 가서 노모와 시간을 보내고, 노모도 서울에서 열린 박찬호의 행사에 참석하는 등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사실 노모는 박찬호가 한때 우상으로 삼아 독특한 투구폼까지 흉내를 내기도 했던 선수다. 그러다 팀 동료로 만나 오늘까지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것.
마이너리그 시절 박찬호는 동료들과 그다지 매끈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박찬호의 성격이 모나서가 아니라, 언어 소통이 어려운 데다 팀 내 유일한 동양인이라는 점 때문에 알게 모르게 많은 차별도 받으며 지냈다. 특히 다저스의 마이너리그에는 미국 선수들만큼이나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등 남미계 출신들이 많았다. 끼리끼리 모여서 노는 일이 많았으니, 박찬호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외톨이로 지내는 경우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양키스의 구원 투수로 뛰고 있는 펠릭스 로드리게스가 종종 박찬호의 아파트를 찾아와 라면을 함께 끓여 먹기도 했지만, 마음을 터놓을 만한 친한 친구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박찬호는 투수 코치 버트 후튼 등 코칭스태프에게 사랑을 받았다.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 지도자들의 지시를 고분고분하게 잘 따르는 데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훈련에 몰두하는 선수가 예쁘지 않을 리 없었다.
트리플A 시절에는 동료들과 대판 싸움을 벌인 적도 있었다. 마늘 냄새가 문제가 됐던 것이다. 전날 박찬호가 모처럼 불고기와 마늘로 포식을 했는데 하루가 지나도 마늘 냄새가 몸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경기 전 훈련을 마치고 샤워장으로 향하자 한 선수가 코를 움켜쥐며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난리였다. 쌓인 게 많았던 박찬호는 글러브를 집어던지며 고함을 지르고 분통을 터뜨렸다. 평소와 전혀 다른 박찬호의 반응에 동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고, 그 후로 대놓고 박찬호를 무시하고 놀리는 선수는 없었다. 박찬호는 그 때 이야기를 하면 “자기들은 치즈 냄새가 엄청 나는 것도 모르고, 나더러만 마늘 냄새 난다고 놀리고 조롱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 (왼쪽부터) 대런 드라이포트, 채드 크루터, 게리 셰필드 | ||
다저스 시절 박찬호와 가장 친했던 선수는 대런 드라이포트다. 투수에다가 1994년 같은 해에 입단했고, MLB 사상 17, 18번째로 나란히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빅리그에 진입해 화제를 몰고 왔던 선수들이다. 두 선수는 계속 친분을 이어갔고, 지난 2001년 아주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한 드라이포트의 결혼식에 박찬호가 참석하기도 했다. 당시 결혼하는 친구를 박찬호가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포수 채드 크루터와 외야수 게리 셰필드도 빼놓을 수 없다. 크루터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박찬호의 전성기였던 2000~2001년 시즌 배터리로 호흡을 맞췄던 사이다. 박찬호 때문에 선수 생활을 2~3년 더 연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크루터는 이해관계를 떠나 박찬호를 진정으로 아끼고, 늘 돌보던 선배였다. 박찬호가 정통파 투수의 길에서 약간 벗어난 것이 크루터 때문이라는 말도 나왔으나, 투수로서 눈을 뜨게 해준 사람 중의 한 명도 크루터였다.
셰필드는 자존심 강하고 할 말은 하는 선수인데, 박찬호와 함께 개인 훈련을 하기도 하고, 궁지에 몰리기라도 하면 박찬호를 적극 지원한 스타일이었다. 다혈질에다 본인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앞뒤 안 가리는 성격이면서도 박찬호의 동양적인 사고와 선배 대접에는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다저스 시절만 해도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박찬호는 텍사스로 이적 후 외로운 날들을 보내야 했다. 프로는 돈이다. 역으로 돈을 받으면 몸값을 해야 하는 것이 프로다. 그러나 박찬호가 첫 해부터 부상으로 무너지자 새 동료들의 눈길은 고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초창기에는 괜찮았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팀의 간판선수로 박찬호를 휘하에 넣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저녁 식사에 초대도 하고, 함께 텍사스를 강팀으로 이끌자고 약속을 하기도 했다. 노장 투수 케니 로저스와 1루수 라파엘 팔메이로도 박찬호에게 매우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냈다.
그러나 박찬호의 부상이 길어지고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길고 지리한 재활 운동만큼이나 박찬호를 괴롭힌 것은 동료들의 냉랭한 눈길이었다. 클럽하우스에서 암울하게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오죽하면 원형 탈모증까지 생겼을까.
그러나 부상에서 돌아온 올 시즌 박찬호의 표정은 모처럼 밝아졌다. 코칭스태프나 동료들의 박찬호를 보는 눈길 역시 눈에 띄게 변했다. 요즘처럼만 꾸준히 해준다면 텍사스에서 남은 2년 간은 마음고생 없이 동료들과 즐거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조선 야구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