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성은 예전의 목표가 ‘형 정수근’이었다면 이제는 ‘진짜 야구’라며 환하게 웃었다. jhlee@ilyo.co.kr | ||
배칠수(배): 정수근 선수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수성 선수를 처음 보는데 왠지 친근한 기분이 드네요.
정수성(정):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씀하세요. 괜히 아는 척, 친한 척하는 분들 계세요. 이젠 그러려니 하죠.
배: 78년생이라. 그러고 보니 우리 마누라보다 더 어리네. 한참 더 (야구를) 해야겠어요.
정: 한참했어요. 힘들게요. 주로 사람들이 없는 2군에서 하니까 외로움도 컸죠. 열심히 해도 좋은 결과가 안 나타나고.
배: 스트레스가 많았겠네요.
정: 장난 아니었죠. 야구는 경기 결과가 바로 바로 나타나잖아요. 어렵게 1군에 올라가면 시합에도 못 나가고, 자리도 없고, 또 힘들게 얻은 기회에서 안타 한 개 치지 못하고 물러날 때면 그냥 팍 때려치우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배: 형과 사이가 안 좋았겠어요.
정: 프로 입단 하고 2∼3년간은 말도 안 하고 지냈어요. 형 때문에 너무 열 받아서 집을 나간 적도 있었죠. 어린 생각이었죠. 지금은 잘 지내요. 형도 내 걱정 많이 하고 나도 형 걱정 해주고. 한 살 차이라 형한테 열등감 같은 걸 느꼈나 봐요. 주위 사람들의 말 한 마디를 그냥 넘기질 못했으니까.
배: 지난해 정수근 선수가 FA가 되면서 대박을 쳤는데 그 돈 좀 나눠 주던가요?
정: 제 연봉으로도 충분해요. 올시즌 연봉이 4천만원으로 올랐거든요. 일반 직장인들이 한달에 4백만원씩 버는 거 힘들잖아요. 연봉이 1천2백만원일 때도 있었어요. 그때도 잘 지냈는데요 뭘. 와이프가 항상 그렇게 얘기했어요. 4백만원도 엄청 큰 돈이라고. 그 돈 갖고 저축하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배: 와! 부인 진짜 멋있다. 정말 대단해요. (옆에서 지켜보던 구단 홍보 담당자가 와이프가 미인이라고 거들자) 거기다 예쁘기까지…. 정수성 선수한테는 1억원이란 연봉이 엄청난 액수로 느껴지겠어요.
▲ 배칠수와 팔씨름하는 정수성. 굵은 그의 팔뚝에서 진한 승부욕이 엿보인다.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배: 혹시 형이 많은 돈을 받고 운동하는 게 배 아프진 않았어요?
정: 아뇨. 형이 FA 계약을 맺었을 때는 진심으로 축하해 줬어요. 기분 좋았죠. 솔직히 형이 계약을 잘한 거죠. 그것도 기술인 거 같아요. 난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배: 야구를 그만두고 싶은 적이 많았겠어요.
정: 이거 처음 하는 말인데 사실 지난 4월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어요. 라커에 있는 짐 다 빼서 차에 실었죠. 형한테 상의도 안 하고 혼자 결정한 거였어요. 그런 다음 수석코치님을 찾아가서 그만두겠다고 말씀 드렸어요. 그 코치님 하시는 말씀이 지난 8년 동안 갖은 고생 다 해서 어렵게 1군으로 올라왔는데 지금 그만두기가 너무 아깝지 않냐는 거였어요.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라시면서. 결국 다음날 다시 짐을 풀었죠.
배: 에이, 그 보따리 꽉 안 묶은 거였겠지. 하하. 4월이면 시즌 시작할 때인데 얼마 전 일이었네요.
정: 네. 시범경기 때 생각대로 안 풀리는 거예요. 자꾸 한계에 부딪혔죠. 아, 이게 내 실력의 끝이구나 싶었어요. 만약 코치님이 안 붙들었더라면 지금 이런 자리도 없었겠죠?
배: 그 코치님께 선물이라도 사 드리세요. 자칫하면 철물점이나 세탁소를 차릴 수 있는 운명이었는데 그때 붙잡아주신 바람에 다시 야구를 하는 거잖아요.
정: 그럼요. 꼭 보답할 겁니다. 사실 야구하는 동안 욕 많이 먹었어요. 주로 형보다 못하다는 얘긴 늘 듣는 레퍼토리였죠. 처음 입단했을 때 선배들이 한 얘기가 잊혀지질 않아요. “넌 1년 안에 짤린다”는 소리였어요.
배: 누가 그런 소릴 했어요? 이름 공개하세요.
정: 지금 그분들 여기 없어요. 다 나갔어요.
배: 그럼 그렇지. 그 사람들 분명 밖에서 무슨 장사하고 있을 거야.
정: 지금 성적이 좋긴 해도 전 늘 불안해요. 다시 떨어질까봐. 정말 잘 해도 걱정이라는 게 맞는 말 같아요.
배: 어이쿠, 쓸 데 없는 걱정을 다 하시네. 또 떨어지면 또 다시 올라오도록 노력하면 되잖아요.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데.
정: 어렸을 때는 내가 빨리 주전돼서 형처럼 야구를 잘 해야지 했는데 지금은 그런 목표가 없어요.
배: 그럼 지금 갖고 있는 목표가 뭔가요?
정: 1군에 있는 거요. 다시 2군으로 가지 않고. 프로 경력은 9년차지만 제대로 한 건 몇 년 안 되거든요. 제대로 야구하고 싶어요. 눈치보지 않고.
정수근 얘기가 빠질 수가 없었다. 프로 생활하며 늘 비교되는 존재였기 때문에 정수성과의 인터뷰의 중심은 정수근이었다. 그러나 정수성은 싫은 표정이 아니었다. 이젠 형과 비교되는 것도 여유롭게 받아들일 만한 성적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배칠수씨와 팔씨름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연출을 하는데 의외로 팔뚝이 울퉁불퉁했다. 눈치를 챘는지 이렇게 덧붙인다. “체격이 작은데다 몸까지 왜소하면 더 무시당해요.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심하게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