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장면.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눈에 띄는 변화는 이번 대국을 계기로 불고 있는 ‘바둑붐’이다. 지난 9일 온라인 서점 알라딘은 3월 1일부터 8일까지의 바둑 관련 서적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배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교보문고 역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결정된 1월 28일부터 지난 3월 9일까지의 바둑 서적 판매량이 전년 대비 7% 증가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 9단이 작성한 책이 인기다. 알라딘의 3월 첫째 주 바둑부분 베스트셀러 1~5위의 5개 서적 중 이 9단이 쓴 책이 4개다.
바둑용품 판매량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은 최근 한 달간 바둑용품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전년 동기대비 530% 증가했다고 밝혔다. 롯데마트와 옥션의 최근 한 달간 바둑용품 판매량 역시 전년 대비 각각 104%, 42% 증가했다. 옥션 관계자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관심을 끌면서 상품판매로 이어진 것 같다”며 “특히 20대의 바둑용품 구입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옥션에서 20대의 바둑용품 구매량은 전년대비 81% 증가했다. 이는 바둑의 주요 연령층으로 알려진 50대(66%), 60대 이상(42%)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증가율이다. 30대는 30%, 40대는 14% 늘었다.
온라인상에서도 알파고의 인기가 뜨겁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도대체 알파고가 어떤 학교냐며 엄마들이 알아보니 명문 바둑 특목고”라며 “알파고의 CPU가 1200개이니 전교생은 1200명이고 이세돌 혼자 바둑 천재 1200명을 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농담도 나왔다.
주식시장에서는 이른바 ‘알파고 테마주’가 유행이다. 제2국이 끝난 10일 로봇 관련 상장업체의 주가는 연이틀 급등했다. 로봇 전문 업체 디에스티로봇은 10일 695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는 대국 시작 전인 8일 5500원에서 약 26% 상승한 수치다.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에이디칩스 역시 같은 기간 1975원에서 2460원으로 24%가량 상승했다. 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 삼익THK는 약 16%, 역시 지능형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 중인 우리기술은 약 10%의 주가가 상승했다. 이외에도 로봇 및 반도체 업체들인 유진로봇(7.5%), 슈프리마(17%), 한화테크윈(4%)의 주가 역시 일제히 상승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도 증가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세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세돌 9단의 패배는 인공지능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반도체 구조가 인간처럼 발전하면서 반도체 업체 수혜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주식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구글은 인공지능 기술을 로봇, 무인자동차, 스마트홈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하고 있다. 특히 무인자동차는 운전자 없이 스스로 목표지점까지 도착하는 자동차로 인공지능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안전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남아있다. 실제로 지난 2월 14일 구글 본사에서 시험주행 중인 무인자동차가 시내버스와 접촉사고를 내는 등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이번 대국을 통해 무인자동차의 신뢰도까지 높아졌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마이클 리트먼 미국 브라운 대학교 소속 과학자는 미국 IT매체 <테크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대국을 통해 구글 무인자동차에 적용되는 알파고의 기술을 볼 수 있다”며 “무인자동차에 사용될 인공지능은 바둑처럼 계속해서 작은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한 가지 일에 특화된 기계가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걸 봤다”며 “결국 이세돌 9단을 이긴 프로그램이 나온 건 필연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세철 연구원 역시 “기술 진화로 사용자의 개입 없이 미리 프로그램된 목적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는 스마트 차량(드론, 무인자동차 등) 등이 확산될 것”이라며 “이는 국내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스마트폰에 이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글에서 개발 중인 무인자동차 구글카. 사진출처=구글홈페이지
무인자동차뿐 아니라 타 분야에서의 인공지능도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인공지능은 드론, 유전체 분석 등 다양한 곳에서 사용된다. 제프 딘 구글 브레인팀 수석연구원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구글이 만드는 제품 중 최대 50%에 머신러닝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 머신러닝은 앞으로 여러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 기술을 확대해 헬스케어, 로보틱스 등의 분야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머신러닝이란 인공지능의 일부로 경험을 통해 향상되는 컴퓨터 알고리즘이다. 일일이 작동법을 입력하는 대신 예를 통해 프로그램을 훈련시키는 방식이다.
게다가 인공지능은 예술분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구글이 개발한 ‘딥드림’은 인공지능으로 그림을 그린다. 딥드림은 추상적 이미지를 만드는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지난 2월 26일 딥드림이 그린 추상화 29점은 총 9만 7000달러(약 1억 1600만 원)에 판매됐다. 미국 예일대학교는 작곡을 하는 인공지능 ‘쿨리타’를 개발했다. 쿨리타는 저장된 음악 소스를 바탕으로 음계를 조합해 음악을 만든다. 이외에도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환자의 암을 진단할 수 있고 일본의 헨나호텔은 로봇이 체크인과 짐 운반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그러나 한편에선 직업 안정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지난 2월 19일부터 22일까지 이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진행해 결과를 미디어 이슈 ‘진격하는 로봇 : 인간의 일자리를 얼마나 위협할까’를 통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86.6%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자리에 대한 잠재적 영향에 대한 질문에는 ‘일자리 수는 감소하지만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50.1%, ‘일자리 수 대폭 감소로 사회적 폭동이 우려된다’가 24.3%로 전체 응답자 중 74.4%가 일자리 수 감소를 예상했다. 올해 세계경제포럼(WEF)에 제출된 보고서 ‘일자리의 미래’에서도 2020년까지 인공지능의 영향으로 기존 일자리 710만 개가 없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BBC는 최근 ‘로봇이 당신의 직업을 대체할까?’라는 제목의 사이트를 오픈했다. 이 사이트에서 직업을 입력하면 20년 안에 사라질 가능성을 수치로 계산한다. BBC는 옥스퍼드 대학의 조사를 인용해 영국 내 직업 중 35%는 20년 안에 없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온라인상에서도 인공지능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온라인 유저는 바둑 전문 사이트 ‘타이젬’에서 “해설은 알파고가 둔 수를 악수나 패착이라고 평가했지만 결국에는 알파고가 이겼다”라며 “과거 이창호 9단이 떠오를 때 이상한 수라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세계 1인자가 됐다. 지금 알파고가 둔 수를 비난하는 게 얼마 후에는 뼈저리게 반성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입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슈미트 회장은 “이번 대국 결과와 상관없이 이 자리의 승자는 인류”라며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이 발전할 때마다 인간 한 명 한 명이 똑똑해지고 유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인공지능 vs 인간 ‘다음엔 스타크래프트로 붙자’ 구글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간에게 축복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전기자동차 테슬라모터스의 앨런 머스크 CEO는 “인공지능은 핵무기보다 무서운 재앙이 될 수 있다”고 했고,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도 “100년 이내에 로봇의 지능은 인간을 넘어 인간의 문명을 끝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에게 승리한 사례에 대중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은 지난 1967년에 처음 있었다. 당시 체스 프로그램인 인공지능 맥핵이 아마추어 체스 선수인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맞대결을 벌였고 맥핵의 승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프로 체스 선수들과의 대결에서는 맥핵의 연달아 패했다. 이후 1994년 앨버타대학교 조나단 쉐퍼 교수가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 시누크가 세계 체스 챔피언 마리온 틴슬리와 대결해 세 번째 도전 만에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당시 마리온 틴슬리가 암 투병 중이어서 완벽한 승리로 인정받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7년에는 IBM이 인공지능 로봇 딥블루를 업그레이드한 디퍼블루를 개발해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 체스 대전을 가졌다. 딥블루의 패를 디퍼블루가 승리로 바꿨다. 2011년에도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 왓슨이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 출연해 퀴즈왕을 차지했고 상금 7만 7147달러를 거머쥐었다.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대결이 체스 무대에서 바둑 무대로 바뀐 건 올해 1월이다. 현재 이세돌 9단과 바둑 대전을 벌이고 있는 구글딥마인드의 인종지능 로봇 ‘알파고’가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후이와 대결해 5전승을 거뒀다. 알파고 제작자들이 인간과의 다음 대결 종목을 스타크래프트로 지목해 온라인게임에서도 인공지능 로봇이 승리할지에 대한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유시혁 기자 evernuri@ilyo.co.kr |
알파고, 아시아 어딘가에 살고 있다? 알파고의 개발사인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알파고에 특급보안을 유지하고 있어 알파고가 언제 어디에서 탄생했는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우선 딥마인드는 영국 런던에 사옥을 두고 있어 알파고가 런던에서 탄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딥마인드 관계자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밝혀 현재 알파고의 소재지가 불분명한 상태다. 지난 2014년 구글이 딥마인드 테크놀로지(Deepmind Technology)를 인수하면서 사명을 구글 딥마인드로 변경했고, 딥마인드 테크놀로지가 2010년에 설립된 점을 미뤄 알파고가 2010년에서 2014년 사이에 개발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딥마인드 관계자가 “구글에 인수되기 이전에 개발됐고, 이후 업그레이드 프로젝트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힌 이유다. 알파고는 유럽의 프로바둑 기사인 판후이 2단과의 대결이 치러진 지난해 10월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알파고는 5승 전승했으며, 딥마인드는 자사의 다른 바둑 프로그램과 500회 대국을 벌여 499회 승리했다고 밝혔다. 알파고의 개발 총괄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데이비드 실버 박사가 담당했으며, 알파고 대신해 바둑 돌을 놓는 아자 황 연구원은 알파고의 핵심 기능인 몬테카를로 트리 검색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