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호 선수 | ||
LA 다저스는 박찬호가 FA로 떠나기 1년 전에 대런 드라이포트라는 투수와 5년간 5천5백만달러의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드라이포트는 올해 1천1백40만달러의 연봉을 받아 다저스 선수들 중 최고 연봉자였다. 그렇지만 올해 드라이포트는 단 한 번도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 오프 시즌에 무릎과 팔꿈치 등 세 번의 수술을 받았고, 계약 마지막 해인 올해는 아예 유니폼도 입어보지 못했다. 지난 4년간 그의 성적은 9승15패다.
올해 8백만달러를 받는 다저스 마무리 투수 에릭 가니에는 14게임에서 13과1/3이닝을 던져 8세이브를 기록하곤 부상으로 쓰러졌다. 역시 다저스가 지난해 겨울에 5천만달러 이상을 투자해 데려온 외야수 J.D. 드루는 시즌의 절반도 안 되는 72게임을 뛰며 15홈런 38타점만 기록하고는 계속 벤치만 지켰다. 투수 사상 최초로 총 계약 액수가 1억달러를 넘겼던 케빈 브라운의 올해 연봉은 1천5백70만달러가 넘었다. 그러나 브라운의 올시즌 성적은 4승7패에 방어율이 6.50이다.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간판 타자였던 프랭크 토마스는 올해 8백만달러를 받았는데, 계속 부상에 시달리며 34게임에서 2할1푼9리, 12홈런, 26타점이 성적의 전부로 지난해까지 합쳐야 겨우 1백게임 정도를 뛰었다. 필라델피아에서 1천3백만달러 이상을 받은 거포 짐 토미도 올해 2할7리에 7홈런 30타점을 기록하고는 모습을 감췄다.
이에 비해 박찬호의 올 시즌 성적은 12승8패에 방어율 5.74다. 방어율이 높은 것은 분명하지만 성적 자체는 어디다 내놔도 창피할 수준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박찬호는 늘 미국 현지 언론에서 ‘먹튀’의 대명사처럼 온갖 비난과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실 박찬호보다 1년 먼저 FA 대박을 터뜨렸다가 심각한 ‘먹튀’로 욕을 먹었던 선수는 왼손 투수인 마이크 햄턴이었다. 휴스턴에서 20승 시즌을 보내고 뉴욕 메츠를 거친 햄턴은 지난 2000년 콜로라도 로키스와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8년간 1억2천1백만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액수도 빅리그 사상 투수 최고액이었지만 가장 부상 위험이 높은 선발 투수에게 8년 계약을 안겨줬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햄턴은 그러나 ‘투수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로키스 홈구장 쿠어스필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진을 거듭했다. 결국 2년간 로키스 유니폼을 입고 21승18패에 6점대에 가까운 저조한 방어율을 보인 끝에 햄턴은 2003년 애틀랜타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트레이드 조건 중 로키스가 남은 계약 기간 봉급액 중에 상당 부분을 부담하기로 해 구단이 휘청거릴 만큼 최악의 FA계약으로 꼽혔다.
그런데 햄턴은 애틀랜타 이적 후 다시 좋은 모습을 되찾아 2003년에 14승9패, 작년에는 13승9패를 거두는 등 팀의 NL 동부조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 (왼쪽부터) 대런 드라이포트, 에릭 가니에, 짐 토미, 케빈 브라운 | ||
박찬호의 올 시즌 성적(12승8패에 방어율 5.74)은 방어율이 좀 높기는 하지만 먹튀의 대명사가 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 현지 언론에서 줄곧 냉소와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경기 내용면에서 아직 인상적인 재기를 확인시키지 못했다는 점과 평소 언론과의 매끈하지 못한 관계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올시즌 사실 박찬호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물론 막강 보스턴 레드삭스나 뉴욕 양키스전 등 시즌 초반 강호들과의 경기에서 뛰어난 경기를 펼쳐 부활의 조짐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타선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둔 경기들도 많았고, 샌디에이고 이적 후에는 막판 부진으로 포스트 시즌 로스터에서 제외되는 수모도 당했다. 텍사스로부터도 실은 골치 덩어리를 밀어낸다는 식으로 트레이드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박찬호는 현지 언론에 자신의 의사나 몸 상태를 정확히 전달하지 않고 ‘본인만 열심히 해서 정상을 다시 찾으면 된다’는 식으로 행동한 것이 결과가 따라주지 못하면서 불협화음이 나왔다.
한 베테랑 기자는 텍사스를 15년 가까이 취재하면서 선수에게 별 이유없이 인터뷰를 거절당한 것은 박찬호가 처음이라고 불만을 털어놨고, LA 시절부터 알던 한 현지 칼럼니스트는 박찬호의 입장을 이해하니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가 거절당한 일도 있었다.
사실 다저스의 드라이포트 같은 선수가 먹튀로는 박찬호보다 훨씬 심한 케이스지만 언론으로부터 몰매를 맞지 않는 것은 평소 솔직하고 담백하게 대인 관계를 유지한 것이 큰 이유다. 또한 박찬호는 계속 몸 컨디션이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먹튀 선수들처럼 팔꿈치나 어깨, 혹은 무릎 수술 등 겉으로 드러나는 부상이 없었다는 점 역시 악재로 작용했다.
먹튀든 아니든 박찬호는 내년에도 1천5백만달러 상당의 연봉이 보장돼 있다.
스포츠조선 야구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