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7월 후지쓰배에서 우승한 이세돌 9단. 이 9단은 총 6억4천만여원으로 2005년 프로바둑기사 중 가장 많은 상금을 벌어들였다. | ||
‘지존’ 이창호 9단이 5억2천만여원의 상금을 벌었고, 최철한 9단이 5억원을 벌었다. 박영훈(3억1천만여원), 조한승(1억2천6백여만원) 등도 억대가 넘는 상금을 챙겨 총 5명의 프로기사가 억대수입을 올렸다.
그렇다면 다른 프로기사들은 어떨까. 대부분의 바둑팬들은 프로로 입단만 하면 ‘출세가도’가 열리고 수입도 자연 따라온다고 알고 있지만 실상은 완전히 딴판이다. 바둑도 프로의 세계인 만큼 성적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아니 다른 스포츠처럼 연봉제도 없으므로 성적이 안 좋은 기사들의 수입은 더욱 비참하다. 나이 어린 후배들에게 상석을 빼앗긴 채 판당 10만원짜리 예선에서조차 패해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하는 흘러간 승부사의 뒷모습은 비정한 승부의 세계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화려한 빛에 가려진 예선전 프로기사들의 수입과 그들의 애환을 살짝 들여다 보았다.
프로기사들의 수입에 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프로기전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프로기사들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는 크게 국제대회와 국내대회로 나뉜다. 국제대회는 다시 삼성화재배, LG배, 농심신라면배 등 한국이 주최하는 국제대회와 후지쓰배, 춘란배, 응씨배 등 외국에서 주최하는 국제대회로 나뉜다.
한국이 주최하는 국제대회의 경우, 예선이 있어 프로기사라면 누구에게나 참가가 가능하지만 외국에서 주최하는 국제기전인 경우에는 주로 초청형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평범한 프로기사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작년 한해 외국에서 개최됐던 국제기전에 참가했던 기사는 이창호 유창혁 이세돌 최철한 박영훈 송태곤 김성룡 박지은 등 총 8명에 불과하다. 현재 프로기사가 2백8명이니 2백명의 기사는 비행기를 한번도 타지 못한 셈이다. 그 유명한 조훈현은 물론 잘나가는 신예기사인 박정상 이영구 윤준상 등의 이름도 보이지 않는다.
국내대회는 전 기사가 참여할 수 있는 본격기전, 참가자격에 제한되는 제한기전 등으로 나뉜다. 본격기전은 한국리그 전자랜드배 GS칼텍스배 왕위전 국수전 등 9개가 있고 제한기전은 젊은 신예기사들만 참가하는 신예기전, 여성들만의 여류기전, 만 45세 이상의 시니어기전, 9단만 참가하는 입신전, 6단 이상의 고단자전 등 다양한 기전이 있다.
어떻게 보면 아주 다양한 기전이 열리기 때문에 열심히만 대회에 참가하면 수입은 보장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고액연봉으로 구분되는 5천만원 이상을 버는 프로기사는 23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창호, 이세돌의 뒤를 이을 기대주로 불리는 윤준상이 23위로 턱걸이를 했는데 5천46만원을 벌었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프로기사가 근로자의 평균연봉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을 올린다는 결론이 나온다.
얼마전 인기리에 상영됐던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을 기억하시는지. 프로야구 초창기 삼미 슈퍼스타스의 패전처리용 투수였던 감사용 선수에 대한 영화였다. 바둑계에는 감사용 못지 않은 패전처리 전문 선수들이 존재한다.
1년 상금과 대국료 누적액이 5백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선수가 무려 70여 명으로 전체 프로기사의 약 30%에 달하는 비율이다.
작년 한해 가장 적은 대국료를 받은 사람은 누구일까. 단 한푼의 대국료조차 받지 못한 기사가 7명이나 되지만 이들은 피치못할 사정으로 대국에 참가하지 못했을 뿐이므로 이들을 제외하고 살펴보자.
참가자격이 있는 대회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적은 대국료를 받은 사람은 누구일까. ‘바둑계의 감사용’은 바로 Y3단이다.
Y3단의 2005년 대회참가현황의 뒤를 따라가보자.
▲1월 박카스배 천원전 1차예선 참가. 1회전 탈락. 대국료 16만원. 전자랜드배 현무부 예선 참가. 1회전 탈락 대국료 20만원. ▲2월 제6기 잭필드배 시니어기전 예선 참가. 1회전 탈락. 대국료 18만원. ▲3월 국수전 예선 참가. 1회전 탈락. 대국료 18만원. LG배 세계기왕전 예선 참가. 1회전 탈락. 대국료 35만원. ▲4월 왕위전 예선 참가. 1회전 부전승. 2회전 탈락. 대국료 40만원. 한국리그 예선 참가. 1회전 탈락. 대국료 22만원. ▲5월 기성전 예선 참가. 1회전 탈락. 대국료 10만원. ▲6월 농심신라면배 예선 참가. 1회전 탈락. 대국료 23만원. ▲7월 원익배 예선 참가 1회전 탈락. 대국료 12만원. ▲8월 삼성화재배 예선 참가 1회전 탈락. 대국료 20만원. ▲9월 대국없음. ▲10월 강원랜드배 예선 참가. 1회전 탈락. 대국료 20만원. ▲11월 GS칼텍스배 예선 참가. 1회전 탈락 대국료 23만원. ▲12월 바둑왕전 예선 참가. 1회전 탈락 대국료 14만원. 전자랜드배 예선 참가. 1회전 탈락 대국료 20만원.
결국 Y3단의 지난해 대국료 총액은 3백11만원. 이 중에 세금 3.3%와 기사회적립금 5% 총 8.3%를 공제한 2백85만1천8백70원이 Y3단의 지갑 속에 들어간 돈이다.
비록 Y3단의 경우는 극단적 예이긴 하지만 3백만원대의 수입을 기록한 기사가 무려 23명이나 되고, 4백만원대도 21명이고 보면 프로기사들 중에서도 생활보호대상자의 수가 50여 명이나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