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박찬호가 악몽의 땅이던 텍사스를 벗어나 남부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로 옮겼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를 아끼는 팬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국내 언론도 연일 희망찬 기대를 담은 즐거운 결론에 이미 도달한 느낌이다. 마치 박찬호가 또 한 번 대박을 터뜨리는 복권에라도 당첨된 분위기지만 과연 이번 트레이드가 박찬호에게 100% 새로운 성공을 가져다주는 기회가 될지는 냉정히 따져보고 나서 결론을 내릴 일이다.
일단 박찬호는 지난 4일(한국시각)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경기에 선발 출장해 4와 3분의 1이닝 동안 7실점으로 부진한 출발을 보였다.
NL 서부조
흔히 AL에서 뛰는 투수들의 방어율이 NL보다 1.00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AL에서 4.50의 방어율을 기록한 투수라면 NL에서 뛰면 3.50 정도로 방어율을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AL에서는 지명타자제도가 적용되는 반면 NL에서는 투수들도 타석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대개 홈런 파워를 지닌 거포가 지명타자로 나서기 때문에 투수로서는 그 부담감이 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투수가 9번 타자에 기용된다는 것은 단지 타격이 취약한 타자를 한명 상대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 앞 타석인 8번 타자도 언제든지 피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마운드의 투수에게는 이중 삼중의 이득을 가져다준다.
특히 박찬호가 전성기를 구가했던 LA 다저스나 샌프란시스코 등 파드리스와 같은 조에 소속된 NL서부조 팀들이 마치 시즌 전 약속이라도 한 듯, 불안한 전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일단 호재다.
파드리스 타선
텍사스의 막강 타선을 샌디에이고에서도 기대했다가는 큰코다친다. 7월 말까지 1백5경기를 소화한 샌디에이고는 4백44득점으로 NL 16개팀 중 14위의 빈곤한 득점력을 보이고 있다. 팀타율 역시 2할5푼6리로 14위고, 홈런은 89개로 공동 13위다. 팀 내에 10개 이상의 홈런을 친 타자가 세 명뿐. 그나마 16개인 라이언 클레스코가 최다 홈런 타자다.
전반기 텍사스 시절처럼 초반에 실점을 하면서 경기에서 뒤지게 되면 뒷심을 발휘할 파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타선이다.
홈구장 펫코파크
샌디에이고가 지난해 개장한 펫코파크(Petco Park)는 MLB 30개 구장 중에 가장 투수 친화적인 구장이다.
지난해 최저 홈런, 최저 안타, 최저 득점을 기록했을 정도로 철저히 타자들에게 불리하다. 플라이볼만 나오면 전전긍긍하던 알링턴의 아메리퀘스트필드에서의 불안감을 떨치고 박찬호 본인 특유의 피칭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견해도 나왔다. 박찬호는 올 시즌 홈런을 9개밖에 허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5점대의 방어율로 부진한 것은 장타보다는 볼넷과 단타를 많이 허용했기 때문이므로 장타가 터지지 않는 구장이라고 크게 이득 될 것이 없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철저히 투심 위주의 땅볼을 유도하는 투구 패턴으로 오히려 수세에 몰리기도 했던 점에서는 벗어날 수 있고, 여전히 150km를 상회하는 포심을 더 빈번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분명히 도움이 될 수는 있다.
친숙한 환경
지난 2001년 텍사스로 이적하면서 박찬호는 이중고를 겪어야했다. 대한민국의 4배나 되는 크기의 캘리포니아주에서 다른 주로의 이주는 새로운 나라로의 이주와 다를 바 없었다.
40℃를 넘는 날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더위, 여기에 백인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문화 등도 그의 ‘연착륙’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특히 교민들의 활동이 미국 내에서 가장 활발한 LA를 떠나 교민들이 거의 없다시피한 알링턴에 정착한 점 역시 그를 괴롭게 했다. 심지어 박찬호는 마땅하게 갈 사우나를 찾지 못해서 고생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샌디에이고는 LA 정도는 아니지만 교민 사회가 상당히 큰 규모로 발달돼 있고 한국 식당 및 사우나, 대형마켓 등 편의 시설도 꽤 많다. LA까지 자동차로 세 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을 정도다. 박찬호에게는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LA 인근으로 다시 돌아간 셈. 텍사스 시절보다는 심적으로 외로움이나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팀 적응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
심적 압박 팍팍
샌디에이고는 최근 8연패를 당하는 등 지독한 부진에 빠져있다. 지난 7월 성적이 8승18패. 독주체제로 포스트 시즌 진출을 예약하는 듯했으나 최근 들어 투·타에서 극심한 난조를 보이면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LA 다저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과 각축을 벌여야 하는 지경이 됐다.
부진의 가장 큰 이유는 선발투수진의 잇단 부상이다. 에이스 제이크 피비가 건재하지만 9승에 그치면서 더 이상의 승수 쌓기에 실패하고 있고, 2선발로 9승을 거둔 애덤 이튼은 부상에서 최근에서야 복귀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브라이언 로렌스(5승11패) 우디 윌리암스(5승8패) 등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외부 선발 영입도 신통치 않다. 지난 7월 텍사스에서 퇴출된 페드로 아스타시오만을 데려왔을 뿐이다.
이러한 와중에 거액 연봉자인 박찬호를 팀의 4번 타자를 내주고 영입을 했으니 구단이나 팬들이나 언론에서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실제 타워스 단장과 보치 감독 등도 이미 공개적으로 박찬호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일단 이미 텍사스에서 ‘먹튀’라는 오명을 남긴 전례가 있기 때문에 박찬호에 대한 시선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미 <스포츠일러스트 레이티드>와
박찬호의 구위가 이미 예전과 다르기 때문에 파드리스가 기대하는 만큼의 성적을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도 나오고 있다.
언론 보도 등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박찬호가 심리적인 부담감의 압박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제다. 어떻게 해서든 초반부터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시점이다.
제3의 커리어 시작
종합해보면 박찬호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은 분명히 본인에게는 행운이다. 그러나 무조건 낙관적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확실한 부활의 마지막 기회라는 비장한 각오와 노력으로 제3의 커리어를 시작해야 한다.
스포츠조선 야구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