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호 | ||
겉으로 드러난 성적도 초특급이지만 투구 내용까지 알차다. 선발투수로 나선 7게임 중 유일하게 패전을 기록한 워싱턴(5이닝 3실점) 경기를 제외하곤 모두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실점 이하 투구)를 기록할 정도로 안정적인 피칭을 하고 있다.
더욱이 규정이닝을 채우지는 못했어도 8월29일 현재 피안타율(0.178), 9이닝당 볼넷수(1.30개), 이닝당 평균투구수(14.19) 등은 현재 메이저리그 최다승 투수인 크리스 카펜터(17승, 방어율 2.29, 피안타율 0.215, 9이닝당 볼넷수 1.86개, 이닝당 평균투구수 13.99)와 방어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로저 클레멘스(11승, 방어율 1.56, 피안타율 0.187, 9이닝당 볼넷수 2.37, 이닝당 평균투구수 14.91) 등과 비교해 보아도 전혀 손색없는 초특급 피칭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메이저리그 특급 투수를 비교하는데 자주 이용되는 잣대인 WHIP(실책을 제외하고 투수의 책임으로 이닝당 타자를 진루시킨 횟수) 수치는 0.77로 현역 최고 투수인 페드로 마르티네스(0.89, 메이저리그 전체 1위)보다도 좋다.
이는 뛰어난 제구력에 마이너리그에서 익힌 컷패스트볼과 스플리터라는 신종 무기를 장착한 덕분이다. 기존 직구와 체인지업만으로 승부하던 투구 패턴에서 벗어나 다양한 구종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을 수 있게 된 것.
엑스포츠 송재우 해설위원은 “서재응이 구속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나서 완전히 다른 선수로 탈바꿈했다. 새로 익힌 구질의 구위가 아직 제 궤도에 오르지 않았지만 뛰어난 제구력과 대담해진 투구패턴에 상대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뛰어난 투구가 가능할 것이라 예상했다.
이에 반해 4년 만에 10승 고지에 오른 박찬호(11승6패)의 경우는 롤러코스트 투구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우선 방어율이 너무 나쁘다. 올 시즌 현재까지 5.91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10승을 올린 투수 중엔 꼴찌일 뿐만 아니라 규정이닝을 채운 메이저리그 모든 투수 가운데서도 최하위권이다. 11승을 기록한 것이 신기할 정도로 팀 타선의 지원을 든든히 받았다.
투구 내용 또한 좋은 편이 못된다. 피안타율(0.300)과 9이닝당 볼넷수(4.37)가 현저히 높아 투구수(이닝당 평균 18.37)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5회도 버티기 전에 한계 투구수인 1백 개에 가까운 투구를 할 수밖에 없기에 안정적인 선발투수의 잣대라 할 수 있는 퀄리티스타트는 고사하고 5회를 넘기기도 버거워 보인다. 실제로 올 시즌 25번의 선발 출장 게임 중 6이닝 이상 투구를 기록한 게임은 단 9경기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4년 만에 10승을 달성하며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서도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LA 다저스에서 뛰며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성적(18승10패, 방어율 3.27, 피안타율 0.214, 이닝당 평균투구수 16.37개)과 비교해 볼 때 아직 턱없이 모자란 구위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샌디에이고 이적 이후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이고 있어 남은 시즌에 대한 전망까지 어둡게 만들고 있다. 박찬호는 샌디에이고 이적 후 5게임 동안 단 한 번의 퀄리티스타트 없이 모두 6회 이전에 강판당했다. 지난 25일 휴스턴과의 경기에서도 5회까지 75개의 투구수만을 기록하며 호투하고 있었지만 바로 강판당한 것은 6회 이후에 급격히 무너지는 최근 페이스가 고려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4년 만에 전체 시즌을 소화하려다 보니 무리가 오는 듯하다”며 체력안배가 중요한 시기임을 지적하기도 했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남은 시즌 동안 기복 없는 투구를 보여줘야만 내년 시즌 선발자리를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병현의 사정도 박찬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전성기 때의 구위를 회복하며 선발로서의 변신은 성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성적(3승10패, 방어율 5.12)이 말해 주듯 믿음을 주는 선발이 되기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폭투왕’이란 오명까지 부른 제구력 난조는 시급히 바꿔야 할 숙제다.
볼넷과 사구(死球)의 남발 때문에 잘 던지다가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 9이닝당 볼넷수(4.72)는 박찬호보다도 더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투구시 예전 구속을 올리기 위해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구원 투수가 선발로 전환할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인데 김병현의 경우 이 점을 고치지 않고는 특급 투수의 반열에 오르기 힘들다는 것이 전체적인 의견이다.
이제 정규 시즌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3인방이 계속 선발로 등판한다는 가정아래 이들에게 남아있는 게임 수는 대략 7~8경기. 이들의 운명이 남은 경기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들 3인방에게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최혁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