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샌프란시스코와의 시범경기에서 타석에 들어선 9번 타자 박찬호가 마음껏 방망이를 휘두르며 깨끗한 좌전안타를 뽑아내고 있다. 스포츠서울 | ||
우스갯소리지만 타율만 보면 박찬호가 텍사스 선수 중에 최고다. 올해 2타수 2안타로 타율 10할을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가장 극적인 안타를 기록한 선수로는 단연 구대성을 꼽을 수 있다. MLB에서 가장 두려운 왼손 투수인 뉴욕 양키스의 랜디 존슨을 상대로 중견수 머리를 넘어가는 2루타를 터뜨리며 화제를 몰고 왔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들의 대부분은 투수다. LA 다저스의 최희섭과 시애틀 매리너스의 유망주 추신수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선수들은 모두 투수들이다. MLB는 내셔널리그(NL)와 아메리칸리그(AL)로 나뉘는데, NL에서는 타자들도 타석에 들어선다. 그렇기 때문에 투수의 타자로서의 능력도 상당히 중시된다. 그런데 한국 선수들의 타격을 살펴보면 상당히 뛰어난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다저스에서 오래 뛰면서 수많은 타석에 들어선 박찬호의 타격 기록을 보면 일단 홈런 2개가 눈에 확 들어온다. 박찬호는 지난 2000년 마운드에서는 18승으로 최강을 구가했는데, 타석에서도 결코 만만치 않은 기록을 올렸다. 2000년 시즌에 70타수 15안타로 투수로서는 보기 드문 2할1푼4리를 기록했고 홈런도 2개나 쳐내는 기염을 토했다.
박찬호는 통산 3백47타수 60안타로 1할7푼3리를 기록했다. 2루타가 15개에 3루타도 1개가 있고, 볼넷을 17개 얻은 반면에 삼진은 1백25개를 당했다.
텍사스 이적 후에는 타석에 들어설 기회가 거의 없지만, 지난 11일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인터리그 원정 경기에서 두 타석 동안 모두 안타를 뽑아내며 여전히 녹슬지 않은 타격 감각을 뽐내기도 했다. 특히 이날 박찬호는 MLB에서도 가장 빠른 공을 던진다는 A.J. 버넷을 상대로 2안타를 쳤는데, 첫 번째 타석에서는 159km의 강속구를 쳐서 깨끗한 중전 안타를 만들었고, 두 번째 타석에서는 뚝 떨어지는 커브를 쳐 좌전 안타를 기록했다.
공주고 시절 3루수에 5번 타자로 뛰었던 박찬호는 매일 밤 1천 번의 스윙을 하고 나서야 잠들었다. 그때 밤을 지새우며 익혔던 스윙 감각이 MLB 무대에서도 통하는 셈이다.
지난 5월21일 뉴욕의 크로스 타운 라이벌인 양키스와 메츠의 경기가 끝난 뒤 외신들은 저마다 구대성과 랜디 존슨의 대결을 톱기사로 다뤘다. 구대성이 미국 야구 역사상 최대의 미스매치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호들갑을 떨 정도였다. 사연인즉 당대 최고의 왼손 투수를 상대로 왼쪽 타석에 들어선 구대성이 중견수를 넘어가는 2루타를 터뜨렸던 것.
랜디 존슨이라면 MLB의 내로라하는 타자들도 겁내는 투수다. 205cm의 거구에서 뿜어대는 160km 가까운 강속구와 150km에 육박하는 슬라이더에는 속수무책이다. 특히 왼손 타자들은 존슨을 상대로 통산 타율이 1할9푼8리에 그칠 정도로 꼼짝을 못한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구대성이 2루타를 쳐냈으니 메츠의 더그아웃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특히 포수 마이크 피아자는 구대성이 타석에 들어서자 3루수 라이트에게 “만약 KOO가 안타를 친다면 내가 1백만달러를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큰소리쳤다가 두고두고 동료들에게 놀림감이 되고 있다.
▲ 지난 5월 21일 양키스전에서 홈으로 파고들어 득점에 성공한 구대성. 로이터/뉴시스 | ||
박찬호에 이어 가장 많이 타석에 들어선 한국 투수는 트리플A에서 활약중인 서재응이다. 그는 지난 2년간 뉴욕 메츠에서 뛰면서 총 89타수 11안타로 1할2푼4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2루타가 2개 있고, 6득점에 3타점, 그리고 볼넷은 6개에 삼진 32개로 전형적인 투수의 타격 기록을 보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도루가 1개 있다는 것.
상당히 좋은 스윙을 가지고 있는 서재응은 “연습 때는 칠만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막상 타석에 들어서면 정말 어렵다”고 실토했다. 매일 타격 연습만 하는 타자들도 3할을 치면 최상급의 타자가 될 정도니 투수들에게 타격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긴 하다.
봉중근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고교 시절 타격왕에 오를 정도였던 봉중근은 애틀랜타 시절 보비 콕스 감독이 두 번씩이나 대타로 기용할 정도로 타격 감각을 인정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성적은 11타수 무안타에 볼넷 1개, 삼진 6개다.
김선우는 도루를 1개 기록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는데, 타격 성적은 41타수 8안타, 1할9푼5리에 5타점 3득점, 2루타가 2개 있고 볼넷이 없는 반면에 삼진이 12개다. 1할9푼5리는 한국 투수들 중에 가장 높은 타율이다.
콜로라도로 이적해 선발 진입의 청신호를 켠 김병현은 통산 38타수 6안타로 1할5푼8리의 타율을 보유하고 있다. 2루타 1개에 3타점, 볼넷 1개에 삼진 7개가 김병현의 기록인데 삼진율이 20%를 밑돈다는 것은 김병현의 공을 맞추는 능력이 탁월함을 보여준다. NL에서 투수의 삼진율이 50% 이하면 일단 타격 감각이 있는 선수로 인정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의 삼진율을 보면 김병현의 18.4%를 비롯해 박찬호가 36%, 서재응 역시 36%, 김선우의 29.3% 등으로 모두 50%를 훨씬 밑돈다.
모두들 고교 시절까지 중심 타선으로 활약했을 정도로 뛰어난 운동 능력을 지닌 선수들이라 날고 기는 MLB 투수들을 상대로도 만만치 않은 타격 솜씨를 과시하고 있는 셈이다.
스포츠조선 야구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