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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8년 프로로 데뷔해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는 구옥희는 국내 여자 골프계의 ‘대모’다. 마음을 비운 듯한 환한 미소가 그 비결일까.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해 2년 만에 일본 투어에서 우승(통산 44승, 국내20승, 미국1승, 일본23승)을 차지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던 그는 우승 후 다시 연속 컷오프 당하는 쓰라림을 맛봤지만 ‘자식 뻘, 조카 뻘’되는 후배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을 너무나 재밌어 한다. 여전히 은퇴 시기를 알 수 없다는, 정말 만나고 싶었던 구옥희 프로의 베일을 하나 둘씩 벗겨 본다.
# 캐디에서 프로까지
구옥희 프로가 캐디 출신이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레슨 프로로 활동하는 친구 오빠를 따라 골프장에 갔다가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일이 결국 골프를 직접 배우게 된 동기가 됐다고 한다.
“78년도에 프로 데뷔를 했어요. 한국 나이로 스물두 살이었죠. 그땐 골프가 흔한 종목이 아니라 대접 받으면서 연습하고 주위의 도움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캐디를 안 했더라면 골프를 몰랐을 거예요. 사람들이 치는 걸 보니까 나도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들더라구요. 운동 신경이 좀 있는 편이었으니까.”
본격적으로 골프채를 잡은 건 75년이었다. 테니스를 하려다 골프로 방향 전환을 한 지 3년 만에 프로 입문을 하게 된 것이다. 프로테스트 통과를 너무 빨리 한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매일같이 밥 먹고 골프만 하는데 그것도 못하겠냐”면서 환하게 웃는다.
# 바다 건너 일본으로
구 프로는 82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은 한국보다 시합들이 많았고, 상금의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처음엔 곧장 미국으로 진출할 것도 생각했지만 가까운 일본이 훨씬 적응하기 수월할 것 같아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그때 같이 갔던 동기가 3명 더 있었어요. 의지가 많이 됐는데 그 친구들은 1~2년 만에 일본 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더라구요. 나 혼자 남았어요. 그런데 보이지 않는 민족차별이 엄청 심했어요. 골프장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경기위원이 일본 선수 편을 드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갤러리들도 한국 선수한테는 관대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미국으로 잠시 자리를 옮겼는데 일본에 비해 너무 편한 거예요. 한 마디로 ‘페어’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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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옥희 선수 | ||
# 30대에 찾아온 슬럼프
15년 전에 구 프로는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체력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투어 생활이 너무나 고달팠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계속해서 골프채를 잡는다는 게 도통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인생의 ‘은인’을 만났다. 바로 참선이었다.
“LA에 있는 큰 절에 다니면서 어떤 스님을 만났어요. 그분의 권유로 참선을 하게 됐는데 몸 안의 나쁜 기운이 싹 빠지고 새로운 것들이 마구 채워지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아, 이거구나’ 싶더라구요. 골프가 다시 재미있어졌죠. 그때가 내 골프 인생 중 최대의 위기였던 것 같아요.”
30여 년을 골프만 하고 살아온 사람. 30여 년간 한 호흡을 유지하며 필드에서 살아온 사람이 참선 얘기를 하면서 이런 내용을 풀어낸다.
“돌아보니까 골프를 하기 위해 많은 것들과 부딪히고 싸우면서 마치 내가 도를 닦은 느낌이 들어요. 힘들어도, 화나도, 안돼도, 모든 것들에 참으면서 견뎌내야 하거든요. 그래야 리듬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어요. 이게 도 닦는 거 아니겠어요?”
골프를 할 때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거의 없었다. 시간을 빼앗기는 게 싫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을 만나면 그가 해주는 것만큼 다시 갚아야 하고, 얘기를 하다보면 에너지가 소비돼 골프하는 데 지장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곰곰이 되짚어보면 오로지 골프만 알고 살아온 ‘불쌍한 인생’이지만 구 프로한테는 골프만 알고 살아서 ‘행복한 인생’이었다.
# 풀지 못한 숙제 ‘결혼’
구 프로는 여전히 미혼이다. 처음부터 결혼 얘기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실례되는 질문일 것 같아 어렵게 얘기를 꺼냈는데 의외로 주저함 없이 자신의 생각을 토해낸다.
“요즘도 결혼 여부를 물어보는 사람이 있네요. 독신주의자는 아니에요. 미국에서 생활할 때 결혼할 뻔했었는데 인연이 아니었는지 그냥 끝나버렸죠. 물론 프러포즈도 받은 적 있었어요. 그러나 그때는 골프에 집중하느라 남자한테 관심을 쏟을 만한 여유가 없었죠. 위안이 되는 건 주위에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또 결혼해서 헤어지는 사람들도 많고.”
구 프로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거 편하게 하면서 남자들과 친구 관계로만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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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배들 사이 ‘외로움’
구 프로의 존재는 한국 골프계에 독보적이다. 박세리, 강수연 등이 30대에 접어들었다며 나이 타령을 하고 있지만 구 프로 앞에선 명함도 못 내밀 처지다. 그러다보니 골프장에 가면 구 프로는 후배들의 깍듯한 대접을 받고 있으면서도 왠지 모를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몇 년 전에는 창피한 생각이 들어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자식뻘 되는 선수들, 조카뻘 되는 선수들과 라운딩을 하는 게 진짜 창피하더라구요. 그런 상황에서 컷오프라도 돼 봐요. 진짜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 든다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익숙해지더라구요. 주위에선 환갑 때까지 하라고 부추기던데요? 하하.”
구 프로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진 못했지만 앞으로 기회가 되면 자식같은 후배들을 키워서 훌륭한 골퍼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작은 골프연습장을 만들어 유망주들을 육성해 낸다면 현역 때 느끼지 못하는 남다른 보람이 생길 것 같다며 마음을 부풀렸다.
“언제 그만둘지 모르겠어요. 1년을 더 할지, 2년을 더 할지…. 추한 모습으로 마무리하진 않을 거예요. 감이 오지 않겠어요? 그만둬야 할 때 미련 없이 골프채를 놓을 수 있을 때 그때 다시 한 번 인터뷰해요. 구옥희의 골프 인생을 총정리하는 기회를 만들자구요.”
워낙 오랫동안 골프계에 몸 담고 있다보니 구 프로한테는 라운딩을 제의하는 지인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그 중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정치인들도 여럿 된다. 김종필 전 자민련총재도 그 중 한 명인데 워낙 골프 마니아로 소문이 나 ‘기회되면 한 번 모시겠다’는 인사를 전하며 라운딩을 미뤘다고 한다.
50세의 나이에 눈가의 주름조차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구 프로의 미소에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비범한 매력이 담겨 있다. 그가 2004년 KLPGA 명예의 전당 1호로 뽑혔다는 것이 더욱 남다른 의미를 전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