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주는 이번 베를린대회에서 마라톤 인생의 ‘마침표’를 제대로 찍고 싶다고 밝혔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국민 마라토너 ‘봉달이’ 이봉주(35·삼성전자)가 13개월 만에 마라톤 풀코스에 다시 도전한다. 지난해 8월30일 아테네올림픽 이후 처음이다. ‘아직도 은퇴 안했느냐’는 일부 시선들이 부담과 섭섭함으로 다가오지만 그는 또 다른 기록 달성을 위해 스피드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69년 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옹이 사연 많은 월계관을 썼던 바로 그 장소에서 당시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다는 이봉주는 사람들의 관심 유무와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다.
베를린으로 출국 전 충남 보령에서 가진 이봉주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보령에서의 마지막 날, 훈련을 마친 이봉주의 얼굴은 활짝 피어 있었다. 현재 컨디션이 좋은 편은 아닌데도 남은 시간 독일에서 현지 적응 훈련을 통해 부족한 컨디션을 보충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아테네올림픽 이후 스피드를 끌어올리기 위해 트랙에만 전념하고 있었어요. 마라톤 하다가 트랙 경기 뛴다는 게 좀 ‘거시기’했지만 그래도 훈련을 잘 마친 덕분에 베를린에 도전할 생각을 갖게 됐죠. 베를린대회가 세계 신기록이 나온 코스라 기대가 큰 부분도 있어요.”
이봉주는 스피드를 보완하기 위해 그동안 트랙과 하프마라톤에 출전하면서 스피드 강화 훈련에 전념했다. 일본에서 열린 5천미터와 1만미터 레이스에선 자신의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등 좋은 성과를 얻었다.
“마라톤만 해선 스피드를 올릴 방법이 없었어요. 그래서 감독님 권유에 따라 트랙 경기에 출전하기로 한 거예요. 트랙은 거리가 짧긴 하지만 파워를 필요로 하는 경기잖아요. 좋은 성적을 내긴 했는데 글쎄요, 이런 훈련이 베를린대회에서 얼마만큼 효과를 발휘할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 걱정도 되네요.”
트랙 경기에 출전한 것은 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일본에서 대회가 열렸고 국내 매스컴의 시선이 쏠리지 않아 부담 없이 대회에 나갔는데 자신의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등 뜻밖의 효과를 얻었다며 기대를 부풀렸다.
얼굴이 더 말라 보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에다 순진한 표정 등은 변함이 없었지만 강도 높은 훈련 탓인지 검게 그을린 얼굴이 한층 수척해 보이기까지 했다. 국민 마라토너로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던 이봉주였음에도 항상 뭔가 부족하거나 아쉬워 보였던 부분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올림픽 때마다 그는 잊을 수 없는 사연을 갖고 있다.
“정말 그러네요. 첫 출전했던 애틀랜타올림픽부터 아테네까지 매 대회마다 일이 생겼으니까요. 넘어지거나 부상당하거나 연습량 부족으로 시합을 망치거나, 하여튼 지독히 운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불운의 연속이 날 더 강하게 만든 것 같아요. 날 더 자극하고 더 채찍질하고. 솔직히 이젠 마라톤 인생에 점을 찍고 싶거든요.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져 자꾸 ‘쉼표’만 찍게 되더라구요.”
이봉주는 올림픽에서 금메달만 획득한다면 마라톤 인생에 확실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애틀란타올림픽에서 은메달 획득으로 진하게 아쉬움을 남긴 금메달은 체력적인 부담을 안고 있는 지금의 이봉주한테 여전히 풀어야만 하는 ‘숙제’로 남아 있다.
“시드니올림픽 때가 가장 큰 회한으로 남아요. 준비도 잘했고 당일 컨디션도 최고였거든요. 메달 따서 결혼식도 성대하게 치르고 싶었구요. 그런데 하필이면 다른 선수의 발에 걸려 넘어질 게 뭡니까. 가끔 자다가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잠이 안 와요.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죠. 좋은 기회였는데, 또 다시 그런 기회가 오리란 보장도 없는데, 정말 안타깝고 아쉬움이 많아요.”
지난해 치른 아테네올림픽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이봉주는 그때 대회를 준비하면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은퇴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자 마음 깊은 곳에서 오기가 발동했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의 인생이 흐지부지하게 끝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냥 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테네 이후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어요. 주위에선 ‘이봉주의 시대는 끝났다’느니 ‘한물갔다’느니 상처 주는 말들을 쏟아냈었죠. 은퇴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어요. 술로 아픔을 잊으려 했고 여기저기 떠돌며 방황 아닌 방황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 내가 택한 건 마라톤이었죠. 신기한 게 목표가 생기더라구요. 기록이나 메달 획득 등 이전에 세워둔 목표의 반복이지만 갈등 끝에 내가 선택한 길은 이전과는 색깔이 다른 목표였어요.”
▲ 이봉주 선수 | ||
“나이를 먹긴 먹었나봐요. 젊었을 때랑 회복 속도가 많이 달라요. 대회 앞두고 마무리 훈련 할 때 컨디션이 팍팍 올라와줘야 하는데 그게 너무 늦어요. 그러다보니까 자꾸 짜증이 나요. 옛날엔 술 먹고 훈련해도 금세 회복이 됐거든요. 운동선수한테 나이 먹는 건 ‘쥐약’이나 마찬가지예요.”
삼성전자의 오인환 감독도 이봉주의 체력 회복이 더딘 부분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실과 바늘처럼 항상 함께 움직였던 사제지간이라 어느 누구보다도 이봉주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는 ‘그래도’ 이봉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험난한 훈련 과정을 거치며 버텨온 것이라고 믿었다.
이봉주는 42.195 km의 풀코스를 34번 도전해서 33번 완주를 했다. 무려 1천3백92.435km를 달린 셈이다. 33번 완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레이스가 어느 대회인지를 물었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것도 기억에 남지만 그해 후쿠오카대회에서 우승한 게 더 감동적이었어요. 악조건의 날씨에서 정말 힘들게 테이프를 끊었거든요. 아, 처음으로 완주를 포기했던 2001년 에드먼턴대회도 잊을 수가 없네요. 오버 트레이닝을 하는 바람에 경기 당일 컨디션이 완전 다운이 돼 버렸어요. 시합 도중에 도저히 완주가 힘들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중간에 포기하면 치명적인 기록이 남기 때문에 포기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봉주는 그때 레이스를 포기하며 마라톤을 완전히 접을 생각을 했다고 한다. 뛰는 것에 대해 한계를 느끼는 절절한 상황들은 달리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그 한계를 느꼈고 운동을 끝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2005년 지금도 여전히 달리고 있다.
“이전에 황영조 감독이 달리는 차에 뛰어 들어가고 싶을 만큼 마라톤이 고통스러웠다고 말한 적이 있잖아요. 정말 그래요. 내 동료 중 한 선수는 선수촌에 있을 때 얼마나 힘들었으면 돌로 자기 다리를 자해할 정도였으니까요. 힘들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아마 은퇴하기 전까지 계속 반복될 것 같아요.”
‘성실맨’ 이봉주한테도 인생의 해프닝은 있기 마련이었다. 너무 착하고 반듯하게만 보인다며 기자가 딴지를 걸자 오래전 대전에서 있었던 경찰서 사건을 끄집어낸다.
“친구들과 술집에서 술 마시다가 싸움이 벌어졌어요. 그때 난 정말로 그 싸움을 말린 죄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상대방에서 날 걸고 넘어지더라구요. 그 길로 경찰서에 잡혀 갔는데 방송사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카메라들이 들이닥쳤어요. 한 친구는 ‘쫄티’를 얼굴까지 끌어올려 가리는 등 ‘편법’을 썼는데 난 정말 그들 앞에 설 자신이 없었어요. 화장실로 도망가선 나오지 않았죠. 근데 재미있는 건 형사들이 날 조사하면서 그 와중에 사인을 요청했다는 거죠. 사건은 사건이고 사인은 해달라는 상황이었는데 조서받으면서 사인해주는 그 안의 상황들이 마치 꿈만 같더라구요.”
그 당시 이봉주는 처음으로 ‘공인’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턴 절대로 술집에서 싸움이 나도 나서지 않는 게 철칙 아닌 철칙이 되었다. 경찰서 조서보단 방송 카메라가 더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이제 이봉주의 마라톤은 마무리 단계에 와 있어요. 베를린대회를 마친 후 다음 올림픽에 도전할지 아니면 그만둘지 결정할 겁니다. 그 후엔 외국 가서 꼭 공부를 하고 싶어요. 경험만으로 지도자 생활을 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요. ‘마침표’를 제대로 찍고 싶은데 이번엔 하늘에서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