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최경환 조진호 박철순 백차승 류제국 봉중근 권윤민. | ||
그전에도 국내 야구를 호령하던 최동원이나 박철순, 선동열 등이 빅리그에 진출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MLB 팀들도 이들 걸출한 한국 투수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첫 행운의 주인공은 박찬호였다.
사실 박찬호의 성공을 점친 이들은 거의 없었고, 당시까지 미국에서도 한국 선수들의 영입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러나 박찬호가 무서운 강속구를 뿌려대며 2년여 만에 빅리그에서도 알아주는 투수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MLB 팀들의 국내 유망주들에 대한 시선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94년 이후 빅리그 스카우트들의 국내를 향한 발길이 잦아지면서 수많은 국내 유망주들이 ‘MLB의 꿈’을 쫓아 태평양을 건넜다.
그렇지만 박찬호와 김병현, 서재응 등 걸출한 코리안 빅리거들을 탄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베이스볼 아메리칸드림을 쫓던 선수들 중에는 실패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메이저리그의 벽은 그만큼 높고도 험난하기 때문이다.
80년대 초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에서 더블A팀까지 승격했던 박철순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빅리그 도전장을 던진 선수는 사실 박찬호가 아닌 외야수 최경환이었다.
국내 유망주들을 대거 스카우트했던 보스턴 산하 극동 담당 스카우트 레이 포인트빈트씨의 첫 작품이 최경환이었는데, 당시 포인트빈트가 애너하임 에인절스 소속이었던 관계로 최경환은 애너하임의 마이너 팀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었다.
그러나 보스턴 마이너리그 팀을 거친 최경환은 더블A 이상에 오르지 못하고 멕시칸리그까지 가서 꿈을 키우다가 결국은 국내로 유턴하고 말았다.
94년에 최경환, 박찬호에 이어 미국팀과 계약을 맺은 선수가 또 한 명 있었는데 바로 최창양이다. 최창양도 필라델피아 더블A까지 오르는 데 그쳤다가 돌아왔으나 국내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97년부터 2001년까지는 국내 유망주들의 미국 진출이 꾸준히 이어졌다. 97년에 빅리그 팀에 스카우트된 선수들은 김선우, 김재영(이상 투수 보스턴) 봉중근(투수 애틀랜타) 서재응(투수) 서재환(외야수 이상 뉴욕 메츠) 등이 있다. 그 중에 서재응은 1백35만달러, 김선우가 1백25만달러, 봉중근은 1백20만달러 등의 계약금을 받으며 뽑혀갔다.
가장 성공한 선수들이 바로 97년에 도미한 그룹이다. 5명 중에 3명이나 빅리그 마운드를 밟았고, 그 가운데 서재응과 김선우는 이제 완전히 자리를 굳히고 있으며, 봉중근도 어깨 수술 후 재활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내년 시즌을 기약하고 있다.
그러나 서재응의 형 서재환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귀국해 현재 고등학교 코치로 일하고 있으며, 김재영도 빅리그의 꿈을 접은 지 오래다.
98년에도 네 명의 유망주들이 태평양을 건넜다. 정석(LA 다저스) 조진호(보스턴) 백차승(시애틀) 김병일(피츠버그) 등인데 이들 네 명 모두가 투수였다. 그러나 정석은 신체검사에서 어깨 이상이 발견돼 도중하차했고, 조진호는 빅리그 마운드에 잠시 섰다가 국내로 돌아왔지만 SK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병역비리에 연루돼 실형까지 받는 불운에 시달렸다.
또한 백차승은 계속 유망주 소리를 듣고 있지만 아직까지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고, 김병일도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99년에는 다섯 명의 선수가 빅리그에 스카우트됐다. 이들 중에는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은 김병현이 있고, 또한 한국 타자로는 처음으로 빅리그에 정착한 최희섭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보스턴이 데려갔던 송승준은 몬트리올을 거쳐 현재 샌프란시스코 트리플A에서 빅리그의 꿈을 키워가고 있지만 ‘2%’가 부족해 분루를 삼키고 있는 상태다.
역시 보스턴이 데려갔던 외야수 오철희와, 최희섭과 함께 시카고 커브스에 소속됐던 권윤민은 빅리그가 요원해졌다. 부상당한 권윤민은 최근 아예 귀국해 사실상 야구를 접었다.
2000년에는 4명, 2001년에는 6명의 한국 선수들이 빅리그 팀과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들 10명 중에 빅리그 야구장을 잠깐이라도 밟아본 선수는 단 두 명뿐이다. 2000년 보스턴이 3백35만달러의 거액을 들여 데려갔던 이상훈은 제대로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가운데 결국 국내로 돌아와 LG를 거쳐 SK에서 잠시 뛰다가 은퇴하고 로커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해 시애틀에서 데려간 추신수는 투수에서 외야수로 전업, 유망주로 각광받아왔지만 올해 처음 잠시 빅리그에 머문 것이 전부다. 트리플A까지는 승승장구 진출했지만 역시 빅리그의 높은 벽에 막혀 아직 최고의 무대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그외에 정영진(내야수, 샌디에이고) 차태인, 안병학, 유병목(투수, 이상 보스턴) 이승학, 김일엽(투수, 이상 필라델피아) 엄종수(포수, 애틀랜타) 류제국(투수, 시카고 커브스) 중에 아직까지 빅리그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선수는 류제국뿐이다. 그러나 4년째 더블A에도 오르지 못하고 유망주로만 남아 있어 MLB의 주전 투수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2002년 투수 정성기가 애틀랜타와 계약을 맺은 것을 끝으로 국내 유망주들의 미국 진출은 중단된 상태. 총 28명의 국내 최고 유망주들이 미국 야구에 도전했지만 1백만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고 제대로 성공한 선수는 박찬호와 김병현뿐이다. 서재응과 김선우가 이제야 성공시대를 여는 분위기지만 무려 8년 만의 일이다.
빅리그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하고, 성공의 가능성이 그만큼 희박하다는 것을 이제는 국내 유망주들과 그 부모들이 잘 인식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고교 최고 유망주인 한기주와 유원상이 각각 기아, 한화와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양키스를 비롯해 많은 빅리그 팀들이 눈독을 들였지만 국내 잔류를 선택한 것은 앞으로의 추세를 반영한다.
우선 이들이 받은 몸값이 미국행의 모험을 충분히 상쇄한다. 한기주는 10억, 유원상은 7억2천만원을 받게 된다.
빅리그에 진출하는 데 몇 년이 걸릴지, 그리고 확실히 진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모험을 하기보다는 일단 국내에서 경험을 쌓고 돈도 버는 것이 훨씬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일본 선수들의 경우처럼 국내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20대 중후반에 MLB를 노크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스포츠조선 야구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