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 계약 사상 두 번째로 많은 거액을 챙기며 기아에 잔류한 장성호는 “진정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태어나겠다”고 다짐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올 FA(자유계약선수)시장에서 ‘최대어’로 꼽혔던 그는 지난 7일 기아와 4년에 42억원(계약금 18억원, 연봉 총액 20억원, 옵션 4억원)에 계약하면서 FA 계약 역대 두 번째 대박(최고는 삼성의 심정수 60억원)을 터트린 장본인이 됐다. FA시장이 열리면서 ‘기아 잔류보다는 무조건 다른 팀으로 옮기겠다’고 밝혔던 탓에 유독 그의 계약과 관련된 미스터리가 많다. 이젠 대기업 CEO가 부럽지 않은 장성호와의 ‘취중토크’를 통해 그 비밀을 풀어본다.
자동차 광주 KBS 방송국 앞에 회색 아우디 A6(축구선수 박지성이 영국에서 타는 차종과 같다)가 스르륵 멈춰 선다. 장성호였다. 차를 바꿨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외제차를 몰고 나타난 장성호의 모습이 ‘FA 대박’과 맞물려 훨씬 근사하게 보였다. 기아와 계약맺기 전 타고 다니던 오피러스를 팔고 새로 구입했단다. 차를 팔면서 기아와는 더 이상 인연을 맺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꿈에 그리던 외제차를 장만한 건데 기아와 재계약하면서 다시 기아 차를 사야하는 입장이 됐다며 웃는다.
42억원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이 원소속팀과의 우선 협상 마감일에 기아와 계약한 이유였다. 장성호는 삼성, 롯데 등에서 영입 대상 영순위로 올려놓았던 선수라 FA시장에 나왔다면 42억원보다 더 많은 돈을 챙길 수도 있었다.
“만약 기아가 30억원 정도만 제시했더라면 마음을 돌렸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42억원 얘기를 꺼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 액수는 구단의 최고 대우다. 또한 기아팬들의 하소연이 내 발목을 잡았다. 기아 홈페이지와 내 개인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서 갈등이 많이 생겼다. 재미있는 건 롯데팬들이 들어와서 ‘3만 관중의 응원이 그립지 않냐’며 롯데팀 홍보를 하더라. 삼성팬 중 어느 분은 와도 반겨줄 사람 없으니까 오지 말라고 했다.”
아! 삼성 장성호는 언론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매스컴에서 ‘최대어다’ ‘나이가 어리다’면서 팍팍 띄워준 게 몸값 상승의 요인이 되었다는 이유에서다.
팀을 선택할 수 있는 선수라면 여러 가지 조건을 가지고 따질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 장성호한테 중요했던 키워드는 ‘우승’이다. 우승할 수 있는 팀에 가서 신명나는 야구를 펼치고 싶은 속마음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FA가 되면서 내 나름대로의 시나리오를 짜놓았다. 거기서 가장 가능성 있는 팀이 삼성이었다. 또 기사를 보니까 삼성에선 42억원보다는 더 많이 줄 것 같았다. 더 많이 받을 자신도 있었고. 하지만 기아 단장님과 감독님, 코칭스태프 모두가 말리는 선택은 하고 싶지 않았다. (계약서에) 도장 찍고 나니까 속이 후련하더라.”
▲ 8년 동안 3할 타율을 유지한 장성호는 기복 없는 플레이가 장점이다. | ||
“삼성이 FA 선수들을 데려가면서 선수들 몸값에 거품이 들어갔다. 단장님도 나랑 계약하면서 그 거품을 따라야 할지, 아님 무시하고 원칙대로 가야할지 고민하다가 거품을 따르기로 했다고 말씀하시더라. 솔직히 고백하건대 42억원이란 액수는 내 실력보다 많이 쳐준 거다. 인정한다. 그래서 어깨가 무겁다. 지금까지 해 오던 것보다 더 잘해야 하니까. 그래도 믿는 게 있다면 8년 동안 3할 타율을 기록했다. 큰 부상만 없다면 내년에도 그 기록은 유지될 것이다.”
아버지 충암고등학교 졸업 전에 장성호는 단국대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만류했다. 워낙 힘들게 뒷바라지를 한 탓인지 당시 해태에서 제시한 계약금 1억원이 장성호의 대학 진학을 막는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은 그 선택이 스물여덟살의 나이에 42억원이란 ‘대박’을 터트린 결과로 나타났다.
“난 어렸을 때부터 무조건 돈을 벌고 싶었다. ‘돈’ ‘돈’ 하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돈이 인생의 최고라고 생각했고, 악착같이 모아서 여생을 편히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버지가 프로행을 권유했을 때 처음엔 조금 서운했지만 금세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어차피 야구선수로 성공할 거라면 대학 졸업장은 큰 의미가 없었다.”
5백만원 2001년 장성호가 아내 진선미씨와 결혼할 당시 그의 연봉은 1억5천만원이었다. 그러나 신혼생활은 3천9백만원짜리 임대주택과 5백만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의 행방은? 아버지의 사업과 관계가 깊다. 월급을 모두 서울의 집으로 보냈던 장성호는 어느날 자동차를 구입하려고 아버지와 돈 문제를 상의하다가 계약금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보낸 월급이 모두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된 데다 앞으로 갚아야 하는 빚까지 떠안았다는 기막힌 현실에 직면했다.
그후론 직접 월급을 관리했고 재테크에 밝은 아내 덕분에 지금은 빚을 모두 갚은 데다 4층짜리 빌라와 1월에 입주하는 아파트, 자동차 등이 재산으로 등록돼 있다. 어쩌면 2000년 연봉 1억원 시대를 맞이한 이후 지난해 3억5천만원까지 급상승한 연봉 액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다 지금은 42억도 챙기게 됐으니….
아내와 삥땅 술을 ‘독약’이라고 표현하는 사람과 소주를 마시기란 힘겹기만 하다. 왜? 기자가 분발해야 하니까. 그래서 장성호가 대답하는 사이 혼자서 소주 한 병을 비웠다. 그랬더니 주량이 얼마냐고 묻는다. 홀짝홀짝 잘도 마신다면서.
인터뷰를 잠시 접고 ‘클리닝 타임’을 적용해서 그가 끔찍이 사랑한다는 아내 얘기를 물었다. 그는 아내 하면 생각나는 단어가 ‘삥땅’이라고 말해 한참을 웃었다. 그 사연을 이렇게 풀어낸다.
“아내가 절약 정신이 투철하다. 용돈을 정해 놓고 오버하면 잘 내놓지 않는다. 돈이 없는데 후배들이 술 사달라고 하면 참 난감하다. 그럴 때마다 야구방망이 사야 한다고 돈 뜯어내고 상조회비 내야 한다고 손 내밀고 누구 상당했다고 돈 받아내고, 하여튼 ‘삥땅’을 많이 쳤다. 학교 다닐 때 아버지한테 ‘삥땅’ 친 버릇이 없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젠 이것도 못할 것 같다. 기사가 나가면 ‘땡’ 아닌가.”
“아침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그분’이 오시더라. 맞은편에 앉으셨는데 서로 쳐다보기만 하곤 정작 말 한마디 건네 보지 못했다. 사실 동갑내기인 데다 먼저 아는 척하기가 뭐해서 눈치만 본 셈이다. 근데 ‘그분’ 정말 잘 생겼더라. 체격도 나랑 비슷하고. 하하.”
싸움실력 어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야구 선수 중 누가 가장 싸움을 잘 할 것 같나’라는 내용으로 글을 올려놓자, 한 네티즌이 ‘신윤호와 장성호’라고 댓글을 달았다. 장성호의 생각이 궁금했다.
“난 별로 싸움 안 좋아하는데… 중학교 때 싸워보곤 싸움을 하지 않았다. 아, 부부싸움은 좀 했다. (신)윤호 형, 워낙 특이해서 싸움 잘할 것 같다. 그런데 난 개인적으로 롯데의 이대호가 ‘짱’이라고 생각한다. 우람한 덩치로 분위기를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외모로만 따지면 (노)장진이 형이고.”
장성호는 기아와 재계약하기 전까지 갈등은 있었지만 자신의 선택을 단 1%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계약서에 사인한 날 술을 ‘쎄게’ 마시고 집에 가다가 PC방에 들러 기아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단다. 팬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 메시지에 장성호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들의 순수한 사랑이 올곧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클리닝 타임’ 이후 ‘독약’ 같던 술이 ‘보약’처럼 느껴진다는 장성호가 이런 말로 가슴을 울린다.
“아마도 한번 더 FA 계약을 할 겁니다. 그때는 죽으나 사나 기아에 ‘올인’합니다. 기아에서 시작했으니 기아에서 마무리해야죠. 이제야 제가 진정 프랜차이즈 스타로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소주 2병을 끝으로 ‘FA 대박’과 작별을 고하고 광주를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