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근 코치는 이승엽의 성공을 기원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승엽이 요미우리 입단을 위해 출국하기 전날 인 18일 밤, 김성근 코치를 시내 모처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들 같은 제자를 떠나보내는 복잡한 심정은 단순히 스승이 아닌 부모나 다름 없었다.
이승엽은 요미우리행을 결정한 뒤 김성근 감독을 따로 만나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롯데와 재계약에 합의해 놓고 갑자기 뒤집어 버린 자신의 행동을 진심으로 사과한 것이다. 그러나 김 코치는 순간적인 섭섭함과 허탈한 감정은 있었지만 이승엽의 결정을 존중했다고 한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난 승엽이를 혼낸 적이 없다. 자기 진로는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다. 난 결정권이 없는 사람 아닌가. 어드바이스는 해줬다. 움직이기 전에 깊게 생각하고 손해나 득실을 따져보라고. 이승엽이란 이미지를 스스로 망가뜨리지 말라고 말해줬다.”
김 코치는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이승엽이 올 시즌 적응과 부대낌으로 또 다시 이전의 시련을 반복한다면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모험도 좋지만 가급적이면 안전한 방법을 택해 어느 해보다 중요한 올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길 바랐던 것이다.
지난 연말 롯데 선수단이 하와이에서 우승 뒤풀이를 벌일 때 김 코치와 이승엽은 와이키키해변에서 새벽 3시까지 대화를 나눴다. 그때 이승엽은 김 코치한테 “내년에도 잘 부탁드린다”고 얘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엽이 김 코치 곁을 떠나겠다고 밝혔을 때 그는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마음은 시렸지만 자신의 몫은 축하해주는 일 뿐이라고 위안 삼아야 했다.
김 코치는 지난해 이승엽의 전담 코치 자격으로 롯데팀에 합류한 뒤 남모를 고통 속에서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한국의 프로팀 감독으로 8백66승을 올린 대감독이 정식 코치가 아닌 선수의 개인 코디네이터로 눈칫밥을 먹어야 했던 상황들이 한동안 큰 시련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환갑이 넘은 내가 일본까지 와서 뭐 하는 짓인가 하고 비참할 때도 있었다. 일본 선수들은 날 시골에서 올라온 영감 취급을 했다. 걔네들 눈에는 내가 한국 프로야구 감독으로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전혀 와 닿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승엽이가 부진한 성적으로 헤맬 때 다른 코치들이 노골적으로 나한테 불만을 표시했었다. 속으로 들끓는 것을 꾹 참고, 승엽이한테 그런 소리가 들어가지 않게끔 선수와 코치들한테 승엽이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많이 배웠다. 정말 돈 주고도 못살 경험을 했다.”
“승엽이가 그 책들을 봤는지 안 봤는지는 모르지만 난 부모의 심정으로 아들이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길 바랐다. 지켜만 봐도 가슴이 아플 만큼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승엽이가 하루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면서.”
김 코치는 이승엽한테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었다. “넌 한국에서 일본으로 야구하러 왔고 난 일본에서 한국으로 야구하러 들어갔었다. 서로 살기 위해서라는 건 똑같다. 그러나 난 너처럼 중앙에 서 본 적이 없다. 난 항상 변방에 있었고 대한민국 야구 감독 중 가장 욕을 많이 얻어 먹은 사람이다. 넌 해명도 할 수 있고 책임 전가도 할 수 있었지만 난 나 혼자라 내가 모든 걸 책임져야 했다. 그러니까 지금 힘든 걸 힘들다고 생각지 말고 힘든 것도 즐겨라. 그럼 이길 수 있다.”
김 코치는 지난해 6월경 국내 모 프로팀으로부터 감독직을 제안 받았다. 일본 생활이 너무나 괴로웠던 시기라 순간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갈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얘기는 지금 처음 밝히는 거다. 아마 승엽이도 모를 것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감독직 제의를 받았다. 심히 고민스러웠다. 마음은 정말 가고 싶었다. 일본에서의 더부살이 인생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승엽이 때문에 갈 수 없었다.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 없는 거다. 자식은 부모를 떠나도 부모는 자식 혼자 놓고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코치는 인터뷰 내내 이승엽과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요미우리행을 섭섭해 하기보단 그곳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인생의 목표인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랐다.
지난해 11월 제주에서 벌어진 납회식 때 김 코치는 감격스런 장면들을 목격했다. 그동안 인사조차 제대로 받지 않던 어린 선수들이 한두 명씩 다가오다가 나중에는 30여 명 정도 술잔을 들고 찾아와선 “아리가토 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닌가.
지난 1년 동안 일본에서 고생했던 부분들이 한순간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한다. 보비 발렌타인 감독 밑에서 자신을 죽이고 적응하며 이승엽의 전담 코치로 살았던 부분들을, 그리고 그의 능력과 스타일을 그제야 선수들이 마음 열고 받아들인 것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받으려 했다가는 갈등이 생긴다. 승엽이와 롯데에서 보낸 시간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승엽이보단 내가 더 많은 인생 공부를 했다. 이젠 일본에서 야구 공부를 할 때가 됐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