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잇단 졸전으로 중도퇴진한 본프레레 감독(사진)뿐 아니라 축구협 기술위원회도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 ||
이회택 위원장은 쿠엘류 감독이 떠나고 난 뒤 후임으로 UAE 프로팀의 메추 감독을 영입하겠다고 미리 선언한 난 뒤 협상에 나섰다가 영입에 실패하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협상의 기본인 밀고 당기기는 어디로 가고 서툰 협상력으로 언론의 질타만 받았다. 이러자 감독 후보군에도 들어있지 않던 본프레레 감독을 급하게 대표팀 감독으로 뽑았고 1년2개월 뒤 무참히 칼을 빼 본프레레를 ‘잘랐다’. 이제 본프레레 감독을 떠나보내고 난 뒤에는 주위의 비웃음 정도는 우습다는 듯 ‘철밥통’ 기술위원회의 아성을 세우려 하고 있다. 한국축구를 살리라고 만든 기술위원회가 한국 축구의 걸림돌이란 비난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본프레레는 불행했다
본프레레 감독은 감독으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고집이 센 성격도 그렇고 차가운 인상도 한몫했다. 선수들도 감독의 지도력에 의구심을 나타낼 정도였으니 감독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틀린 주장도 아니었다. 하지만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되고 난 뒤 그래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기술위원회에 대한 지적은 차츰 수그러들고 있다. 축구팬들은 기술위의 책임있는 태도를 원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기술위는 묵묵부답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됐다고 이번 사태가 끝난 것은 아니다. 본프레레 감독이
2002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한테는 이용수 세종대 교수를 선두로 한 기술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했기 때문에 월드컵 4강의 영광이 있었다. 히딩크 감독도 처음에는 한국적인 문화에 낯설어 해 한국인 코칭스태프와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기술위원회와의 원만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문제를 극복했다.
하지만 본프레레 감독은 불행히도 기술위원회로부터 충분한 배려를 받지 못했다. 축구협회의 한 관계자는 “기술위원회가 본프레레 감독과 제대로 된 만남을 몇 번이나 가졌는지 묻고 싶다. 여론이 좋지 않으니까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듯 본프레레 감독을 버렸다”고 기술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기술위원회 안에서도 이번 경질 과정에서 밥그릇 찾기가 한창이었다”고 털어놨다. 본프레레 감독은 기술위로부터 외면받은 철저한 ‘왕따’였다고 말하는 그는 본프레레 감독을 측은히 여겼다.
▲ 지난 8월17일 월드컵 예선 사우디전에서 한국팀이 졸전 끝에 0-1으로 패했다. 이 경기를 끝으로 본프레레 감독은 지휘봉을 놓았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본프레레 감독의 경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언론에는 ‘기술위 내부에서 본프레레 감독 경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강신우 기술위 부위원장은 “본프레레 감독에게 좀 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지만 결국 기술위원회는 만장일치로 본프레레 감독의 경질을 결정했다.
대표팀 관계자 A씨는 “본프레레가 경질되면 기술위원회는 자연스럽게 전원 퇴진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있었다. 이럴 경우 기술국장을 맡고 있는 강신우 부위원장은 기술국장직도 함께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술국장직은 상근직으로 축구협회에서 월급을 받는 직책이다. 기술위원회에서 물러난 인사가 기술국장직을 맡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위원회는 여론의 질타를 무시하는 나름의 합의책을 도출했다. 바로 본프레레 감독을 경질하면서 자신들의 자리를 지킨 것이다. 언론과 팬들의 따가운 시선을 ‘한여름의 소나기’ 정도로 여긴 셈이다.
본프레레 후임으로 어느 감독이 온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기술위원회의 무책임과 역할 무시가 계속된다면 ‘제2의 본프레레’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기술위 내부에서 개혁이 있어야 하지만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은 축구협회에서도 잘 알고 있다.
A씨는 “기술위가 갑자기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랬다면 본프레레 경질을 앞두고 밥그릇 찾기에 몰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의리로 한국축구 이끄나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의리파로 통한다.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후배들에게 술을 사거나 용돈을 줘 젊은 시절 많은 돈을 모으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화통한 씀씀이로 유명하다. 자연히 따르는 후배들이 많고 지금도 축구계에서는 ‘이회택은 정말 남자’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위원장은 이전에 “감독으로 있을 때 구단으로부터 상금을 몇천만원 받은 적이 있는데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후배들 술 사주고 용돈 주니까 일주일 만에 반이 사라지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 이회택 기술위원장 | ||
언론 마녀사냥도 문제
본프레레 감독은 기자들에게 적대적이었다. 히딩크 감독이 농담을 적절하게 구사하며 언론을 마음대로 주물렀다면 본프레레 감독은 처음부터 언론을 무서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프리카와 중동팀의 감독에서 경질될 때마다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본프레레 감독은 언론에서도 무시당했다.
시간을 되돌려 8월17일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전이었던 사우디전의 결과를 두고 말들이 많다. 만약 박지성 설기현까지 불러들여 2-1로 이겼으면 본프레레 감독에 대한 경질 얘기는 쏙 들어갔을 것이란 말이다.
모 신문의 B기자는 “솔직히 본프레레 감독이 사우디에 패하길 바란 언론사가 많았다. 본프레레 감독이 이겼다면 더 이상 본프레레 경질을 주장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B기자는 “마치 마녀사냥하듯 특정 언론은 본프레레 감독을 미워하는 수준으로까지 논의를 발전시켰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신문의 C기자는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되고 난 뒤 당연히 기술위원회의 무책임에 대한 지적이 이어져야 했지만 몇몇 언론은 이를 철저히 모른 체했다”고 비난했다. 축구협회를 대변하듯 “이제는 한국축구를 위해 새롭게 나가야 할 때”라고 상황 정리를 유도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변현명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