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18일 KCC의 허재 신임 감독(오른쪽)이 정몽익 구단주와 악수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
원주 TG삼보와 전주 KCC의 챔피언결정전이 한창이던 지난 4월 중순. 신선우 전 KCC 감독이 챔피언결정전을 마친 후 팀을 떠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프로농구 출범 당시부터 KCC(당시 현대)를 맡아 3회 우승을 일군 신 감독의 뒤를 과연 누가 이어받을 것인가가 농구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룹의 특성상 대표적인 ‘현대맨’들이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최희암 전 울산 모비스 감독(최근 동국대 감독 선임)과 박종천 전 창원 LG 감독 등이 그 선두 주자들. 최고 명문팀답게 첫해부터 가시적인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경험 많은 지도자가 선임될 것이라는 점에 대부분의 농구 담당 기자들도 동의했다.
그런데 이 즈음해서 몇몇 기자들의 레이더망에 ‘허재’라는 의외의 카드가 포착되기 시작됐다. 그러나 허재가 TG삼보 미주지역 홍보이사 자격으로 지도자 연수중이었고, TG삼보 농구단의 이홍선 구단주-최형길 단장-전창진 감독으로 이어지는 용산고 인맥의 마지막 선이라는 점에서 허재가 TG삼보를 떠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자연스레 ‘허재 감독 영입설’은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당시 허재는 챔피언결정전 관람차 귀국해 열렬히 TG삼보를 응원하고 있었다.
4월17일 챔피언결정전이 TG삼보의 승리로 끝난 후 허재는 예정보다 오랜 기간을 국내에서 머물렀다. 갖가지 추측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미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KCC 정몽진 회장(전 KCC 농구단 구단주)을 단독 면담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정 회장은 허재의 용산고 6년 선배. 매년 용산고 농구부에 장학금을 쾌척할 정도로 용산고 인맥에 대해서 각별한 애정을 나타낸 터라 허재의 전주행 시나리오는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농구 기자들이 ‘이거 장난이 아닌데?’라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지난 4월 말,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TG삼보의 매각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 TG삼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경우 허재가 원주에 남아야 하는 이유도, TG삼보를 단단히 동여매고 있던 ‘용산고 마피아’의 응집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KCC측에서는 구단 관계자를 통해 TG삼보 최형길 단장에게 허재를 영입해도 괜찮은가를 물었다. 허재를 직접 만나기 전에 TG삼보측에 예의를 갖춘 것이다. 최 단장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Yes’. 이때부터 KCC의 허재 감독 영입 작전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어린이날이었던 5월5일. KCC의 김재욱 사무국장은 외국인선수 찰스 민렌드와의 재계약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김 국장이 들고 간 파일에는 민렌드 재계약 건 이외에 또 한 장의 서류가 포함돼 있었다. 바로 허재 신임감독 영입 건. 김 국장이 귀국길에 들른 곳은 다름 아닌 허재가 머물고 있던 LA였다. 김 국장은 11일 LA에서 허재를 만나 감독직을 공식적으로 제의한 뒤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허재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들은 KCC는 이후 본격적인 새 감독 모시기 준비에 들어갔고, 5월20일을 전후로 공식발표를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농구 담당 기자들의 초고성능 레이더망은 사흘 만에 KCC의 허재 감독 선임 소식을 포착했고, 김 국장은 15일 저녁과 16일 아침 두 군데의 언론사로부터 확인 전화를 받게 됐다. 결국 두 언론사에 양해를 구하고 16일 오전 각 언론사에 ‘허재 신임감독 취임’ 보도자료를 돌리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KCC의 감독 선임 작전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허재 신임감독은 구단측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급거 귀국길에 올랐다. 17일 오후 5시께 인천공항에 도착한 허 감독은 곧바로 KCC의 경기도 용인 마북리 숙소로 향했고 구단 관계자들과 계약기간과 연봉 등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협의했다.
다음날인 18일, 서울 서초동 KCC 본사에서는 ‘허재 신임감독 취임’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고, 연봉 2억3천만원이라는 역대 신인 감독 최고 대우에 2년 계약을 맺은 허재 감독은 “갑작스런 기회를 얻은 만큼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일궈내겠다”는 취임 일성을 발표했다.
허재원 스포츠투데이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