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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스마일맨’으로 변신한 진필중. 선발투수가 굳어있으면 동료들이 부담스러워한다며 에러가 나도 일단 웃고 본다고.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배칠수(배): 모자를 벗으니까 인상이 아주 달라 보여요. 훨씬 부드러운데요?
진필중(진): 제가 선발로 나선 이후부턴 일부러라도 웃으려고 해요. 마무리 때는 포커페이스인 척 내숭 떨었지만 선발투수가 너무 경직된 표정을 하고 있으면 다른 선수들이 부담스러워 하더라구요. 그래서 에러나도 웃고, 안타 맞아도 웃고, 그러죠.
배: 속사정을 모른 사람들은 오해하겠어요. 실없어 보인다고.
진: 제가 표정을 푸니까 더 편안해 보인다고 그러시던데요. 패했다고 인상 구기고 있으면 뭐해요. 야수들이 실수를 해도 제가 먼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를 해야 게임이 잘 풀려요. 꽃미남과가 아니라 제가 인상 쓰고 있으면 주위에 사람들이 안 와요.
배: 선발로 돌린 후 한동안 맘 고생 좀 하셨죠? 진필중 선수의 경기를 보면 좀 운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4회까지 점수 안 내주다가도 에러에 엮이고 포볼에 엮이다가 빗맞은 타구가 점수를 쓸어 담는 등 불운했던 장면들이 몇 번 눈에 띄었어요.
진: 솔직히 속상할 때도 많죠. 다른 투수가 던질 때는 그렇게 수비도 잘하고 잘 치는 방망이가 왜 내가 나오면 이렇게 꼬일까 하는 생각들이었죠. 그런데 이것도 운명이라고 봐요. 얼마전 하도 답답해서 휴대폰으로 운세를 본 적이 있는데 6월부터 잘 풀린다고 하더라구요. 하하.
배: 투수 입장에선 마무리하고 선발의 차이를 어떻게 느낄까요?
진: 선발은 스스로 승리 요건을 만드는 거죠. 그런데 마무리는 자기가 잘한다고 성적 나는 게 아니에요. 게임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리베라가 와도 40세이브는 힘들어요. 마무리할 때는 별다른 부담이 없었어요. 그런데 선발은 아무래도 부담이 커지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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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칠수(왼쪽), 진필중 | ||
진: 하하 기아의 홍세완 선수요. 언젠가 2002년 홍세완 선수가 저랑 맞붙었을 때의 기록을 보니까 6할6푼7리인가? 그렇더라구요. 거의 다 때려 맞췄다는 소리잖아요.
배: 아니, 왜 그렇게 그 선수한테 약한 모습을 보였어요?
진: 기아로 잠시 트레이드됐을 때 홍세완 선수랑 직접 얘길 해봤는데 그 선수가 노림수에 강하더라구요. 자기가 좋아하는 공이 올 때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다리거든요. 저도 나름대로 그 선수의 노림수가 뭔지를 파악하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피칭을 하는데 실투를 할 경우 절대 놓치는 법이 없어요. 홍세완이 나오면 방망이가 부러져도 안타고, 빗맞았는데도 텍사스성안타가 나와요. 그 친구가 타석에 서 있으면 투 스트라이크 노 볼인데도 불안해져요. 완전히 타자한테 말리는 거죠.
배: 반면에 진필중 선수만 만나면 꼼짝 못하는 타자들도 있죠?
진: 물론 있죠. 지금 기아에 있는 마해영 선수가 저한테 유독 약해요. 맞아도 정확하게 맞는 배팅은 없고 대부분 빗맞는 경우예요. 아, 이승엽이가 한국에 있을 때는 완전 ‘밥’이었어요. 제가 이승엽과 상대한 5년 동안 무안타를 기록한 적도 있으니까요. 기아 있을 때 홈런 2개 맞은 것 빼놓고는 저한테 맥을 못 췄어요. 그래서인지 승엽이가 잠실에서 경기가 있을 땐 제가 몸 풀고 있는 것만 봐도 긴장했다고 하더라구요. 불펜에서 피칭 연습하고 있으면 괜히 쳐다봐요. 그러면서 모자를 벗고 살짝 미소도 짓고. 하나만 달라는 거죠. 하여튼 재미있었어요.
배: 하하. 이승엽 선수한테 그런 면도 있었어요?
진: 전 좋아 보이던데요. 정수근 선수가 두산에 있을 때 선배들이 농담조로 이런 말을 자주 했어요. “수근아, 네가 다른 팀 선수들한테 인사하는 것 반만 우리들한테 해도 사랑받을 것”이라고. 수근이는 다른 팀 투수들이 연습하고 있으면 일부러 찾아가선 “형, 안녕하세요? 형수님도 잘 계시죠? 몸은 어떠세요?”하면서 친근감 있게 대해요. 그럼 그 투수들은 절대 위협구 못 던지거든요. 타석에 들어설 때도 포수한테 “형, 잘 지내시죠? 에이 공 하나만 줘요. 어제 잘 때리시더라구요?”라면서 상대 포수의 기분을 업 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요.
배: 야, 정수근 선수의 생존 법칙이구나. 그렇게 살갑게 굴면 밉지가 않을 것 같아요.
진: 그렇죠. 야구장도 엄연히 축소된 사회이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만 존재하는 게 아니거든요. 다 상대적인 거잖아요.
배: 게임이 잘 안 풀려서 중간에 내려가고 싶을 때도 있죠?
진: 그럼요. 위기에 빠질 때 마운드에 혼자 서 있으면 무지 외로워요. 야, 이거 내려가곤 싶은데 감독은 바꿔줄 생각도 안 하고 사람들은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거나 야유하고, 미치기 직전이죠.
배: 참, 요즘 무슨 약 드신다면서요? 그게 무슨 약이에요?
진: 드디어 또 이 얘기가 나오네. 결혼 8년차인데 아직 아이가 없어요. 그래서 장모님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경주에서 한약을 지어오셨어요. 복용중인데 글쎄, 두고 봐야죠.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배: 부디 기다리는 소식이 들리길 바랄게요. 오늘 아주 재미난 얘기 많이 듣고 갑니다. 고마워요. 진필중 선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