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12일 이란과 평가전에서의 이호. 큰 경기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점이 그의 강점이다. | ||
# 원래는 야구선수 될 뻔?
이호는 어린시절 공부는 잘 하지 못했지만 운동 실력이 뛰어났다. 그런 이호의 모습을 본 풍납초등학교의 체육 선생님은 그에게 “운동할 생각이 있으면 야구부가 있는 학교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고민 끝에 이호는 “야구보다 축구가 낫다”며 유혹을 뿌리쳤다. 94년 미국 월드컵 스페인 전에서 서정원(현 오스트리아 SV리트)의 극적인 동점골이 흔들리던 마음을 확실하게 잡았던 것이다. 서정원이 아니었다면 이호가 야구장에서 배트를 휘둘렀을 수도 있었을 법했다.
축구를 좋아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할 마음은 없었다. 풍납초등학교 5학년 시절, 선생님이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해서 손을 들고 운동장에 나갔던 게 결정적이었다. 사실 선생님이 학생들을 운동장에 모이게 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인근 성내초등학교 축구부 코치가 재능 있는 유망주를 발굴하기 위해 풍납초등학교 선생님에게 ‘공 좀 찬다’는 학생들을 모이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것. 내막을 몰랐던 이호는 그저 학생들 사이에서 신나게 재주를 부렸고, 코치는 유난히 눈에 띄는 이호를 콕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이호는 “축구할 생각 없냐”는 코치의 제안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이유가 재밌다. “전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학원가는 게 너무 싫었는데 코치님이 축구를 하자고 해서 다른 생각하고 말고도 없이 받아들였죠.”
느닷없이 축구를 하겠다는 이호의 통보에 부모님은 말렸다. 이호는 전학을 가기도 전에 방과 후면 성내초등학교로 달려가 공을 찼다. 어머니가 몇 번이고 이호를 쫓아가 만류했으나 끝내 허사였다. 학원에 가기 싫었던 이호는 이때부터 매일 운동장에 출근하는 정식 축구 선수가 됐다.
▲ 이호선수 | ||
중동중을 졸업하고 중동고에 진학한 이호는 곧바로 브라질 유학길에 올라 1년 6개월간 기술을 익히고 돌아왔다.
그러나 유학에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적응기를 끝내고 3학년 때부터 경기를 출전했는데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았다. 자신 있게 플레이를 펼쳐도 감독과 코치가 계속 그를 나무라는 것이었다.
당시 중동고 감독을 맡고 있었던 유재영 현 용인축구센터 코치는 “유학을 다녀온 뒤 플레이 스타일이 바뀐 것 같아서 자세히 보니 플레이 자체는 화려하지만 무리한 동작이 많아 야단을 많이 쳤다”면서 “워낙 센스가 뛰어난 아이라서 그런지 시간이 지나자 브라질에서 배운 기술이 팀플레이와 잘 융화됐다”고 덧붙였다.
중동고 코치로서 이호를 지도한 허기태 현 중동고 감독도 “브라질에 다녀온 후 패스 등 플레이를 발끝과 발바닥으로만 하려고 해서 주의를 준 적이 많았다. 팀 전술이나 경기 템포, 상대 위치에 따라 강약 조절을 하라고 자주 주문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은사들의 가르침 때문이었을까. 최근 이호의 플레이는 유연한 기술과 파워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나타난다.
지난해 20세 이하 UAE세계 청소년 선수권 16강전. 청소년 대표팀은 연장 접전 끝에 숙적 일본에 1-2로 역전패했다. 일본의 골든골이 터지는 순간, 이호의 눈에서 굵은 액체가 흘러 내렸다.
“잘 우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 때는 계속 눈물이 나더라고요. 일본보다는 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원조 ‘진공청소기’ 김남일을 제치고 ‘신 진공청소기’ 이호가 아드보카트호의 새 주전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그 결과가 얼마 남지 않았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