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재응은 최근 ‘아트피칭’을 선보이며 승수를 쌓고 있다. 국민일보 | ||
똑바로 던져서 스트라이크를 만들기도 힘든데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 왼쪽으로 휘어나가는 슬라이더, 가다가 뚝 떨어지는 포크볼, 패스트볼처럼 보이지만 구속이 20km/h쯤 떨어지는 체인지업, 그리고 나비가 너울대는 모습의 너클볼 등등 투수들이 손가락으로 만들어내는 구질의 종류만도 열손가락이 다 필요할 정도로 다양하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투수들 역시 다양한 구질을 저마다 구사하고 있다. 현재 선발 투수로 뛰고 있는 박찬호(32·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서재응(28·뉴욕 메츠) 김병현(26·콜로라도 로키스)은 각각 다른 스타일만큼이나 구질 역시 판이하게 다르다.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생존하기 위해 새로운 구질을 개발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구질의 위력만 놓고 보면 박찬호가 단연 돋보였지만, 서재응의 세기의 피칭도 예술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김병현은 독특한 투구폼에서 나오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박찬호가 빅리그 스카우트들의 눈에 띈 이유는 97마일(156km/h)을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빅리그에서는 유망주 투수들을 분류할 때 90마일 이상은 A급, 85~90마일은 B급, 85마일 이하는 C급으로 매긴다. 그러나 95마일 이상을 던지면 특A로 따로 분류해 최고 점수를 주며 관리한다.
박찬호는 91년 고교 대표로 LA에서 열린 굿윌 게임에서 미국 무대에 첫선을 보였고, 93년 버팔로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다시 한번 진가를 과시한 결과 LA 다저스와 계약을 맺고 국내 선수들의 미국 진출의 물꼬를 텄다.
기본적으로 박찬호는 강속구, 커브, 그리고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한국에서 던졌던 슬라이더는 미국에 가면서 코치들의 권유로 버렸다. 팔꿈치에 무리가 많이 간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세분하면 박찬호의 강속구는 포심 패스트볼과 투심 패스트볼, 커브는 파워커브인 슬러브와 낙차 큰 슬로 커브로 나뉘므로 실제로 구사하는 구질은 다섯 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도 박찬호는 포심과 두 가지 커브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0km/h에 육박하는 무시무시한 강속구에, 한때 내셔널리그 랭킹 3위에 들 정도로 인정받던 커브볼의 위력은 대단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가 제구하기 가장 어렵다고 보통 이야기하는데, 박찬호는 토미 라소다 전 다저스 감독에게 익힌 이 구질을 결정구로 만들어 승승장구했었다.
최근 박찬호는 포심의 위력이 떨어지면서 투심 패스트볼을 많이 구사하고 있다. 시속89~91마일(143~146km/h)이 주종인 박찬호의 투심은 구속은 포심보다 떨어지지만 공의 움직임이 심하다.
아쉬운 점은 박찬호가 체인지업을 완전히 익히지 못했다는 점이다. 투수들은 제구력과 구속 변화로 타자들과 승부한다. 그런데 체인지업은 강속구와 똑같은 동작으로 던지지만 구속이 훨씬 떨어지는 차이 때문에 타자들이 번번이 골탕을 먹는 구질이다.
체인지업 하면 서재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 투수들 중에 가장 뛰어난 제구력을 지닌 서재응의 주무기가 바로 체인지업이다. 체인지업은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변화가 심하게 떨어지는데 스피드는 120km/h 내외다.
▲ 콜로라도 로키스의 김병현도 구속과 제구력을 회복하면서 점차 선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스포츠투데이 | ||
그러나 선발 투수는 아무리 뛰어난 구질이라도 두 가지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서재응 역시 지난해까지 빅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르락내리락한 가장 큰 이유가 패스트볼와 체인지업의 단 두 가지 단조로운 구질 때문에 효과적인 피칭이 쉽지 않던 때문이었다.
올해 마이너리그에서 3개월을 보내면서 서재응은 ‘스플리터’와 ‘커터’라는 두 가지 구질을 새로 장착하면서 최근 1점대 방어율의 무시무시한 투수로 변신했다. 과거에는 체인지업만 주의하던 타자들이 네 가지 구질을 걱정해야 하니 당연히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서재응의 가장 큰 무기는 제구력이다. 서재응의 9이닝당 볼넷은 1.52개로 규정 이닝을 채웠다면 리그 2위에 오를 정도로 칼날 제구력을 과시하고 있다.
강속구가 타고나는 것만큼 제구력 역시 마찬가지다. 예리한 제구력에 4가지 다양한 구질까지 갖추게 된 서재응은 마이너리그에서의 고통을 곱씹으며 자신감까지 몸에 배 본격적인 활약이 기대된다.
언더핸드에 가까운 투구폼으로 미국 진출 직후부터 돌풍을 일으켰던 김병현이 구사하는 구질은 기본적으로 강속구와 슬라이더, 그리고 커브볼이다.
미국 진출 초기에는 92~93마일의 패스트볼을 던졌는데, 언더스로가 그런 스피드를 낸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또한 슬라이더가 정통파 투수의 슬라이더와는 달리 치솟아 오르는 경향을 보여 타자들이 크게 골탕을 먹었었다. 패스트볼 역시 ‘업슛’이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떠오르는 느낌을 줄 정도다.
선발로 전업하면서 김병현은 구질 자체는 변화가 없어진 대신 완급조절이 최근 많이 좋아졌다. 구원 투수는 짧은 승부를 하므로 강한 공만을 던져도 되지만, 긴 승부를 해야 하는 선발은 다르다. 체력 안배와 승부처에서의 집중력, 그리고 쉬어갈 때는 쉬는 법도 배워야 한다. 최근 직구 최고시속이 90마일(145km/h)까지 올라왔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부상에서 회복되면서 근력을 되찾았고 투구 밸런스도 전성기 때와 유사할 정도로 좋아졌다.
결과적으로 김병현은 구질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구속과 제구력의 회복이 관건이었는데,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이 선발로 자리 잡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스포츠조선 야구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