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2년 5월26일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김남일은 지단을 꽁꽁 묶어 놓으며 맹활약을 했다. | ||
그러나 ‘축구공은 둥글다’는 말로 대표되는 월드컵의 역사는 항상 이변의 연속이었다. 지난 2002월드컵 개막전에서 아프리카의 세네갈이 98프랑스월드컵 우승팀인 프랑스를 침몰시킨 사건은 축구의 의외성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세네갈은 2006 독일월드컵에 명함을 내밀지도 못했다. 세네갈은 전문가들이 G조 최약체로 지목한 토고에게 패하면서 4년 뒤를 기약해야할 형편으로 사정이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토고는 무조건 물리칠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아프리카팀은 월드컵에서 매번 돌풍을 일으키는 팀이 나왔고 토고가 그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한국 축구팬들은 이제부터 토고의 21세 공격수 엠마누엘 아데바요(AS 모나코)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데바요는 아프리카 지역예선에서 10골을 터트린 골잡이로 190cm의 장신이다. 15세에 고향 토고를 떠나 안정환이 소속된 프랑스의 FC메스 유소년팀에 입단한 아데바요는 메스를 프랑스 유소년 축구리그 우승으로 이끈 뒤 프리미어리그 사우스햄프턴과 이적협상을 벌이다가 프랑스리그인 AS모나코로 이적했다.
아직은 낯선 이름이지만 토고란 나라와 아데바요란 선수가 독일월드컵 뒤 어떤 의미로 재탄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약체라고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토고의 스테판 케시 감독도 “한국에 대해 아는 바가 없지만 남은 기간 동안 한국 전력 파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아프리카의 새로운 검은 돌풍의 주역은 토고”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조 추첨 뒤부터는 정보력이 대표팀 전력의 큰 축을 담당하기 때문에 협회 차원에서 토고에 대한 정보 수집이 필요하다.
터키와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본선에 합류한 스위스는 한국한테 1954년 스위스월드컵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월드컵에 처녀 출전한 한국은 터키 0-7, 헝가리에 0-9로 대패하며 세계축구계에 첫선을 보였다. 50년이 흐른 지난 6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21세 이하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한국은 스위스에게 2-1로 패해 스위스와는 악연을 이어갔다. 박주영이 버티고 있었지만 스위스는 장신과 힘을 앞세운 축구로 한국을 물리쳤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스위스는 청소년을 제외한 성인대표팀의 경기는 한 차례도 치러보지 않았다. 유럽에서 약체라고 하지만 아직 자웅을 겨뤄본 적이 없어 쉽게 어느 쪽의 승리를 예단하기는 힘들다. 한국이 스위스를 꺾는다면 본선 1승 추가뿐 아니라 악연의 사슬도 끊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스위스가 제프 블래터 현 FIFA 회장의 고향인 점을 감안한다면 독일에서 월드컵이 열리는데도 불구하고 스위스가 홈 이점을 누릴 것은 자명해 보여 한국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 지난 12월10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조 추첨행사에서 ‘독일축구의 전설’ 로타어 마테우스가 4그룹 추첨자로 나섰다. 한국은 해볼만한 상대들과 한 조에 편성돼 16강행에 청신호가 켜졌다. 로이터/뉴시스 | ||
하지만 지단도 한국의 김남일을 만난다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002년 5월26일 한국은 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와 수원월드컵 경기장에서 평가전을 치른다. 비록 이날 프랑스에 2-3으로 패했지만 한국은 박지성 설기현의 골로 당시 세계 최강이란 프랑스를 상대로 선전했다. 한국이 프랑스를 제물로 4강까지 내달렸다면 프랑스는 지네딘 지단의 부상이란 악재를 이날 경기에서 겪고 말았다. ‘진공청소기’ 김남일이 지단을 태클로 쓸어버렸기 때문이다. 부상을 입은 지단이 빠진 프랑스는 예선탈락으로 전 대회 우승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현재 독일월드컵에서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
레이몽 도메네크 프랑스 축구대표팀 감독은 독일월드컵 조 추첨이 끝나고 “한국에 대해 안좋은 기억이 있다”며 2002월드컵 직전에 발생한 지단의 부상을 언급했다. 그만큼 지단의 공백은 프랑스에게는 악재였다. 김남일은 당시 천문학적 연봉을 받는 지단이 부상당했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내 연봉에서 까라”고 호기있게 받아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단이 김남일을 다시 만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설기현은 프랑스 최고의 공격수 티에리 앙리와 인연을 지니고 있다. 지난 1월30일 설기현의 소속팀 울버햄프턴과 아스널의 FA컵 32강전. 앙리는 이날 경기서 2-0으로 앞서던 중 사이드라인으로 빠지는 볼을 잡기 위해 뛰어가다 설기현과 부딪칠 뻔했다.
하지만 설기현이 살짝 피하자 양팔을 닭날개 모양으로 접은 뒤 닭날개짓을 흉내냈다. 닭은 영국에서 ‘겁쟁이’로 통한다. 즉 앙리는 설기현이 용감하지 않다고 비아냥거린 의미에서 제스처를 취한 것이었다. 설기현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앙리의 왕팬이었던 설기현의 아내는 앙리에게 실망했다며 더 이상 팬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박지성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함께 뛰는 수비수 미카엘 실베스트리는 2006독일월드컵에서 프랑스 대표팀의 주전으로 손꼽히는 선수다. 2002월드컵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한 경기도 뛰지 못했던 실베스트리는 공격에 힘을 싣고 있는 박지성을 후방에서 도와주고 있지만 월드컵에서는 적으로 만나야 하는 사이.
아직까지 박지성한테는 부드러운 남자인 실베스트리가 아스날의 융베리를 머리로 받아 퇴장을 당하는 등 거친 면도 가지고 있어 박지성이 무조건 믿을 만한 상황도 아닌 듯하다.
변현명 스포츠투데이 축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