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타로 나섰다 붙박이 지명타자가 된 롯데의 최준석. | ||
승부처에서 라인업에 올라있는 선발 출장한 선수가 부진한 경우 예외 없이 등장하는 ‘대타’는 단 한번의 주어진 기회에 부응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타석에 들어선다. 최준석·박연수(롯데) 이성열(LG) 문희성(두산) 강귀태(현대) 이재주(기아) 조중근(SK) 김대익(삼성) 임수민(한화) 등은 올 시즌이 시작되면서 대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던 선수들이다.
하지만 현재 이들의 운명은 조금씩 달라져 있는 게 사실. 시즌 초반 예상치 못한 ‘한방’을 터뜨린 최준석은 최근까지 붙박이 지명타자로 활약하고 있고 이성열과 문희성은 대타로 나서 보여준 강한 면모로 시즌 중반 아예 주전 자리를 꿰찼다.
한마디로 대타들은 피곤하다. 언제 어느 순간 타석에 들어서라는 명령이 떨어질지 모르니 매순간 경기에 집중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타로 들어서는 순간이 승부가 결정된 경우보다는 승부처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 또한 만만치 않은 게 사실.
강귀태(현대)는 “타석에 들어서든 안 서든 더그아웃에서 언제나 마음은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을 가정하고 있다”면서 “언제 어떤 상황에서 등장할지 모르기 때문에 매사 긴장되는 게 사실”이라며 부담감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해까지 대타로 활약하던 장종훈(한화)이 은퇴하면서 어깨가 더 무거워진 임수민의 경우는 “대타로 나서서 성공하면 야구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실패하게 되면 기분이 참 그렇고 그렇다”는 말로 심적인 느낌을 표현했다.
상대 투수에 대한 분석도 선발 출장하는 선수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대타로 나서는 경우는 선발 투수가 교체되는 시점인 중반 이후가 많다 보니 선발보다는 오히려 불펜진에 대한 분석이 더 필요하다는 것. 조중근(SK)은 “바뀐 투수가 좌완이냐 우완이냐, 어떤 구질을 던지느냐 등 한번 주어진 기회에 더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3할대를 치면 훌륭한 타자로 인정받는다. 10번 나와서 3번 살아나간다는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과연 대타는 어느 정도 해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대타의 타율은 2할대 중반에서 후반이면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선발로 나서는 타자들이 4번 정도 타석에 들어서 1번 이상 안타를 치면 큰 박수를 받는 것과 달리 대타에게는 한 경기에서 거의 한 번의 기회밖에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3할대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만큼 대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애로 사항도 많다는 말로 풀이할 수도 있다.
상대 투수의 달라지는 볼 배합은 대타들에게는 또 한 번 넘어야 할 산. 조중근(SK)은 “아무래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나서다 보니 상대 투수들의 볼 배합도 달라진다”면서 “긴장감 도는 상황에서 상대 배터리의 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타들은 연습 때 특정한 상황을 미리 염두에 두고 시뮬레이션 훈련에 비중을 둔다고 한다.
컨디션 조절도 대타에게는 생각만큼 쉽지 않은 과제다. 강귀태(현대)는 “주전은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부상당하면 빠지게 되지만 대타는 이런 부분을 방지해야 그나마 타석에 들어설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에 항상 최고의 몸상태로 만들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쓴다”며 대타가 가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어려움을 털어놨다.
최근 2군으로 내려간 이재주(기아) 역시 “한 번 자신감을 잃어버리면 타격감 전체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대타는 늘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 한다”며 “주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리적인 위축이 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타라면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황당’한 기억을 갖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그 에피소드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똑같은 상황이라는 것.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상대 투수에 따라 타석에 들어서려다 마는 것이다. 김대익(삼성)은 “좌타자가 좌투수에게 약하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라며 “타석에 들어서 있는데 갑자기 왼손투수로 바뀌면서 배트 한번 못 휘두르고 다시 대타가 대타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며 머쓱한 상황을 소개했다.
감독이 장고 끝에 변심(?)하는 경우에도 대타에게는 상처가 된다. 강귀태(현대)는 “감독님 지시에 따라 열심히 몸을 풀면서 타석에 들어설 준비를 하는데 느닷없이 다른 대타를 호명하는 바람에 할 말을 잊은 경우가 있었다”며 웃었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