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박준철씨가 지난 2000년 로렌스 첸(오른쪽)과의 교제를 강력하게 반대하자 박세리는 부진의 늪에 빠졌다. ‘그때 그 시절’인 2000년 한국여자오픈에서의 박세리. | ||
97년 미국으로 건너간 세리는 한동안 혼자서 모든 걸 감내해야 했다. 그때는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 한 명 없이 훈련 스케줄을 짜고 이동을 하고 숙소를 잡는 등의 모든 일들을 세리가 처리했다. 언어 소통의 어려움과 문화적인 충격을 느낄 겨를도 없이 ‘무대포’ 정신으로 미국 생활의 모든 것을 몸으로 부대꼈던 세리는 미국 생활 초기에 생각지도 못한 ‘적’을 만났다. 바로 외로움이다.
한번은 삼성측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선 세리가 향수병에 걸려 매일 매일 울면서 지낸다는 내용을 전했다. 그 얘기를 들은 세리 엄마는 당장 미국으로 달려갈 태세였다. 세리 언니인 유리도 가세해서 미국으로 들어간다고 난리였다. 난 큰소리를 치고 화를 내면서 가족들을 자제시켰다. 외로워한다고 가족들이 덥석 손을 내밀면 혼자서 힘든 시기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때 세리 옆에 있었던 사람이 로렌스 첸이다. 첸은 당시 레드베터에게 레슨을 받는 교육생이었고 레드베터 골프스쿨에서 훈련하던 세리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다. 아버지 외에는 남자, 아니 이성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세리는 향수병에 걸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장미꽃을 선물하며 다정다감하게 접근하는 첸을 물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한국에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난 설마 하는 심정으로 세리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세리는 정색을 하면서 오빠 동생 사이 외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안심시켰다. 98년 US오픈대회가 열리기 전에 미국으로 들어갔다가 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난 첸의 인사조차 받지 않았다. 아니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첸은 세리 주변에서 빙빙 돌았다. 내가 있기 때문에 가까이 오진 못했지만 항상 세리 주변을 맴돌며 관찰했다. 첸의 행동에 마음이 상한 난 당장 쫓아가서 끝장을 보고 싶었지만 세리의 만류로 간신히 참았다. 세리가 줄곧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걸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세리한테 첸의 존재가 이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세리도 처음엔 가벼운 오빠 동생 사이로 생각하다가 언론과 가족들이 난리를 치니까 반발 심리로 첸을 더 가까이하게 된 것이다.
가족들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오면 세리는 첸과 자주 만났다.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어려움이 있지만 세리도 첸을 좋아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난 다시 미국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끝장을 내겠다는 심정이었다. 난 세리한테 첸과 만나선 안 되는 이유들을 쭉 나열하며 이해를 시켰다. 서로 결혼 상대자로 적합지 않다는 게 가장 컸다. 첸은 장남이라 하루 빨리 결혼해야 하는 사람이고 세리는 30세가 넘어야 결혼이 가능한 상태고 무엇보다 결혼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걸 이루기 전에 다른 생각은 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에 강조를 거듭했다.
어떻게 보면 부모가 못할 짓을 한 거나 다름없었다. 결국 세리는 마지못해 첸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골프에 매달렸지만 성적이 좋게 나올 리 만무했다. 98년부터 줄곧 탄탄대로를 걷던 세리는 2000년에 우승컵을 단 한 차례도 거머쥐지 못했다. 이유가 있다면 첸과의 이별 때문이다.
그런데 세리와 완전히 헤어진 줄 알았던 첸이 어느날 또 다시 찾아왔다. 나한테 온갖 모진 말을 다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세리를 찾아오는 그 친구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세리가 부진의 늪에서 마구 헤매고 있는 상태라 무조건 첸을 내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첸과 세리를 앉혀 놓고 둘이서 자연스럽게 교제하라고 허락했다. 그때 내 말을 듣고 있던 세리의 눈빛을 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첸 때문인지는 몰라도 세리는 2001년부터 다시 우승컵을 품에 안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이후 세리가 먼저 첸을 정리했다. 자신의 갈 길을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부모가 편하게 만나라고 허락을 하니까 별로 재미(?)가 없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부모 눈에 들지 않는 남자친구라고 해서 무조건 반대만 하는 건 잘못된 액션이라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나중에 세리가 물었다. 왜 그렇게 첸과의 교제를 반대했느냐고. 난 이렇게 말한 걸로 기억된다. “애는 좋아. 너한테도 잘 해주고. 근데 단 하나, 중국 사람이라는 게 맘에 안 들어. 아빠는 섞이는 게 싫거든.”
요즘 이렇게 옛날 일을 생각하면 조금 아쉬운 게 있다. 내 딸한테 이성 친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쉬는 시간에 밥이라도 같이 먹으며 인생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남자 친구의 존재가 조금씩 절실해진다. 솔직히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세리를 겁내 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부담스런 존재인 것이다.
‘골프여왕’이 아닌 박세리란 여자를 편한 눈으로 봐주고 챙겨줄 만한 남자가 어디 없을까. 이젠 우승 이외의 또 다른 ‘숙제’가 돼 버렸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