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장정선수. | ||
183cm의 위성미(16·미셸 위)와 함께 찍어 ‘거꾸리와 장다리’로 불린 사진, 특유의 백만불짜리 미소, 인천공항에 마중 나온 둘째 언니(은경·28)의 미모, 형사 출신으로 22년 퇴직금을 털어 딸을 뒷바라지한 아버지 장석중씨(61)의 골프 대디 스토리…. 모든 게 화제였다. 동글동글, 생글생글, 씩씩한 목소리, 작지만 성격 좋은 명랑처녀. 하지만 말 못할 그늘도 있다. 생애 첫 승이라는 해맑은 웃음 뒤에 숨어있는 장정의 그림자를 살펴봤다.
“예쁜 옷을 못 입어서 그렇지 키 작은 건 골프와 전혀 상관없어요. 근데요 (박)지은 언니랑 (안)시현이처럼 저도 하늘하늘한 원피스가 잘 어울렸으면 좋겠어요. 하하하.”(2004년 10월 <스포츠투데이>와의 인터뷰)
“저 땅콩은 잘 먹지도 않아요. 깔깔깔… 슈퍼든 슈퍼 울트라든 땅콩이라고 부르는 건 싫어요. 애칭을 쓰시려면 작은 거인이라고 불러 주세요.”(2005년 8월2일 <조선일보>와의 귀국 인터뷰)
2004년 12월4일 일본 시가현 오오츠골프장. 한일 골프 대항전 직후 프레스룸의 한·일기자들은 잠시 승부를 잊고 다 같이 폭소를 터뜨렸다. 아야마 시호(28)와의 홀 매치플레이에서 6홀차 대승을 거둔 장정이 프레스룸에 들어서면서 “만세”를 불렀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한국의 어느 골프기자에게 물어도 장정에 대해 “성격 좋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보다 훨씬 귀여운 외모인데 항상 웃는 인상이다. 인사성 밝고, 경기를 망친 후에도 취재진의 인터뷰 요구에 흔쾌히 응할 정도로 친절해 기자들 사이에선 ‘인기짱’이다.
뭐 우승이 없다보니 장정에게 취재가 쏠리지 않는 탓도 있지만 심지어 장정에게 박세리 박지은 안시현 등 주요선수들의 동태를 물어도 장정은 별로 기분 나쁘지 않은 듯 아는 대로 얘기해준다.
박세리 박지은 등 슈퍼스타들이 취재 욕구가 강한 한국기자들과 종종 마찰을 빚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중립을 지켜야할 기자들이 종종 “장정이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장정에 대한 이미지는 최상급이다.
이번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 후 언론이 ‘대장정 쾌거’를 유난히 대서특필한 것도 현장기자들의 이 같은 심정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장석중씨(61)는 13년째 그림자처럼 셋째 딸을 쫓아다니고 있다. 장녀와 차녀에게는 미경(31), 은경이라는 여자다운 이름을 붙였지만 셋째는 임신했을 때 남자로 확신하고 아예 남자이름을 정해 놨다. 대전고 야구부 포수 출신인 자신을 닮아 운동신경이 뛰어난 셋째 딸 장정. 이웃사촌 박세리를 벤치마킹해 골프를 가리킨 책임을 여느 골프 대디 이상으로 최선을 다한 것이다.
22년간 근무한 형사생활도 접었고, 퇴직금을 모두 쏟아 부은 것은 물론이다. 또 아내 이경숙씨(53)가 식당 장사를 하도록 했다.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지만 ‘기러기아빠 가정’이 파탄 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처럼 장정 가족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덜했으나 지난 2000년 장석중씨가 장정과 함께 미국 투어생활을 시작하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문제점이 속속 터져 나왔다.
딸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애들이 다 큰 탓에 주위에 소문을 안내고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부모 노릇을 하고 있지만 ‘장정의 골프 대장정’ 때문에 부부관계에 이상이 생긴 건 가슴 아픈 사실이다.
더구나 장씨는 건강을 잃었다. 2년 전 가정불화에 스트레스가 쌓이며 귓속 달팽이관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장정은 티를 전혀 내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려 한다.
“아빠는 제게 친구이고 스승이고 아버지고 또 엄마예요. 얼마나 요리를 잘 하시는지 엄마보다 더 낫다니까요.”
“힘들 때는 언니들하고 수다 떨면서 스트레스 풀어요. 미국에서 7∼8시간은 비행기 대신 차(미니밴)로 이동해요. 큰 언니랑 번갈아 운전을 하며 재미난 얘기도 하고, 밥도 지어 먹고…, 이동을 즐기는 편이에요.”
특히 장정은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지난 2일 귀국인터뷰 때 지난 5월 아버지의 회갑 선물로 트로트 2백곡을 담은 MP3를 선물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골프로 인해 야기된 가정의 불화. 누구보다 장정의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장정은 이를 내색하지 않고 밝은 미소로 극복하고 있다.
박세리는 이웃사촌 선배. 자신이 골프를 하게 된 원인이었다. 자신이 ‘제2의 박세리’로 불리기도 했고, 같은 곳에서 함께 자란 두 명이 머나먼 미국 땅에서 함께 투어생활을 하니 정상적이라면 가장 친해야할 사이다. 하지만 예상 외로 둘의 관계는 소원하다. 서로 잘 알기는 하지만 결코 마음을 열고 만나는 사이는 아니다. ‘박세리와 친분이 두텁다’는 언론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이는 1년 후배 김주연과도 마찬가지다. 2002년 방콕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함께 단체전 은메달을 따내기도 했지만 사적으로 따로 만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박세리와 마찬가지로 만나면 인사하는 게 전부다.
이들 세 명은 모두 미LPGA 메이저대회 우승자로 장정의 브리티시여자오픈 제패 후 ‘충청 골프파워 3인방’으로 묘사됐다. 하지만 박세리와 김주연이 둘도 없는 선후배 사이인 반면 장정은 둘과 거리가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뭐 개인적인 성격차도 있겠지만 아버지들 영향이 크다. 한국 골프 대디들의 세계는 주니어시절부터 복잡하게 얽혀있다. 제3자가 들으면 사소한 문제일 수 있지만 성적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절대경쟁 속에 아버지들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자존심 대결을 벌인다. 신경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몇 년간 한 장소에 있으면서 서로 자리를 피하며 얼굴을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공교롭게도 장석중씨는 자신보다 연하인 박준철씨(박세리 부친), 김용진씨(김주연 부친)와 친하지 않다. 반면 박준철씨와 김용진씨는 친형제 같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원인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김주연이 US여자오픈 우승 후 가장 먼저 “세리 언니 고맙다”고 말한 반면 장정은 기자들이 물어야 박세리의 이름을 말하곤 한다. 김주연이 우승했을 때 자기 일처럼 언론에 많은 얘기를 토해냈던 박세리 집은 이번 장정 우승 때 걸려온 수많은 전화에 “좋은 일”이라고 원론적인 말만 하면서 말을 아꼈다.
친해야할 상대와 친하지 못한 장정은 나머지 선수들과는 특유의 명랑한 성격을 바탕으로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죽고 못사는 ‘절대친분’을 유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올 초 여자월드컵(국가대항 단체전)에 함께 출전했던 송보배(19·슈페리어) 정도가 친분이 두터운 상대다. 장정이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을 확정지었을 때 아직 미LPGA 멤버가 아닌 송보배 혼자 그린 위로 나가 장정에게 샴페인 세례를 퍼붓고, 이날 저녁 장정이 유일하게 송보배와 둘이 저녁식사를 하며 우승을 자축했다는 얘기는 ‘외로운 장정’을 연상시킨다.
‘스폰서도 없고, 실력은 뛰어나지만 지지리 우승 운이 없고, 돈도 넉넉지 않고, 가족들은 고생하고, 주변에 사람은 많지 않고….’
장정의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은 이 같은 고민을 단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청량제가 된 듯하다. 장정을 중심으로 가족이 뭉치고, 스폰서 논의가 진행중이며, 우승상금 28만달러(약 3억원)도 챙겼다. 이제부터 장정의 진정한 미소가 발산되기를 기대한다.
김성수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