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98년 박세리의 US오픈 우승은 온국민을 감동시킨 한편의 드라마였다. 사진은 2004년 국내 대회에 참가한 박세리와 부친 박준철씨. | ||
‘별들의 탄생신화’ 제5편에선 US오픈 우승 현장에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참으면서도 모든 라운드를 함께 한 아버지 박준철씨의 생생한 ‘리플레이’를 공개한다.
미LPGA 메이저대회인 LPGA챔피언십에서 데뷔 첫 해 우승을 차지했던 세리는 US오픈을 앞두고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첫 우승을 너무 거창하게 해놓는 바람에 다음 대회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시합 전날 난 세리를 앉혀놓고 이런 얘기를 했다.
“이미 우승을 했는데 뭘 그리 힘들게 생각해? 마음 비워. 우승보단 평상시랑 똑같이 하는 게 중요해. 무명선수로 아픔도 많았지만 이젠 좋은 대우 받으면서 할 수 있잖아. 절대 겁내지 마. 겁낼 것도 없는데 뭘 그래.”
1라운드에서 세리는 팻 허스트, 레슬리 스팰딩 등과 공동 3위를 달렸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부턴 단독 선두로 내달리더니 3라운드에서는 1타차로 아슬아슬하게 선두를 유지했다. 4라운드 마지막날 난 일부러 세리 의상에 신경을 썼다. 삼성 로고와 매치가 잘 되는 줄무늬 셔츠를 입혔고 하얀색 반바지로 구색을 맞췄다. 세리한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우승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날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3번홀에서 더블보기에다가 4번홀에서도 다시 보기를 기록, 위기를 맞았다. 결국 추아시리폰(태국)에 선두를 내주고 힘겹게 따라붙던 세리는 추아시리폰이 15번홀에서 보기를 범하는 사이 14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다시 선두에 올라섰다.
난 17번홀을 승부수라고 봤다. 그래서 세리한테 눈짓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미 2타 앞선 상황이라 자신 있었다. 그러나 세리는 티샷을 그린에 올리지 못하고 보기를 범해 격차가 1타로 좁혀들었다.
▲ US오픈 우승컵에 입맞춤하는 장면. | ||
그런데 추아시리폰이 10미터짜리 버디퍼팅을 성공시키는 게 아닌가. 세리가 버디를 하지 못하면 다음날 연장까지 가야 할 상황이었다. 홀컵에서 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붙여서 버디로 경기를 마무리하려던 세리는 버디퍼팅이 홀컵을 살짝 빗나가는 바람에 아쉽게 무승부를 이루고 말았다.
연장라운드의 18번홀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될 것이다. 출발이 불안했던 세리는 끈질긴 추격전 끝에 간신히 1타 차로 앞선 상황을 만들었는데 15번홀에서 보기를 범해 추아시리폰과 동타를 이뤘다. 그런데 그런 아찔한 상황에서 18번홀에서 티샷한 볼이 연못 턱에 걸린 것이다. 순간 세리는 또 다시 날 쳐다보았다. 그러나 난 신경쓰지 말라고 손짓을 했다. 결국 세리는 공을 안전하게 페어웨이로 빼내는 데 성공했고 추아시리폰과 서든데스 게임에 들어갔다.
10번홀에서 시작한 서든데스는 11번홀에서 절정을 맞았다. 난 세리한테 이렇게 얘기했다. “세리야! 라이보지 말고 무조건 세게만 쳐. 짧으면 큰 일이다. 고개들지 말고 무조건 세게 치는 거야?”
마침내 세리는 장장 92홀의 승부 끝에 메이저대회 2연승의 신화를 이뤄냈다. 그 역사적인 순간 미국 방송사의 한 카메라맨이 나한테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부모와 감격적인 포옹을 하는 장면을 잡고 싶었던 것이다. 난 너무나 허리가 아파 이동의자에 잠시 앉아 있다가 그 카메라맨의 손짓에 어쩔 수 없이 골프장으로 들어가 세리와 뜨거운 포옹을 했고 세리는 내 품에서 눈물을 쏟았다.
그런데 갤러리인 내가 골프장으로 들어가 딸과 포옹했다고 해서 몇몇 신문에서는 날 두고 ‘무식한 아버지’라고 폄하했다. 아름다운 감동의 순간을 골프 규칙도 모르는 무식쟁이로 몰아세운 것이다. 난 그 글을 쓴 기자를 찾아서 ‘야 이 ×야’하면서 욕을 했다. 사람이라면, 그것도 같은 한국사람이라면 내 행동을 그런 식으로 몰고 가선 안 되는 거다.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을 참아가면서 92홀을 모두 쫓아다닌 부정을 ‘무식쟁이’로 받아들이는 기자들이 너무 야속했고 실망도 컸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