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지난 96년 LA 다저스의 루키 투수로 구원과 선발을 오가면서 5승을 거뒀을 당시만 해도 그토록 소중하던 1승, 1승이었는데, 2년째부터 5년 연속으로 매 시즌 평균 15승 이상씩을 거둬주니 빅리그의 1승은 그다지 어렵지도 소중하지도 않다는 느낌을 들게 할 정도였다. 물론 지난 3년간 박찬호가 부상에 시달리면서 슬럼프에 빠지자 우리는 다시 1승에 목말라하며 그 소중함을 조금은 되찾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런 박찬호가 이제 통산 100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100승을 거둔다는 것, 과연 이 ‘100승’이라는 것의 의미는 어느 정도이고 100승을 이룬 이후 박찬호의 또 다른 ‘숙제’는 무엇인지를 알아본다.
우선 빅리그 마운드를 밟아봤던 우리 선수들에서 찾아보자.
지금까지 MLB 마운드를 밟아본 한국 투수는 모두 8명이었다. 그중에 박찬호를 제외하면 김병현이 31승31패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서재응이 16승23패, 김선우가 7승9패, 봉중근이 7승4패 등을 기록했다. 그 외에 조진호와 백차승이 각각 2승6패와 2승4패를 기록했고, 이상훈은 승패가 없었다.
박찬호 외에 빅리그 마운드에 섰던 우리 선수 7명의 성적을 모두 합하면 65승77패다. 7명의 성적을 합친 것인데도 아직도 100승을 채우려면 35승이 남았다. 그런데 박찬호는 홀로 98승73패를 거두며 100승에 2승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지난 2001년 겨울 다저스를 떠날 당시 이미 80승을 거뒀던 박찬호이기에 4년 만에 100승에 도전한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늦은 감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앞으로 빅리그에서 100승을 거둘 한국 투수가 또 나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분명히 걸출한 젊은 투수들이 나와서 박찬호 이상으로 MLB를 호령할 것이라고 믿고 기대는 걸지만, 결코 장담할 수 없을 만큼 100승의 의미는 크고, 높다.
1백30년이 넘는 MLB 역사상 10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5백명이 약간 넘는다. 최다승을 거둔 투수는 사이 영으로 511승을 거뒀고, 월터 존슨이 417승으로 역대 2위에 올라있다. 그 외에 300승대를 거둔 투수들이 20명이 있다.
그러나 현대 야구에서의 1승은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미국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선발 투수가 2~3일 만에 마운드에 다시 오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출전수가 많으니 능력이 뛰어난 투수들은 당연히 승수도 많을 수밖에.
현대 야구에서는 선발 투수가 5게임마다 등판하는 것이 원칙처럼 돼 있다. 또한 타자들의 파워와 기술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향상됐다. 더욱이 분업화로 구원 투수들이 언제라도 마운드를 넘겨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만큼 선발 투수에게 승리의 기회는 줄어들고만 있다.
이런 추세이기 때문에 예전에는 300승을 거두면 명예의 전당을 예약할 수 있었던 것이, 요즘은 200승 이상만 거둬도 명예의 전당을 넘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한 시즌 40승은커녕 20승을 거두는 투수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대 야구다.
쉽게 말해서 요즘 MLB에서 10승을 거두면 수준급의 투수로 인정을 받고 연봉도 수백만달러를 받는다. 그런 투수가 10년 연속 매년 10승씩을 거둬야 오를 수 있는 승수가 바로 100승이다.
▲ 지난 97년 함께한 박찬호와 노모. 두 사람은 친구이자 라이벌이다. | ||
잘나갈 때는 누구도 불행이 다가올 수 있음을 예감할 수 없듯, 그 당시 박찬호의 꿈은 당연히 이룰 수 있는 목표였다. 부상으로 허탕 친 지난 3년간이 가장 큰 아쉬움이긴 하다. 이제 200승의 목표는 달성하기가 아주 어려운 현실이다. 텍사스 이적 후에 매년 10승씩만 거뒀어도 지금쯤 110승을 넘어 120~130승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변신을 거듭하면서 피칭에 더욱 눈을 뜨고 있는 박찬호가 몸 관리를 철저히 해준다면 150승은 충분히 가시권에 있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체력과 스피드와 파워는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반면에 노련미와 경험과 승리의 노하우는 갈수록 쌓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찬호에게는 또 한 가지 뚜렷한 목표가 있다. 동양계 투수 중에 최다승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동양계 투수 중에 최다승을 거둔 선수는 다저스 시절 박찬호의 동료이던 노모 히데오다. 박찬호보다 1년 먼저 빅리그에 정착한 노모는 7팀을 거치면서 120승105패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37세인 노모는 템파베이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올시즌 성적은 2승4패에 방어율 6.75를 기록하고 있다.
다저스 초년병 시절 박찬호는 노모와 비교될 때마다 “배울 것이 정말 많은 선배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비교 평가는 선수 생활을 마감한 후에 해 달라”는 말을 줄곧 했었다. 그만큼 동양 투수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집념이 강했고, 1~2년 내에 최다승 동양 투수의 자리에 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박찬호의 서재에는 97개의 야구공이 나란히 놓여있다, 공마다 날짜가 적혀있다. 승리를 거둘 때마다 공을 모두 모아놓았다. 당시 다저스의 피터 오말리 구단주에게 선사한 첫 승을 거둔 공을 제외하곤 모든 공들이 줄지어 영광의 날들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공 하나 하나에는 박찬호의 땀과 눈물과 기쁨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그를 아끼고 성원한 모든 팬들의 정성과 사랑도 담겨있다. 이제 100승째 공이 그의 서재에 자리 잡는 날, 그동안 100번의 선물을 안겨준 박찬호에게 팬들은 또 한 번 성원과 갈채를 아끼지 않을 것이고, 박찬호 또한 팬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해야 할 것이다.
스포츠조선 야구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